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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의 안이한 위기관리 드러낸 요소수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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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가 수입의 97%를 의존하는 중국이 갑자기 요소수 수출을 제한하면서, 경유 차량 운행에 꼭 필요한 요소수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김성태 기자

우리가 수입의 97%를 의존하는 중국이 갑자기 요소수 수출을 제한하면서, 경유 차량 운행에 꼭 필요한 요소수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김성태 기자

중국 수출 제한 이후 대책 우왕좌왕

특정국 의존도 높은 원자재 개선해야  

이름도 생소한 물질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경유차(디젤)가 내뿜는 매연을 정화하는 요소수로, 이게 없으면 당장 전 국민의 물류를 책임지는 화물차는 물론 산업용 덤프트럭과 긴급을 요하는 소방차와 경찰차 상당수가 멈출 수밖에 없는 탓이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만약 요소수 재고 소진으로 대한민국이 마비되면 당장 하루 3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실생활과 워낙 밀접하게 관련된 탓에 장기화하면 국민이 감당해야 할 직·간접 피해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요소수 부족 사태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면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이 느끼기엔 날벼락 같지만 사실 이번 요소수 사태는 이미 한 달여 전인 지난달 11일 중국이 수출 검사를 빌미로 요소수 수출을 제한하면서 시작됐다. 필요한 요소수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는 탓에 중국의 수출 중단은 즉각적인 패닉으로 이어졌다. 한 달 새 상황은 악화일로다. 값이 10~20배 이상 뛴 게 그나마 양호한 편이고, 웃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어 화물차 발이 묶이기 일보 직전이다.

정부 대응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대안을 발 빠르게 찾기는커녕 안이한 대응으로 오히려 위기를 키웠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의 수출 제한 초기 “통상적 절차가 진행 중이라 걱정할 필요 없다”고 오판했다. 또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관련 업계는 재고 등 수급 상황을 정부에 알려 도움을 청했지만 정부가 국정감사 등을 이유로 선제적 대책 마련에 실기했다는 주장도 있다. 뒤늦게 요소수 대응 TF를 가동하긴 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다른 국가와 도입협상에 나서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이미 2019년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로 반도체 산업이 휘청일 만큼 큰 위기를 겪고도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품목에 대해 별다른 대비책을 강구해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입품 1만2586개 가운데 특정 국가 의존도가 80% 이상인 품목이 3941개(31.3%)나 된다. 특히 요소수를 비롯해 최근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실리콘 등 이 중 절반(1850개)이 중국에 편중돼 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희토류를 전략무기화하려는 시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요 원자재와 부품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 핵심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수입처 다변화는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국민의 안녕을 위한 필수 조치다. 정부가 원자재 공급망과 관련해 중국 의존을 줄일 근본 대책 마련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게 이번 요소수 부족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주요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원자재와 부품 수급을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취약한 공급망 관리는 이참에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