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여성>영상매체 통해 여성문제 부각-소형 여성영화 제작 변영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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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여성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현장에는 늘 변영주씨(25)가 있다. 아무리 많은 인파가 몰려있어도 그는 언제나 쉽게 눈에 띈다. 빛 바랜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걸친 채 도금이 벗겨진 16㎜촬영기를 차르륵 차르륵 돌려대는 그가 바로 소형여성영화의 촬영을 도맡고있는 변씨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지난9월 여성주간(20∼27일)행사의 하나로 서울 인사동의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여성영상매체 한마당」에 출품된 사무직 여성들의 문제를 다룬 영화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와 맞벌이 주부들의 탁아문제를 다룬 비디오 『우리네 아이들』은 모두 그가 촬영한 것. 이 작품들은 매맞는 아내를 소재로 한 영화 『굴레를 벗고서』와 함께 지방에도 출품돼 광주여성영화제(9월7∼29일·광주가톨릭센터 강당)를 찾은 수많은 관람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영상매체만큼 효과적인 여성운동 매개체가 없어요. 영상매체는 관람객들에게 사실성을 높여줌으로써 그 내용을 믿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인건비는 제쳐놓고 단 3분 촬영하는데 1만9천원이나 드는 비싼 제작비가 문제』라며 웃는다.
법학도(이화여대 법학과 졸업)였던 그가 영화제자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여성문제에 눈뜨면서부터. 대학4년 때 「여성학연구」라는 과목을 수강했던 그는 기말고사 때 리포트대신 영화를 제작해 제출하자는 기발한(?) 착상을 했다.
집에 있던 8㎜「고물촬영기」를 이용해 18분짜리로 만들어낸 『X』는 부모로부터 고정적인 성 역할교육을 받지 않고 자라난 네명의 여자가 성장한 후 학교·사회 등에서 겪는 갈등을 다룬 내용으로 결국 여성의 문제는 사회구조적으로 해결돼야만 한다는 것을 제시해 주변의 주목을 끌었다.
『아버지(변지선씨·내과의) 취미가 영화였지요. 그런데도 정작 제가 영화를 하겠다니까 집에선 난리가 났어요. 특히 엄마는 「딴따라」딸을 두게됐다고 걱정이 태산같았지요.』 그는 결국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중앙대 대학원(연극영화과)에 진학, 『이제는 어머니가 미국을 다녀오실 때 할리우드에서 영화포스터를 사올 정도』라며 웃는다.
작년 「바리터」라는 여성영화인 모임이 결성되면서 여성촬영기사가 없어 만 1주일의 실습 끝에 촬영기사로 승격(?)해버린 그는 지금까지 『점아 점아 콩 점아』등 5편의 제작에 참여해왔다.
낡은 촬영기 때문에 필름을 모두 망쳐 「자장면」이 돼버린 일, 질식사를 당한 혜영·용철 어린 남매의 위령제를 촬영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초점이 모두 빗나가 버린 일, 달동네 가내수공업 현장을 촬영하다 수없이 문전박대를 당한 일등은 이젠 그의 소중한 추억거리가 됐다.
변씨의 가장 훌륭한 비판자이며 조언자인 아버지가 지난6월 『우리네 아이들』을 가편집한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이 정도는 하는구나』하고 비로소 인정해준 것이 제일 기쁘다고 했다.
여성들도 영화를 만드느냐는 세인들의 반문에서 여성문제를 절감한다는 그는 현재 장편 극영화 『여성 노동자의 삶』을 촬영 중.
변씨는 진짜 여성다큐멘터리라고 내세울만한 근사한 영화 한편을 만들어내는 것이 소망이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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