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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태일이' 심재명 "전태일의 꿈, 지금 20대와 다르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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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극중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 캐릭터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 명필름]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극중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 캐릭터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 명필름]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 사상 최고 220만 흥행을 거둔 제작사 명필름이 10년 만에 새 애니를 들고 온다. 오는 12월 1일 개봉하는 ‘태일이’(감독 홍준표)는 1970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22살 청년 전태일(1948~1970)의 자취를 새긴 작품이다. 그의 삶과 시대상을 어린이 눈높이로 그린 만화가 최호철의 동명 원작을 토대로 배우 장동윤‧염혜란‧진선규‧권해효 등이 목소리 출연했다. 15일 폐막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처음 선보여 2회 상영 모두 70여석 객석을 가득 채웠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거리 두기 좌석을 빼고다.

애니메이션 '태일이' 12월 1일 개봉 #'마당을 나온 암탉' 만든 명필름 제작 #심재명 대표 "사람답게 사는 사회 이야기"

제작 참여한 시민들 이름 9분간 화면 채워 

일반 시민이 직접 십시일반 제작비에 투자한 방식도 화제가 됐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1억원 모금에 1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마지막 엔딩 이후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 9분간 화면을 꽉 채우며 흐른다.
“자기 몸에 불을 붙여서 노동환경을 바꿔보려 했던 스물둘 전태일의 모습이 고단한 삶을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죠. 고(故) 김용균‧이선호씨, 최근 바닷물 속에서 사망한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까지 지금의 20대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25일 화상으로 만난 명필름 심재명(58) 대표는 ‘태일이’가 현시대에 주는 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태일이’는 ‘마당을 나온 암탉’ 직후부터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지난해 11월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맞춰 개봉하려 했지만, 장편 애니 특성상 제작 공정이 길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쳐 올 11월로 연기했다가 개봉 영화가 몰리면서 한 달이 더 밀렸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대기업 투자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태일이’는 영화 주제상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그는 “순제작비가 30억원이고 마케팅 비용에 15억 정도인데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에 선정돼 받은 7억원이 첫 마중물이 됐다. 전태일 재단과 여러 애니 관련 공적 기관의 지원에 더해 1만여명의 일반 시민이 1억7000만원을 후원해주셨다”고 말했다. 명필름은 2년 전부터 1970인의 제작위원 신청도 받고 있다. “아직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 열심히 후원자 모집 중”이라고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잘됐는데도 투자가 어렵나.  
“우리나라가 영화사업 규모에 비해 애니 시장이 작다. 극장용 장편 애니가 오리지널 대본으로 만들어지는 게 드물고 실제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이례적이었다. 이듬해 EBS가 만든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3D’(2012)가 100만 관객을 넘었는데 이후 그런 흥행성적이 없다. ‘태일이’는 투자자 입장에선 선택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태일이’를 애니로 만든 까닭은.  
“전태일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이고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런데 1960~1970년대를 실사로 구현하면 100억원도 모자란다. 애니가 제작비 면에서 유리할 수 있었다. 또 최호철 작가의 원작 만화에서 가능성을 봤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년을 그렸으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 ‘너의 이름은.’ 같은 청춘물로서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실사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보다 더 보편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겠다, 판단했다.”
태일의 캐릭터도 친근한 청년의 이미지를 부각했는데. 
“초반 캐릭터 디자인은 더 리얼한 톤으로 갔다가 그게 요즘 청소년들한테 ‘올드’할 것 같아 바꿔나갔다. 배우들 목소리를 선 녹음한 후 그림을 그리는 할리우드 애니 제작 방식을 택해서 배우의 얼굴하고 비슷하게 되기도 했다.”
태일은 평화시장 재단사 보조로 일하며 돈이 없어 굶주리고 공장 먼지 탓에 폐병에 걸리기 일쑤인 여공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병원비를 앞장서서 모금한다. [사진 명필름]

태일은 평화시장 재단사 보조로 일하며 돈이 없어 굶주리고 공장 먼지 탓에 폐병에 걸리기 일쑤인 여공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병원비를 앞장서서 모금한다. [사진 명필름]

데뷔 전 강도를 잡는 선행으로 알려진 장동윤이 태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그린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했던 염혜란이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목소리 연기했다. 심 대표는 “염혜란씨는 연기력도 탁월하지만 사회 현안에도 관심이 많다. 장동윤도 전태일에 평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배우들의 이미지를 고려한 캐스팅이라 밝혔다. 대학로 음악극에서 전태일 역할을 맡았던 진선규도 이번 아버지 역에 흔쾌히 응했단다.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말하죠" 

노동열사 전태일 51주기 애니메이션 '태일이'에 그려진 평화시장 모습. [사진 명필름]

노동열사 전태일 51주기 애니메이션 '태일이'에 그려진 평화시장 모습. [사진 명필름]

극 중 태일은 세상에 이미 존재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법,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비극을 맞는다. 심 대표는 “엄혹한 시절이었다”면서도 “지금은 노동환경 차별이 훨씬 더 교묘하고 악랄해졌다”며 배달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었다. “‘태일이’는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명필름은 ‘공동경비구역 JSA’ ‘아이 캔 스피크’ ‘카트’ 등 사회문제를 담은 대중영화를 꾸준히 선보여온 바다. 심 대표는 “우리 사회 실존 인물, 역사적 사건, 노동 문제라던가 관심이 많은 영화사”라며 “‘태일이’의 삶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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