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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청년에 인기없는 이재명·윤석열의 2030 전략 '스우파'에 답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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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최선(最善)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게 한국 선거라지만 이번엔 좀 심했다. 대진 판이 짜인 여야 대선 후보 모두 '비호감'이 '호감'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 청년 눈높이에선 더욱 그렇다. 여론조사기관마다 숫자는 들쭉날쭉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모두 2030 지지율이 바닥 수준이다. 갤럽의 지난 5일 조사를 보면 18~29세 무당층은 전 연령층(23%)에 비해 월등히 높은 41%에 달한다. 특히 2030 여성으로 한정하면 두 후보를 향한 '비호감도'는 더 올라간다. 이런 비호감 대선 주자와 정반대로 정확히 이 연령층의 압도적 지지가 쏠린 곳이 있다. 바로 케이블 음악방송 엠넷(Mnet)이 여성 스트리트 댄스팀 8개를 불러모아 만든 경연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스우파)'다.

최고의 화제를 모은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2030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화면 캡처]

최고의 화제를 모은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2030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화면 캡처]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아니라 늘 누군가를 백업하는 주변부 역할에 머물렀던 댄스팀을 주인공으로 세운 새로운 시도였지만 출연 댄서들조차 대중의 관심을 끌 거라는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지난 8월 첫 방송부터 화제성 1위에 오르며 시청률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지난달 27일 종방 때까지 1539 남녀, 2049 남녀 타깃시청률에서 지상파를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화요일 밤) 1위를 지켰다. 특히 두 후보가 가장 취약한 30대 여성 시청층에선 전 연령대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연은 이미 끝났지만 출연한 댄서들은 최종 순위와 무관하게 막강한 팬덤을 형성하며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휴대전화·자동차·은행 등 웬만한 톱스타도 따내기 어려운 주요 광고까지 점령했다. 지난 7일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선 가수 이승기가 스우파 댄서들을 보자마자 "대선주자 만날 때보다 더 떨린다"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앞서 이 프로그램엔 윤석열·이재명 후보가 출연한 바 있다. 세상 트렌드에 별 관심 없는 꼰대들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이게 다 여야 대선 주자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얻지 못한 2030의 마음을 얻은 데 따른 보상이다.

2030 표심에 급한 대선 주자들이 스우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와 예능의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이지만 지금의 2030이 어떤 인물에 열광하는지를 통해 거꾸로 이재명·윤석열을 그토록 싫어하는 까닭, 그리고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해답을 모두 여기에서 찾을 수 있어서다. 특히 경연에 참여한 8개 팀 수장들이 크루(팀원)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두 대선 주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즐기면서)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

'홀리뱅' 리더 허니제이의 이 한마디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열풍을 몰고왔다. [화면 캡처]

'홀리뱅' 리더 허니제이의 이 한마디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열풍을 몰고왔다. [화면 캡처]

'프라우드먼' 리더 모니카로부터 워스트 댄서로 지목받아 댄스 배틀을 펼치게 된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가 내뱉은 이 유쾌한 한 문장이 본격적인 스우파 열풍의 시작이었다. 참가 팀 리더들 가운데 나이·경력이 가장 앞서는 두 사람이지만 이 중 하나는 '워스트' 딱지가 붙을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으로 승패와 무관하게 환호를 불러냈다. 실력 없이는 감히 나올 수 없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다.

나이 말고 실력

'실력'은 스우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에 만연한 것처럼 나이와 연공서열로 청년을 찍어누르면서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 상대를 존중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야당 지지로 돌아선 청년을 툭 하면 폄하하던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 주호영 의원도 2030의 낮은 지지도를 "과거를 잘 기억 못 해서"라는 식으로 말해 청년 폄하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댄서들은 달랐다. 언니들끼리 붙을 때도, 산전수전 다 겪은 원숙한 팀 리더가 상대 팀 막내와 겨룰 때도 다른 기준은 없었다. 그저 실력으로만 대했다. 나이 많다고 대접받겠다고 나서거나, 나이 어리다고 상대를 얕잡아 보는 댄서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니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은 기본이고, 아무리 격한 배틀 후라도 쿨한 '승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허니제이는 그 바닥에서 이미 최정상을 찍은 댄서지만 방송 초반 유독 배틀 운이 따르지 않았다. 모니카와의 지목 배틀은 물론 본인이 가르쳤던 옛 제자와의 배틀에서도 패했다. 객관적 지표 없이 저지(심판) 세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승자 결정 방식이었지만 사소한 불만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평가하기 위해 나온 게 아니라 평가를 받으러 나온 사람"이라며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걸핏하면 본질에서 벗어나 지리한 룰 싸움에 매달리고, 내 뜻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남 탓으로 일관하는 정치권에선 볼 수 없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프라우드먼'이 최종 결승 라이브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최하위 후보로 호명됐을 때도 리더 모니카는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책임을 지고 그 무게를 견디는 게 어른"이라며 깨끗이 승복했다.

