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10개 옥가락지 낀 논개 스토리…제2의 ‘오징어게임’?

중앙일보

입력 2021.10.10 15:00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84)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뜨겁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한국 전통놀이는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우리의 문화 콘텐츠는 또 한 번 세계인의 주목받고 있다. 7화에 등장했던 징검다리 게임에서 미녀(김주령 분)가 덕수(허성태 분)를 끌어안고 뛰어내려 둘이 함께 죽는 장면에서 논개를 떠올린 사람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가 진주성 대첩이다. 1592년 10월 5일부터 10일까지의 싸움에서 우리는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게 된다. 패배한 왜군이 1593년 6월에 12여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오는데,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을 지키던 민·관·군 7만 명이 끝까지 항쟁했으나 진주성은 함락되고 만다.

진주교 교각 상부에 논개의 가락지를 형상화한 거대한 황동 반지가 충절의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은 진주교 전경. [사진 로미 위세준 블로그]

진주교 교각 상부에 논개의 가락지를 형상화한 거대한 황동 반지가 충절의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은 진주교 전경. [사진 로미 위세준 블로그]

이때 논개는 몸단장을 곱게 하고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라 불리는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로 알려져 있다. 바위 아래는 만 길 낭떠러지 깊은 강물이다. 논개는 촉석루 절벽 아래 의암 바위로 왜장을 유혹해 힘껏 끌어안은 채 강물에 뛰어들었고 둘은 모두 죽고 말았다.

논개를 불시에 생각나게 한 ‘오징어게임’ 속 우리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요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논개의 가락지다. 미녀의 손에는 가락지가 없었지만 논개의 손에는 가락지가 끼어져 있었다. 그것도 열손가락 모두에. 이처럼 논개가 열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논개가 열 개의 가락지를 낀 이유가 중요하다. 바로 왜장을 안고 투신할 때 팔이 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논개의 의기, 조선 여인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상징물이 바로 열 개의 가락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조상이 끼었던 가락지는 어떤 장신구일까.

가락지

옥가락지. 서울시 무형문화재 옥장 엄익평 作. [사진 가원공방]

옥가락지. 서울시 무형문화재 옥장 엄익평 作. [사진 가원공방]

가락지는 손가락에 끼는 장신구로 두 짝을 함께 착용한다. 흔히 두 개를 강조하기 위해 쌍가락지라는 단어를 쓰는데 굳이 ‘쌍’을 붙이지 않아도 가락지는 두 개라는 뜻이다. 한 개로만 끼는 가락지를 반지라고 하는데 ‘반지(斑指 혹은 半指)’는 두 짝으로 이루진 가락지의 절반인 ‘반(半)’을 의미한다. 가락지는 별다른 장식 없이 간단하다. 안은 판판하고 겉은 도톰하게 만들었다. 가락지는 신분과 관계없이 대중화한 장신구였다.

가락지를 한 쌍으로 착용하는 것은 부부가 한 몸이라는 뜻의 부부일신(夫婦一身)을 상징하는 징표로, 기혼녀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미혼녀는 한 개로 된 반지를 착용했다. 오늘날 예물로 흔히 사용하는 다이아몬드 같은 해외에서 들어온 보석이 없던 시절, 가락지는 가장 보편적인 결혼 예물이었다. 한국의 전통 예물이라 할 수 있는 가락지는 지금도 반지의 한 종류로 사랑받고 있다. 아울러 반지를 겹쳐 두 개 이상 착용하는 것은 주얼리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모던한 스타일로 진화했다.

논개의 가락지

논개 영정. 윤여환 作. 소장처 진주성관리사무소. [자료 제공 국립진주박물관]

논개 영정. 윤여환 作. 소장처 진주성관리사무소. [자료 제공 국립진주박물관]

구전되어 오던 논개의 순국 사실이 문헌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620년경부터로 추정된다. 2008년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받은 논개 영정은 충남대학교 윤여환 교수의 작품이다. 조선시대 전통영정기법으로 제작한 가로 110cm, 세로 180cm 크기의 작품이다. 고운 한복 차림을 한 여인의 자세는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려는 듯 역동적이며 얼굴에서 ‘의기(義妓)’를 느낄 수 있다.

손에는 녹색 가락지가 끼워져 있다. 옥으로 보이는 녹색의 가락지는 논개의 의기를 나타내듯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의 옥쇄(玉碎)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한다. 진주시 남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 교각 상부에는 논개의 가락지를 형상화한 거대한 황동 반지가 충절의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에게 더럽힘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결한 여인은 많았지만, 논개와 같이 한 목숨을 던져 전란에 숨진 백성의 원혼을 달랜 여인은 드물다. 진주 대첩과 국난에 맞선 기생 논개의 의기, 논개의 정신이 스며있는 촉석루와 의암 바위, 논개의 열손가락에 마디마디 끼어있던 옥가락지 스토리도 언젠가는 전 세계인에게 또 하나의 ‘오징어게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논개의 정신은 진주 시민들은 물론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살아 있으며 지금도 열 개의 가락지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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