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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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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6ㆍ25 전쟁을 소재로 제작돼 1억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의 선전 간판들이 베이징의 한 극장 계산대에 붙어 있다. [중앙포토]

6ㆍ25 전쟁을 소재로 제작돼 1억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의 선전 간판들이 베이징의 한 극장 계산대에 붙어 있다. [중앙포토]

항미원조 영화의 변천
“영화는 곧 정치”라고 말한 이는 프랑스 감독 장뤼크 고다르였다. 중국만큼 이 말이 딱 들어맞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현대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부터가 그랬다. 마오에게 영화는 혁명의 무기였다. 해방구, 즉 공산당 점령지구마다 연극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통해 혁명 이념을 주민들에게 전파하게 했다. 문맹률이 높은 당시의 중국 농촌 실정에서 연극ㆍ영화는 인쇄물이나 벽보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선전수단이었다. 그 전통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기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중국 국가가 원래 1935년작 영화 '풍운아녀'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진 곡이란 사실은 중국 혁명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설명해준다.

마오쩌둥 시대 쏟아진 항미 영화 #개혁·개방 시기 들어 자취 감춰 #“항미원조는 정의” 시진핑 때 부활 #미·중 대결 구도 속 계속 나올 듯

“정치적인 것을 없애는 행위 역시 정치적”이란 고다르의 또 다른 말도 중국에 잘 들어맞는다. 작가 위화(余華)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든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대표작 '인생(원제 活着)'은 1995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은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아니,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인생'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격랑에 떠밀리고 짓밟힌 민초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풍자하는 대사도 나온다. 중국 본토에서의 상영 허가가 내려질 리 없었던 이 영화는 해외에서만 개봉됐다. 하지만 장이머우가 준비 중인 차기작 '저격수'는 중국 내 상영 확률이 100%다. 6ㆍ25 전쟁, 즉 중국이 말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다뤘기 때문이다.

'인생'과 같이 덧없이 사라진 작품 중에 2001년 국영 중국중앙TV(CCTV)가 완성한 '항미전쟁'이 있다. 5년 동안 당시로선 거액인 3000만 위안(약 55억원)을 들인 야심작이었지만 끝내 방영이 무산되고 말았다. 중국이 미군을 격파하는 내용의 드라마를 내보내면 미ㆍ중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 따른 상부의 결정이었다. 하필이면 9ㆍ11테러로 미국이 아픔을 겪던 시기와 겹쳤고 중국도 미국이 주창한 테러와의 전쟁에 호응하던 때였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영화 '북위 38도'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6ㆍ25를 소재로 한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다.

마오쩌둥 집권기의 대표적 항미원조 영화 '상감령'(왼쪽)과 '영웅아녀'의 포스터.

마오쩌둥 집권기의 대표적 항미원조 영화 '상감령'(왼쪽)과 '영웅아녀'의 포스터.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마오쩌둥은 신생 중국이 최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운 성공스토리로서의 ‘항미원조’를 놓치지 않았다. '상감령'은 마오의 지시로 만들어진 대표적 항미원조 영화다. 1952년 가을 약 6만 명의 유엔군이 동원된 ‘김화 총공세’에 맞서 강원도 오성산의 상감령 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게 중국의 공식 기록이다. 지금도 천안문 광장의 국가박물관에는 탄피가 절반은 섞인 오성산 흙이 보존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처절한 전투 끝에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지휘관의 부탁으로 병사들이 갱도에서 부른 주제가 ‘나의 조국’은 중국의 각종 공식 행사에 사용되며 제2의 국가 대접을 받고 있다.

