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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 화상에 실명된 오빠가 남긴 9억…여동생 부부는 잠적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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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보험사기] 

A씨는 2014년 양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상해보험 등 보험 5개에 가입했던 A씨가 받을 수 있던 보험금만 8억6900만원이었다. 보험금은 A씨가 아닌 결혼한 여동생이 전액을 받게 돼 있었다.

A씨는 보험금을 청구한 지 한 달도 안 된 2015년 1월 돌연 사망한다. 사망 당시 A씨의 나이는 38살이었다. 그런데 A씨의 여동생은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현재 여동생과 매제인 B씨 등은 유기치사와 보험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B씨의 잠적으로 사건의 전말은 미궁에 빠졌다.

김씨는 지난 2014년 6월 사고로 양쪽 눈을 실명한다. 김씨가 실명 시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8억6000만원으로, 수익자는 여동생으로 지정돼 있었다. 셔터스톡

김씨는 지난 2014년 6월 사고로 양쪽 눈을 실명한다. 김씨가 실명 시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8억6000만원으로, 수익자는 여동생으로 지정돼 있었다. 셔터스톡

A씨의 두 눈의 시력을 잃은 건 2014년 6월 어느날 새벽에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여동생 집 옥상에서 여동생 내외와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 술을 마시다 불판에 넘어졌다고 한다. 여동생 내외는 자녀들을 재우러 옥상에서 집 안으로 잠시 내려온 상태였다고 했다.

당시 A씨는 가벼운 부상이라 생각해 즉시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증이 지속하자 하루 뒤에 동네 안과를 찾았고, 사고 사흘 뒤 대형병원 안과를 찾았다. 진단 결과 각막에 화상을 입었고, 오른쪽 눈 주위 뼈가 골절되는 등 실명에 이를 수 있는 큰 부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갈비뼈도 여러 곳 부러져 있던 데다, 대동맥 박리진단도 함께 받았다.

A씨 여러 병원에 다니며 각종 진단을 계속 받았지만,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은 건 드물었다. 매제인 B씨가 투약을 강하게 반대한 경우도 있었다. 병원 측은 혈압조절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B씨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퇴원 후에도 A씨는 화상과 골절 등으로 병원을 오갔다. 그해 7월에는 가스레인지 위에 끓고 있는 물이 쏟아져 화상을 입었고 8월에는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져 코뼈가 다시 부러졌다. 당시 화상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물을 다리에 쏟아 입은 화상인데 화상 자국은 인두로 지진 것처럼 남아있었다.

A씨 사망 후 이를 감정한 경북대 법의학교실 이상한 교수는 “화상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양상이 아니라 판처럼 띄엄띄엄 화상이 있는 모습이라 사고 상황과 맞지 않다”고 했다.

A씨는 보험가입 후 골절이나 화상 등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A씨의 여동생 가족도 골절, 화상 등으로 병원을 자주 찾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셔터스톡

A씨는 보험가입 후 골절이나 화상 등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A씨의 여동생 가족도 골절, 화상 등으로 병원을 자주 찾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셔터스톡

그리고 그해 12월 A씨는 한 대학병원에서 양쪽 눈이 실명됐다는 후유 장해 진단서를 발급 받고 보험금을 청구한다. 양쪽 눈 실명은 약관상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의 최대액이 지급된다. A씨가 받을 수 있는 상해보험금은 8억6900만원이었다. 보험금은 A씨가 아닌 여동생이 받게 돼 있었는데, 실명사고 발생 석 달 전에 보험금 수익자가 A씨에서 여동생으로 바뀌었다.

보험사기를 의심한 건 KB손해보험(구 LIG 손보)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이다. 안재원 KB손보 SIU 조사실장은 “불판에 넘어지며 화상을 입어 실명을 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며 “눈에 화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눈보다 돌출된 코 등 나머지 부분에는 부상이나 화상이 없었던 게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SIU는 A씨와 그 일가족의 보험금 청구 내역부터 뒤졌고, 수상스러운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A씨는 2013년 9월 보험에 가입한 뒤부터 골절과 화상으로 병원을 찾은 기록이 부쩍 늘었다. 문틈에 발이 끼며 발가락이 골절됐고, 돈가스를 튀기다가 화상을 입었다며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가입 후 늘어난 잇따른 화상, 골절 등은 보험사기의 전형적 특징이다.

여동생 일가의 보험금 청구도 지나치게 많았다. 후진하다 집 앞 전봇대에 부딪친 교통사고만 6번이었다. 매제인 B씨는 모기를 잡으려다 벽을 쳐 손목 골절로 보험금을 청구하기도 했다. 일가족이 골절과 화상, 교통사고 등으로 받아낸 보험금만 1억6000만원이었다. 10살가량의 두 자녀가 화상 등으로 받은 보험금만 5400만원이다. B씨는 법인보험대리점(GA)의 보험설계사였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KB손보 측이 보험사기 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수상한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났지만, 조사 한 달도 안 된 2015년 1월 A씨가 돌연 사망했다. 의료기록상 남아있는 사인은 ‘신부전 및 고칼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 유족은 사망 하루 만에 A씨를 화장했다.

A씨의 보험금 수익자였던 여동생은 A씨가 세상을 떠난 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험사기 조사가 지속되고 있을 무렵이다. 여동생이 각 보험사와 쓴 청구 포기 각서에는 “보험회사에서 고의사고를 의심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을 일부 인정한다”며 “위 건과 관련해 향후 민형사상의 이의(수사의뢰포함)를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동생과 B씨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한 건 금융감독원이다. 보험사로부터 보험사기 등에 대한 조사 내용을 보고 받은 후 범죄 사실이 있다고 봐 이를 경찰에 알렸다. KB손보 측이 경북대 법의학교실에 의뢰한 자문 내용 등이 수사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A씨의 사인 등을 분석한 이 교수는 “사고 후 즉시 병원에 가지 않은 데다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했고 의료진의 진료 제안을 보호자들이 거부했다”며 “적극적인 신체적 폭력의 학대는 없었더라도 치료 과정을 평가하면 방임, 유기 등의 소극적 학대는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여동생과 B씨는 2015년 8월 유기치사와 보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와 관련한 유무죄 판단을 아직 받지 못했다. 2019년 10월 B씨의 행방이 묘연해지며 재판이 중단되면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명의 원인과 학대가 있었는지 등은 A씨의 사망으로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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