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바람을 보석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블루 토파즈

중앙일보

입력 2021.08.29 15:00

업데이트 2021.08.30 17:17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81)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 2000, 캔버스에 유채 243.9 x 147.4 cm, 현자 리 에이브론스 소장 Collection of Hyonja Lee Abrons, Location: Cayuga Lake, NY ©Alice Dalton Brown.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 2000, 캔버스에 유채 243.9 x 147.4 cm, 현자 리 에이브론스 소장 Collection of Hyonja Lee Abrons, Location: Cayuga Lake, NY ©Alice Dalton Brown.

빛, 물, 바람에 압도당했다. 빛, 물, 바람을 캔버스에 담아낸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회에서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이라는 제목의 원작을 본 소감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주인공 지선우의 드레스룸에 걸려 있던 액자 속 그림이었다. 평소 관심 있던 작품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기대와 생각을 초월했다. ‘부부의 세계’에서 봤던 아트 프린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황혼에 물든 날’은 작가가 청소년기를 보낸 뉴욕주 이타카에 위치한 카유가 호수 풍경을 여동생 집의 베란다와 합쳐 새로운 장소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해가 저물 때 빛에 의해 커튼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그 커튼이 바람에 잔잔히 휘날리며, 바깥의 하늘과 바다는 황혼의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모습이 그림이 아닌 실제 풍경으로 느껴졌다. 243.9 x 147.4 cm의 대형 작품의 크기가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리얼한 해 질 녘의 빛과 물, 바람이 또 다른 장소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오디오로 전해지는 자연의 소리와 전시장 작품 앞에 놓인 의자 덕분인지 모든 걸 멈추고 착각의 늪에 빠질 수 있었다.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1939년~)’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리얼리즘 기법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세밀한 유화 작업으로 자연과 인공적인 소재의 대비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청량하고 평화로운 휴식을 준다. 그녀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공립도서관 등 유수의 기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 많은 컬렉터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작가가 예순에 접어든 시기부터 친구의 집에서 본 창가의 풍경은 그녀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그린 ‘여름 바람(Summer Breeze)’ 시리즈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황혼에 물든 날’, ‘느지막이 부는 바람(Late Breeze)’ 등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트 프린트로도 제작되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부부의 세계’ 외에도 드라마 ‘미스티’, ‘비밀의 숲’ 등에서 ‘황혼에 물든 날’ 아트 프린트가 소개되면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름 바람 Summer Breeze〉, 1995, 캔버스에 유채, 178.4 x 127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Friend’s home, Long Island, NY ©Alice Dalton Brown.

〈여름 바람 Summer Breeze〉, 1995, 캔버스에 유채, 178.4 x 127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Friend’s home, Long Island, NY ©Alice Dalton Brown.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빛, 물, 바람이 나에게는 마치 반짝이는 보석처럼 느껴졌다. 작품 속에 온갖 빛나는 보석이 알알이 박혀있는 듯했다. 치열하게 뜨거웠던 올여름. 무더위의 끝자락을 실감 나게 하는 청량한 늦여름 바람이 불어온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 속 빛, 물, 바람을 닮은 청아한 파란색 보석을 소개한다.

사파이어

하늘을 품은 보석, 사파이어. [사진 젬키주얼리]

하늘을 품은 보석, 사파이어. [사진 젬키주얼리]

사파이어(Sapphire)는 ‘하늘을 품은 보석’이라 불린다. 사파이어는 무색부터 노란색, 분홍색, 검은색 등 수많은 색으로 산출된다. 노란색은 옐로우 사파이어, 분홍색은 핑크 사파이어라고 부르는데 오직 청색만이 수식어 없이 ‘사파이어’라고 부른다. 이는 많은 사람이 여러 색의 사파이어 중에서 블루 사파이어를 가장 선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벨벳 같은 깊고 진한 청색에 뛰어난 광택을 가진 미얀마와 캐쉬미르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사파이어를 최고의 품질로 친다.

사파이어는 짙은 청색뿐만 아니라 옅은 청색을 띠기도 한다. 선호도가 높은 진한 청색의 사파이어에 비해 옅은 색의 사파이어는 보기 어려울 만큼 흔하지 않다. 옅은 색의 사파이어 또한 고유의 청색을 지니고 있다. 〈황혼에 물든 날〉에 커튼 사이로 비친 황혼에 물든 하늘색과 빛으로 반사된 바닥에는 투명한 청색의 사파이어가 드넓은 호수에는 짙은 청색의 사파이어가 알알이 박혀있는 것 같았다.

아쿠아마린

인어들의 보석함에나 있을 듯한 아쿠아마린. [사진 젬키주얼리]

인어들의 보석함에나 있을 듯한 아쿠아마린. [사진 젬키주얼리]

아쿠아(Aqua, 물), 마린(Marine, 바다). 이름만으로도 바다가 연상된다. 바다의 색을 가진 보석이다. 옅은 파란색부터 짙은 파란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띤다. 바다의 신으로 알려진 포세이돈이 인어들에게 돌을 선물로 주었는데, 인어들의 보석함에 들어 있던 이 돌이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바닷물을 물들여 바다가 이 아쿠아마린 색이 되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느지막이 부는 바람〉, 〈정적인 순간〉을 보며 수많은 보석 중에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푸른색의 아쿠아마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블루 토파즈

다른 파란 보석들과 비슷한 듯 다른 블루 토파즈. [사진 젬키주얼리]

다른 파란 보석들과 비슷한 듯 다른 블루 토파즈. [사진 젬키주얼리]

토파즈(Topaz)는 우리말로 황옥이라고 부른다. 황옥이라는 이름처럼 노랑, 갈색을 비롯하여 파랑, 분홍 등 다양한 색으로 산출된다. 이런 다양한 색깔 중 파란색을 가진 블루 토파즈는 특유의 청아하게 아름다운 파란색으로 사랑받는 보석이다. 블루 토파즈는 아쿠아마린과 함께 파란색 보석계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파란색일지라도 제각각 다른 독보적인 색상을 뽐낸다. 만약 〈여름 바람〉에 색이 있다면 블루 토파즈 같은 색이 아닐까.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는 2021년 10월 24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된다. 작가는 여든인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빛, 물, 바람을 사진과 같은 섬세한 붓 터치로 한 땀 한 땀 캔버스에 수놓는 앨리스의 화풍은 마치 청아한 보석과도 같다. 신비로운 빛과 색을 지닌 사파이어, 아쿠아마린, 블루 토파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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