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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물려도 일엔 안물려요…애견미용사 인생사진·견생사진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 새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10월에도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사연을 모십니다.
 보내주신 사연은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인생 사진'에 응모하세요.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photostory@joongang.co.kr
▶8차 마감: 10월 31일

박정서(왼쪽). 오상은(오른쪽) 선생은 어떻게든 모든 강아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들의 마음과 달리 강아지는 제각각입니다. 이런 제각각의 강아지를 살피고 보듬는 데서 애견 미용의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정서(왼쪽). 오상은(오른쪽) 선생은 어떻게든 모든 강아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들의 마음과 달리 강아지는 제각각입니다. 이런 제각각의 강아지를 살피고 보듬는 데서 애견 미용의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저는 애견미용사 오상은입니다.
강아지가 좋아 이십 대 후반에
이 직업을 택했습니다.
늘 강아지와 함께 살며,
강아지 미용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삶과 궤를 함께하는
인생 동료가 있습니다.
저의 소중한 스승님이기도 하고,
저의 사장님이었으며,
저의 친구이기도 할 정도로 각별합니다.

매일 붙어 다니며 같이 일한 지
3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저는 샵을 오픈하고
선생님은 학원을 오픈하게 된 터라
부득이 1년 정도 떨어져 지내고 있네요.

서로 너무너무 바쁘고
강아지들에게 묻혀 살다 보니
만날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

보고 싶어서 사진첩들을 보면
그간 찍은 사진들은 다
일에 찌들어서 찍은 사진들뿐이더라고요.
어쩜 그리 서로 예쁘게 하고 찍은 사진이 없는지….

늘 사진을 같이 찍자 말만 하고
막상 시간을 내지 못했네요.

인생 사진 찍자는 핑계로
좋은 추억과 좋은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저의 스승이자 사장이었고 친구인
박정서 원장과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한 강아지들과
인생 사진, 견생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오상은 올림


모든 강아지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해주면 좋으련만 이는 언감생심입니다. 함께 사는 주인을 바라보는 게 강아지들의 본연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모든 강아지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해주면 좋으련만 이는 언감생심입니다. 함께 사는 주인을 바라보는 게 강아지들의 본연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오상은 씨의 애견 미용실로 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강아지들이 먼저 저를 반겼습니다.
그런데 반기는 강아지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열 마리 남짓입니다.

사람 반가워 날뛰는 열 마리 남짓 강아지를 보며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함을 직감했습니다.

사실 늘 그렇듯
개와 함께 사진 찍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 친구들이 사람 말을 들어줄 리 만무하니까요.

그런 데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열 마리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했습니다.

우선 사진찍기 전에 둘의 인연이 궁금했습니다.
스승이자, 사장이었고, 친구가 되는 인연이
흔하지만은 않으니까요.

“박정서 선생님이 저보다 세 살 많이요.
여기 애견 미용실 사장이었고요.
제가 직원으로 여기 와서
같이 일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그러다가 선생님이 학원을 오픈하면서
제가 여기를 인수했어요.”

세 살 차이,
허물없는 사이인데도
호칭은 깍듯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만큼 배우고 따른다는 의미가
호칭에서 느껴졌습니다.

박정서 선생에게 애견 미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열여덟에 친구가 배운다길래
재미있겠다 싶어 저도 배웠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내년이면 벌써 20년이네요. 하하”

강아지에 묻혀 살지만, 강아지와 사진 한장 제대로 못 찍고 여태껏 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상은 선생이 인생 사진에 응모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아지에 묻혀 살지만, 강아지와 사진 한장 제대로 못 찍고 여태껏 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상은 선생이 인생 사진에 응모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야기 도중에 오상은 선생 손가락에 눈이 갔습니다.
새끼손가락에 깁스한 상태였습니다.

“손가락은 강아지 미용하다가 다치신 겁니까?”

“네, 물려서 골절되었어요.”

“도대체 어쩌시다가?
그러면 강아지 꼴도 보기 싫어 실 텐데….”

그때 박정서 선생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우리 상은 선생,
덜렁이에다 사고뭉치입니다.”

“네에? 대체 무슨 사고를 치길래?”

“길 지나다가 아픈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으면
막 데려와요. 그리고 치료해주고 키우죠.
그런 개가 모두 여섯 마리죠.
최근엔 한쪽 눈 괴사한 고양이를 데려와서
치료하면서 보호하고 있어요.
집에 고양이가 세 마리나 더 있는 데 말이죠.
저한테 혼날까 봐 이젠 데려왔다고 말도 안 해요.
이리 상은 선생이 자꾸 모셔 오고
뒤치다꺼리는 제가 하고…. 하하하.”

그런데 정작 박정서 선생도 이리 말하면서
강아지 사랑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도 이 일을 시작할 무렵 길에
버려진 강아지 둘을 데려다
13년을 함께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둘이 무지개다리 건너고 나서
또 다른 강아지를 데려와서 키우고 있고요.

사실 애견 미용사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박정서 선생이 들려주는
애견 미용사로서의 삶을 들어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사실 애견 미용사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요.
되게 고생스러운 데 비해서
워라벨도 많이 떨어지는 편이예요.
우선 강아지가 가만히 있지를 않잖아요.

이런 강아지를 씻기고,
드라이하고, 털 다듬고,
발톱 깎고 귀 청소에
똥꼬 짜기까지 해야죠.
아무리 작은 강아지도
두 세시간 씨름해야 합니다.
이렇게 미용하고 애들이 집에 가서 푹 쳐지면
클레임을 거는 사람도 있어요.
왜 이리 애가 집에 와서 쳐졌냐며 클레임하는 거죠.
사실 사람이 사우나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애들이 여기서 모든 과정을 거치면
집에서 쳐지는 건 당연한 데도 말이에요.
‘선생님이랑 잘 놀고 왔어’라고
아기가 얘기해 주면 참 좋을 텐데….
아이가 말을 못하니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기기도 하죠. 하하하”

박정서 선생이 말을 야무지게 참 잘합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게끔 말을 하니
별명이 ‘약장수’라며 오상은 선생이 언질을 줬습니다.

‘약장수’답게 박정서 선생의 이야기는
야무지게 이어졌습니다.
“사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이 늘었어요.
반려동물 산업은 경기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좀 더 힘든 상황이 오면
감정적인 보상을 위해
반려동물에게서 위로를 받으려 하니까요.
사실 그 위로는 너무나도 큰 힘이 됩니다.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박정서 오상은 선생이 입은 옷은 애견 미용할 때 입는 유니폼입니다.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옷에 묻은 강아지 털이 떨어져 나가는 재질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정서 오상은 선생이 입은 옷은 애견 미용할 때 입는 유니폼입니다.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옷에 묻은 강아지 털이 떨어져 나가는 재질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버려진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며
강아지를 곱게 다듬는 일을 하는 그들,
아무리 힘들어도 강아지를 품는 건
강아지에게서 얻는 위로 때문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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