다른듯 비슷한 리더십으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열풍을 주도한 8개 크루의 리더들. [사진 Mnet]

다른듯 비슷한 리더십으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열풍을 주도한 8개 크루의 리더들. [사진 Mnet]

착취 대신 성장 

각 팀 수장들이 보여준 리더십의 외양은 때론 친구처럼 수평적이고 때론 사제지간의 연속인 듯 수직적으로 제각기 달랐다. 하지만 팀의 목표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팀원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팀원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리더나 연장자일수록 나를 내려놓고 팀원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홀리뱅'이 최종 우승한 후 허니제이는 "책임지고 이 친구들을 더 훌륭하고 멋있는 댄서가 될 수 있게 서포트를 많이 하겠다"라는 수상 소감을 내놓았을 정도다.
사실 주류에서 비껴나 주목받지 못하던 '비주류의 성장 스토리'라는 서사는 2030의 감성을 자극해 처음부터 스우파를 특별하게 만든 요소로 작용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서로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은 그래서 더 감동으로 다가왔다. 스트리트 댄스 신이 아닌 유일한 아이돌 출신 참가자였던 '원트'의 이채연이 '아이돌이라 댄서에 비해 실력이 없다'는 편견에 부딪혔을 때 애물단지 취급이 아니라 용기를 북돋워 준 건 리더 효진초이를 비롯해 같은 팀 동료들이었다. 효진초이는 "네, 네, 하고 넘어가면 그들 생각이 맞는 게 돼버린다, 다들 나한테 손들어주지 않을 거 같은 상황이라도 너 자신을 더 알리라"며 독려했다.
스우파 댄서들은 잠시 청년 환심을 사 표를 얻겠다고 정작 청년의 미래를 망치는 현금 살포 정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이 후보 같은 정치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 세상이 변했다. 디자이너로 근무하다 뒤늦게 전업 댄서가 된 '프라우드먼'의 모니카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진지하지 않다는 편견에 늘 소외당했었는데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 나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 누군가 다 어디선가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움직였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세상은 0.1㎝씩 변한다. 10년이 지나면 세상이 변해 있다. "
무섭게 팀원을 훈련하는 모습에 처음엔 '꼰대''어그로꾼'이라는 비난까지 들었지만, 스스로는 실력을 갖추려 노력하고 팀원의 성장을 돕고, 편견에 맞서는 용기로 결국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지지로 돌아섰다. "실수해도 그리고 좀 본인의 발언이 날카로워도 솔직하게 다가섰을 때 오히려 2030들은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이재명 후보 측 고민정 의원의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청년 기대 못 미치는 후보들 

박빙의 접전이 예상되는 대선 승리를 위해 청년 마음을 사려는 여야의 전략은 비슷하다. 고민정 의원은 "누가 더 솔직하게 다가가느냐가 키 포인트"라며 "계속 청년들을 만나가서 얘기를 듣고 설득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측 장예찬 청년특보도 "당 경선에선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준석 당 대표 당선이 상징하는 정치 개혁이나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을 같이 담겠다"며 "정책 세미나에 참석하는 엘리트 청년뿐 아니라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보다 못한 청년과의 접점을 점차 넓혀 청년층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사족보행 로봇을 던져 학대 논란을 일으켰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사족보행 로봇을 던져 학대 논란을 일으켰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 뒤 SNS에 올린 개 사과 사진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 뒤 SNS에 올린 개 사과 사진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임현동 기자

하지만 2030이 열광하는 스우파적 자질을 대선 후보에 한 번 대입해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굵직한 청년정책 얘기는 굳이 꺼낼 것도 없이 이 후보의 '로봇 개 학대' 논란이나 윤 후보 '개 사과 사진'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솔직함이나 쿨한 승복, 책임지는 자세 같은 2030이 기대하는 기본에서 한참 못 미치는 탓이다. 과연 어떤 후보가 이걸 극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