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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MD크림' 왕창 처방받아 당근마켓서 팔면 보험사기?

중앙일보

입력

[요지경 보험사기]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2019년 5월 피부과를 찾은 20대 여성 A씨는 병원에서 보습크림을 처방받았다. 이내 처방량이 매주 늘어나면서 매주 5~6개의 보습크림을 처방받기도 했다.

A씨는 병원에서 개당 3만원씩 보습크림을 처방받으며 204만원을 썼지만 오히려 돈을 벌었다. 실손보험으로 처리하면서 보험금에서 개당 2만2000원가량을 돌려 받은 데다,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병원에서 처방받은 보습크림을 되팔아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A씨는 이렇게 처방받은 보습크림 68개를 개당 2만원 안팎에 처분했다고 한다.

중고마켓에 최근 올라온 피부과용 보습로션 판매사례. 일반인이 의료기기로 분류된 화장품을 판매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MD'가 붙으면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사이트 캡처

중고마켓에 최근 올라온 피부과용 보습로션 판매사례. 일반인이 의료기기로 분류된 화장품을 판매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MD'가 붙으면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사이트 캡처

실손보험을 이용한 각종 도덕적 해이가 넘치고 있다. 이제는 고전적으로 여겨지는 각종 과잉 진료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병원에서 치료용으로 출시한 화장품 등을 과다 처방받은 뒤 이를 당근마켓 등 중고마켓에서 되파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흔히 MD크림(Medical Device) 알려진 ‘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는 일반 화장품과 달리 의료기기로 분류돼 피부과 등에서 비급여 처방을 받은 뒤 실손보험 처리가 가능하다. 제로이드MD, 아토베리어MD 등이 대표적이다. 각 MD크림별로 별도의 청구코드가 부여돼 있는데, 일부 화장품업체는 상품을 출시하며 청구코드와 쉽게 실손보험을 청구하는 방법까지 알리고 있다.

피부과 등에서 개당 3만5000원 가량의 MD크림을 처방받고 실손보험을 청구하면 통원 공제(5000원, 8000원)를 한 뒤 2만7000원 가량을 돌려받게 된다.

시중에서는 3만원 이상에 판매되는 화장품을 개당 5000~8000원 가량에 구할 수 있다 보니 MD크림 여러 개를 처방받은 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2만원 대에 파는 경우도 많다. 30대 남성 B씨는 MD크림 54개(162만원)를 처방받아 되팔다가 보험사에 적발됐다.

제로이드 MD크림 등 피부과 처방 보습크림을 실손보험 처리할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홍보하는 피부과 홍보물. 홈페이지 캡처

제로이드 MD크림 등 피부과 처방 보습크림을 실손보험 처리할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홍보하는 피부과 홍보물. 홈페이지 캡처

처방 자체는 불법은 아니지만, 이를 재판매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MD크림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허가받지 않은 일반인이 판매할 경우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보험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판매액이 소액인 데다 사기 여부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많아 강경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일부 치료 목적이 있더라도 허위, 과다 청구가 있을 경우 지급받은 보험금 전체에 사기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처방받는 영양제 주사도 과잉 진료의 대표 사례다. 50대 C씨는 2016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구내염과 감기, 장염 등으로 90회 병원을 찾았다. 병원들은 구내염이나 장염으로 먹지 못해 영양결핍이 올 수 있다며 태반주사 등을 처방했고 비급여 의료비 1079만원이 발생했다.

60대 D씨도 2015년부터 5년간 병원에서 영양제 주사만 7400만원 어치를 처방받았다. D씨 역시 구내염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 1회당 23만원짜리 세포 면역 주사제를 매번 맞았다. 구내염의 표준 치료법인 항생제 처방과는 거리가 멀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실손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미용 치료를 받은 뒤 도수치료 등으로 둔갑해 실손보험금을 타내는 것도 단골 사례다. 최근에는 병원에 환자를 유치해주는 마케팅 회사와 병원, 환자가 한 몸이 된 사기 사례 적발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의원은 마케팅 회사 등과 계약하고 실제로는 지방흡입술을 시술한 후 보험사에는 도수치료를 받은 거로 허위서류를 내다 경찰에 적발돼 지난 8월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금액은 8985억9200만원, 적발된 인원은 9만8826명이다. 이렇게 샌 보험금은 환수율도 낮은 편이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20년 보험사기 적발액 3조3078억원 중 환수된 금액은 1264억원(3.8%)에 불과하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보험사기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보험금 환수를 하려면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별도로 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보험사기로 확정판결을 받았을 때 보험금을 의무적으로 반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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