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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과학자·기업인 우려에 귀 막은 정부의 탄소중립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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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달 30일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달 30일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G20 정상, 2050년 탄소중립 확정 못해      

우리만 실현가능 전략도 없이 밀어붙여  

지구촌 사회의 ‘2050년 탄소중립’ 확정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탈리아 로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탄소중립 시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구체적 이행 약속도 없이 지난달 31일 막을 내렸다. 의장국 이탈리아를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은 탄소중립 시점을 2050년으로 못 박자고 제안했지만, 러시아·중국·인도 등 국가들이 반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G20 성명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 시한을 두루뭉술하게 ‘21세기 중반 무렵’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호기롭다. 문재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직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6)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NDC(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추가 상향해 40% 감축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밝혔다. 애초 탄소중립위원회가 제시했던 목표 26.3%를 13.7%포인트 높게 수정한 사실을 대내외에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회학과 환경에너지정책학을 전공한 학자가 수장이 돼 이끌고 있는 탄소중립위는 과학자들의 의견과 충고를 무시하고,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세웠다.

기후위기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행동해야 할 때임은 틀림없다. 세계 정상들은 ‘선진국 신참’ 한국의 대통령이 제시한 파격적인 목표에 환호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 맞는 이행 전략과 속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탄소중립 이행 전략과 속도에 대해서는 과학자와 기업인들의 우려가 크다. 기업인들은 우리 정부의 무리한 탄소중립 이행 목표가 산업에 끼칠 악영향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대표적 발전 방식인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전략에 포함하지 않고 탄소중립을 외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녹색기술센터(GTC)가 2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후 기술은 미국의 8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의 96%, 일본의 90%로 한국의 기후 기술은 선진국에 못 미친다.

서구 주요국들은 기후위기 앞에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간 탈(脫)원전 정책을 펴 온 프랑스가 원전 사업에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역시 소형모듈원전(SMR) 등 원전 비율을 높여 탄소 배출을 줄이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를 경험한 일본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주요 4대 에너지원 중 하나로 원자력을 포함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신의와 선한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실현 가능한 전략 없는 시나리오는 거짓이거나, 수개월밖에 남지 않은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 무리한 짐을 지우는 무책임한 행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