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H&M 떠난 자리 채우는 '고렴이' 브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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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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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딕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켓(ARKET)’이 지난 9월 30일 중국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브랜드의 중국 시장 진출 소식은 올 3월 ‘신장 면화’ 거부 의사를 밝히며 중국 내 불매 운동에 직면했던 스웨덴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 그룹 산하 브랜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진 ril.uk.com]

[사진 ril.uk.com]

지난해 12월, BBC는 중국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이 신장 면화를 수확하는 일에 강제 동원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에 나이키, H&M 등 글로벌 기업들이 신장 위구르족의 강제 노역 등을 우려하며 해당 지역의 의류 제조업체와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힌 성명이 중국 국영 언론 등 전파를 타며 퍼졌다.

중국 네티즌은 이들 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불매 운동을 벌이며 맞불 작전을 펼쳤다. 14억 중국 인구의 불매 운동 여파는 상당했다. 주요 온라인몰에서 이들 기업의 상품은 차단됐다. 심지어 일부 디지털 지도에서 매장 위치 정보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사진 Sourcing Journal]

[사진 Sourcing Journal]

불매 운동은 H&M과 나이키를 대상으로 시작됐으나, 아디다스, 컨버스, 심지어 명품 브랜드 버버리 등으로 확대됐다. 그중 H&M 매장은 중국 현지에 겨우 남아있으나, 온라인과 앱을 통한 상품 구매는 불가하다.

타오바오, 징둥닷컴, 핀둬둬(拼多多) 등 온라인몰에서 H&M 스토어가 사라진 것은 물론 샤오미, 화웨이, 비보, 텐센트 등 모바일 앱(APP) 스토어에서도 쇼핑몰 앱이 삭제됐다. 이에 H&M의 매출은 직격타를 맞았다. H&M의 올해 2분기 중국 시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으며, 7400만 달러(878억 3800만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ARKET]

[사진 ARKET]

이러한 상황에도 H&M은 중국 시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베이징 싼리툰(三里屯)에 문을 연 아르켓은 H&M 그룹이 지난 2017년 런칭한 브랜드로 남성, 여성, 키즈 의류와 가구 제품을 아우르고 있다. 아르켓은 세계 시장에 21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일부 매장에서는 갓 내린 커피도 맛볼 수 있다.

이번에 베이징에 오픈한 매장에서는 아르켓의 첫 스페셜티 커피숍을 운영한다. 총 2층으로 된 매장 규모는 860㎡에 달한다. 홈, 여행 등 가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아르켓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콘셉트를 모두 담았다고 평가 받는다. 아울러 ‘지속가능성’과 ‘투명성’ 등 현시대가 지향하는 가치를 앞세운 곳이기도 하다. 모든 아르켓 제품에는 리사이클과 지속가능성 소재가 사용됐다.

중국 상하이에 첫 매장 오픈을 앞둔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역시 H&M그룹이 런칭한 브랜드다. 처음 시작은 화장품이었으나 여성복, 신발, 주얼리 등 조금씩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는 곳이다.

[사진 WWD]

[사진 WWD]

[사진 Hello Magazine]

[사진 Hello Magazine]

H&M은 수년간 COS, Weekday, Monki 등 여러 브랜드를 선보이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아르켓과 앤아더스토리즈 역시 H&M 그룹의 이 같은 계열사 확대 전략의 일부인 셈이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특유의 ‘저렴이’ 느낌도 사라졌다. 가격대는 H&M 제품보다 훨씬 높다. 비슷한 스타일의 흰 셔츠의 경우 H&M에서는 최대 200위안(3만 6882원)정도, 아르켓과 앤아더스토리즈의 경우 약 600위안(11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두 브랜드는 중국 시장에서 매장을 오픈하기 전, 이미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장성을 확인했다. 앤아더스토리즈와 아르켓은 각각 지난 2019년 8월과 2020년 4월 티몰에 공식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했다. 이들 스토어는 각각 101만 명, 25만 6000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했다. 이 중 아르켓 스토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캔버스백은 월간 300개가량 팔렸다.

아르켓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캔버스백. [사진 Pinterest]

아르켓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캔버스백. [사진 Pinterest]

H&M 그룹은 산하 브랜드 확장에 힘입어 매출 호조를 이어왔다. H&M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순 매출은 약 54억 3800만 달러(6조 4549억 600만 원)로 전년 동기보다 75% 증가했다. 사실상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셈이다.

순탄할 것만 같던 H&M 그룹의 성장세에 제동을 건 것은 중국 시장이다. 중국은 미국과 독일에 이어 H&M 그룹의 세 번째로 큰 시장(전체 매출의 약 6%)이다. 앞서 설명한 불매 운동 때문에 H&M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상하이 난징시루(南京西路)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포함한 13개 매장을 중국 본토에서 철수했다.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매장 역시 고객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신장 면화’ 사건 외에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전반적인 매출 급감도 H&M 성장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품질과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에게 수년 째 외면받고 있다. 2018년 이후 중국에서 H&M과 GAP의 연간 매출은 각각 3.0%, 18.2%씩 감소했으며, 자라(ZARA)의 모기업인 인디텍스(Inditex)의 매출 증가세도 9.2%로 둔화됐다.

중고의류 위탁 판매 업체 스레드업(ThredUP)이 펼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밀레니얼 세대(M세대)의 40%가 “패스트패션 브랜드 제품 구매를 중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Z세대 응답자의 54% 역시 “(패스트패션 브랜드보다)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영국과 미국의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ASOS, New Look, TOPSHOP, Urban Outfitters와 GAP 산하 브랜드 Old Navy, Esprit은 잇달아 중국 시장 철수를 발표했다.

[상하단 사진 모두 ARKET]

[상하단 사진 모두 ARKET]

이러한 상황 속 H&M이 기존 ‘저렴한 이미지’를 싹 지운 아르켓과 앤아더스토리즈를 살며시 중국 시장에 들여온 것이다. 실제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이들 브랜드가 H&M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저우(廣州)에 거주하는 직장인 란(蘭)모씨는 “한 패션 블로거의 웨이보에서 아르켓과 앤아더스토리즈 옷을 발견했는데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며 “이후 SNS를 통해 두 브랜드가 H&M 산하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 됐고 사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고 밝혔다. 아무리 디자인 이 마음에 들어도 H&M의 그 어떠한 제품도 구매하기 싫다는 게 란모씨를 비롯한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한편 아르켓은 지난 3월 한국에도 첫선을 보였다. 여의도에 아시아 첫 매장을 오픈, 단 일주일 만에 2억 8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개장 후 몇 달간 예약해야만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20~40대 여성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과연 아르켓이 H&M에 대한 불매 운동 등 악재를 딛고 중국 시장에서도 이 같은 흥행 실적을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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