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한국 전통 괴물로 ‘주얼리 한류’ 꿈꾸는 3인의 디자이너

중앙일보

입력 2021.09.12 15:00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82)  

나는 선덕여왕을 좋아했어. 선덕여왕에게 강한 연정을 느끼다가 그 사람이 남긴 물건 하나가 실마리가 되어 불 귀신이 되어버렸지 뭐야. 나는 사방을 불태우고 다니지.

삼국유사에 나오는 ‘지귀(志鬼)’라는 괴물의 독백이다. 지금도 전해지는 우리나라 설화 속에는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괴물들이 있다. ‘명사(冥司)’, ‘완전전요(宛轉纏繞)’, ‘지귀’ 등이 그 주인공이다.

갓 브로치와 완전전요 브로치. [사진 스튜디오오후]

갓 브로치와 완전전요 브로치. [사진 스튜디오오후]

곽재식 작가는 11년간 설화 속 괴물들을 수집해 2018년 『한국 괴물 백과』를 출간했다. 금속 공예와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오세영(29), 엄도연(28), 권민혜(27), 3인의 주얼리 디자이너는 이 책을 읽고 낯설지만 어딘가 친숙한 우리나라의 신비한 괴물들 이야기에 매료됐다. 『한국 괴물 백과』에서 영감을 얻은 3인의 디자이너는 괴물들의 이야기를 은이라는 금속에 녹여 주얼리로 만들어 냈다. 3인의 여성 주얼리 디자이너 손끝에서 탄생한 요상한 괴물들을 소개한다.

명사 갓 뱃지와 브로치

명사 갓 뱃지. [사진 스튜디오오후]

명사 갓 뱃지. [사진 스튜디오오후]

명사 갓 브로치. [사진 스튜디오오후]

명사 갓 브로치. [사진 스튜디오오후]

삼국유사 중 망덕사의 승려 선율이 저승에 갔다가 돌아오는 대목에서 ‘명사’가 나온다. 명사는 저승사자나 저승을 관장하는 높은 관리라는 뜻이다. 저승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명사 갓 브로치’를 착용한 유야호 유재석. [사진 MBC놀면뭐하니]

‘명사 갓 브로치’를 착용한 유야호 유재석. [사진 MBC놀면뭐하니]

3인의 주얼리 디자이너는 옛 선조가 썼던 갓의 형태를 상징적인 모티브로 명사를 형상화했다. 명사 갓 배지와 조금 더 큰 크기의 명사 갓 브로치가 있다. 선비의 고고한 품격이 느껴지는 갓 형태에 유려하게 흔들리는 갓 줄은 반짝이는 실버 체인으로 장식해 개성 있으면서도 착용감이 좋은 주얼리로 탄생했다. ‘명사 갓 브로치’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 ‘놀면뭐하니’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유재석의 부캐 ‘유야호’가 한복 위에 착용했던 브로치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2020년 우수 문화 상품 ‘K-RIBBON’ 에도 선정됐다. ‘K-RIBBON’은 2016년 3월부터 우리나라의 문화적 가치가 담긴 우수상품을 공식적으로 지정하고 국내외 확산을 지원하는 제도.

완전전요 뱃지

완전전요 뱃지. [사진 스튜디오오후]

완전전요 뱃지. [사진 스튜디오오후]

완전전요는 조선 시대의 UFO다. 광해군 일기에 기록된 이야기로 호리병 모양처럼 생겨 움직일 때마다 큰 소리를 내는 비행체다. 1609년 강원도에서 목격되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움직이는 속도가 무척 빠르며 날아다닐 때 빙글뱅글 도는 게 특징이다. 광해군일기에 나오는 내용이 로켓이나 제트 전투기, UFO 목격담과도 비슷하다.

디자이너는 빠르고 빙글뱅글 도는 완전전요를 바람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 3D 프린트로 스케일 모델링을 여러 번 거쳐 제작했다. 디자이너의 섬세한 손길과 30년 이상 경력의 피니싱 전문 장인들과 함께 제작 공정을 거쳐 바람의 역동성을 은 소재의 주얼리에 담아냈다. 완전전요는 세련됨이 느껴지는 디자인으로 일상의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배지가 됐다.

지귀 뱃지

지귀 뱃지. [사진 스튜디오오후]

지귀 뱃지. [사진 스튜디오오후]

삼국유사에 기록된 지귀는 선덕여왕을 짝사랑했다. 여왕의 행차를 기다리다 영묘사의 탑 아래에서 잠이 들었는데, 여왕이 팔찌를 두고 간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여왕이 다녀갔음을 알고, 사모의 정이 더욱 불타올라 마침내 불 귀신으로 변해버렸다. 그러곤 사방을 불태우고 다녔다. 불 귀신이 된 지귀의 모습을 디자이너는 캐릭터화했다. 타오르는 듯한 여러 갈래의 불길이 열정적인 모습이다. 물론 불같은 사랑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지귀 배지는 강렬한 불길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수작업으로 은 표면을 살려 은이 가지는 고유의 은은한 아름다움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주얼리를 제작하는 모습. [사진 스튜디오오후]

주얼리를 제작하는 모습. [사진 스튜디오오후]

오세영, 엄도연, 권민혜 디자이너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주얼리를 만드는 ‘스튜디오 오후’를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코리안 클래식(Korean Classic)’이라는 슬로건 아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문화를 재조명해 주얼리에 담고자 한다. 우리의 옛 문화를 조사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이끌기 위해 3인의 디자이너는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피니싱까지 모든 작업 과정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화 속 복을 담은 상징물을 형상화한 ‘민화 시리즈’를 시작으로 한국의 신비한 구전 설화를 담은 ‘설화 시리즈’, 모두가 기쁜 날을 표현한 ‘잔치 시리즈’ 등 우리 문화를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주얼리로 재해석하고 있다. 한국적인 가치와 전통문화가 모던한 디자인이자 트렌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주얼리 디자이너 오세영, 엄도연, 권민혜. 이들이 펼치는 코리안 클래식이 우리 문화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의 주얼리 애호가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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