마오쩌둥 시기에 줄이어 제작된 항미원조 영화는 1964년작 '영웅아녀(英雄兒女)'로 정점을 찍는다. 6ㆍ25에 병사로 참전한 아들과 딸이 장교로 참전한 생부를 전선에서 조우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주인공 왕청은 홀로 남은 고지에서 “나를 향해 포를 쏘라”는 무전을 포병 부대에 남기고 미군 대열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이 장면은 지난 7월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형 공연 ‘위대한 여정’에서 재연됐다. '영웅아녀'는 수없이 반복 상영돼 나이 지긋한 중국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마오쩌둥이 숨지고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든 덩샤오핑(鄧小平) 시기에 항미원조 영화는 사실상 금기시된다. 중국이 경제발전에 주력하면서 안정적 대미관계가 필요하던 시기에는 감히 ‘항미’를 꺼낼 수는 없었다. 한ㆍ중 수교로 북한과의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원조(援朝)’를 내세울 이유도 사라졌다. 천안문 사태를 겪고 난 뒤인 1990년대 장쩌민(江澤民) 시기에 중국은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했다. 영화ㆍ드라마는 항일전쟁이나 국공내전을 다룬 역사물로 넘쳐났지만 여기서도 항미원조는 예외였다. 그 무렵 중국 방문객 가운데 “중국 TV는 채널 수가 수십 개인데 볼 건 하나도 없다. 채널만 돌리면 모두 항일영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다. 애국을 내세우면서도 항미는 억제했다는 의미다. 후진타오(胡錦濤) 시기에도 이런 흐름은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달라진 건 시진핑(習近平) 집권 1기인 2016년부터다. 38부작 드라마 ‘삼팔선(三八線)’이 방송된 데 이어 영화 '나의 전쟁'이 개봉됐다. 갑작스러운 해금에는 시진핑 주석의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시 주석은 부주석이던 2010년 “항미원조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발언했다. 그 무렵 도광양회에서 탈피하고 본격적으로 대국굴기를 지향하기 시작한 중국의 대외전략의 맥락에서도 예전처럼 금기를 유지할 필요성이 약해졌다.

하지만 2016년까지만 해도 본격적인 ‘항미’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영화 '나의 전쟁'에서는 ‘항미원조 보가위국(保家衛國)’이란 공식 구호 가운데 ‘항미원조’가 ‘수호평화’로 대체됐고, 미군이 등장하는 화면은 제한적이었다. 대신 중국인 병사들 사이의 전우애나 남녀 간의 애정, 극한 조건을 극복하려는 의지 등이 강조됐다. 영화 상영을 앞두고 서울을 방문한 노병들이 “우리는 과거에도 붉은 깃발을 들고 여기 왔었지, 여권도 없이 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예고편이 공개되자 ‘한국의 입장을 무시하는 이런 영화는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인터넷을 달군 적도 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하지만 이런 신중한 태도는 불과 5년 사이 정반대로 달라졌다. 올해 개봉된 영화 '장진호'는 1억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전 세계 영화 흥행기록 1위에 올랐다. ^거장 천카이거 감독과 쉬커 감독 등이 공동으로 이 영화를 만들고 ^13억 위안(약 2300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란 점과 ^중국 공산당과 정부 당국이 집중적으로 이 영화를 후원하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일으킨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관객들의 반응은 5년 전의 냉정했던 반응과는 크게 대조된다.

이는 2018년 촉발된 관세전쟁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심화하고 있는 미ㆍ중 대결의 결과로 설명된다. 시진핑 체제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고 항전하여 최후에는 이길 것이란 신념을 항미원조 영화를 통해 심어주고, 관객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란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영화들이 줄을 이어 나올 것으로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1990년대 중국 TV를 점령한 항일 영화의 자리를 6·25 드라마가 대체할 수도 있다.

항미원조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한국은 아예 존재가 없다는 점이다. '상감령'에서도 '영웅아녀'에서도 '장진호'에서도 한국군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만 보면 중국이 치른 전쟁은 오로지 미국과만 싸운 것이었다. 항미원조와 문학ㆍ영화 작품을 분석한 논문으로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담 원광대 연구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한담 원광대 연구교수

한담 원광대 연구교수

“항미원조 영화는 철저하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그린다. 한반도는 공간적 배경일 뿐 한국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북한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마오쩌둥 시기 영화에는 북한과의 우호를 강조하는 장면이나 북한 인민과의 연대를 상징하는 장면들이 삽입되기도 했는데 최근 영화에는 그나마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미국이 싸운 전쟁으로 보는 관점은 '장진호' 등 최근작에서 더욱 확연해졌다. 요즘 잇달아 제작되는 항미원조 영화의 정치적 목적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미ㆍ중 대결에서의 철저 항전을 위한 국민 결속의 수단으로 항미원조전쟁의 기억이 재소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국 당ㆍ정의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런 경향은 당분간 더 강화되고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미ㆍ중 관계가 극적으로 호전되지 않는 한 항미원조를 다룬 영화ㆍ드라마ㆍ다큐멘터리가 확대 재생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고다르가 말했듯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특히 중국에선 더욱 그렇다. 그 좋은 예가 항미원조 영화의 부침과 성쇠다.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