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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최순실 프레임' 덮어쓴 尹…"反文 외 장점 보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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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스스로가 대통령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다가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준 거 아니겠나.”

지난 8월 17일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역술인과 함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만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통령 되는 사람이 해야 할 언어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말 실수도 자주 하고, 누가 보기에도 준비가 안 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국민캠프 청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국민캠프 청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석 달여가 흐른 지금도 정치권에선 ‘정치 초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과연 대통령 선거에 나설 준비가 됐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계기로 살아 있는 권력과 싸우기 시작한 윤 전 총장은 국민들에게 ‘반(反)문재인’ 투사로 각인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각종 실정에 실망한 야권 지지층은 그를 통해 정권 교체가 이뤄지길 기대했고,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전격 사퇴한 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가 된 것도 그런 기대감이 반영돼 가능했던 일이다.

압도적 야권 주자였던 윤석열, 레이스 시작되자 잇따라 구설수  

이렇듯 야권의 압도적 대선 주자였던 그가 막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니 잇따른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부정식품, 후쿠시마 원전, 주 120시간 노동 등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실언 논란이 빚어진 데 이어 국민의힘 대선 경선 TV 토론이 시작되자 청약통장 발언을 두고 논쟁이 커졌다. 게다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석열이형TV’를 통해 “청약통장은 모를 수가 없다. 청약통장을 모르면 거의 치매환자”라고 말했다가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정치권에선 말 실수로 인한 각종 구설은 정치 초보라서 생길 수 있는 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꽤 많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말했듯이 정치권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생긴 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의혹은 단순한 실수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의 부친이 소유했던 서울 연희동 자택을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의 누나가 2019년에 19억원에 사들인 게 지난달 28일 ‘열린공감TV’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게 대표적이다. 윤 전 총장 선거 캠프에선 “우연일 뿐 정상적인 거래”라고 설명했지만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로또 당첨급의 확률”(천준호 민주당 의원)이란 반론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일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MBN 유튜브 캡처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일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MBN 유튜브 캡처

특히 지난 2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거진 윤 전 총장의 손바닥 ‘왕(王)’자 논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상당하다. 캠프 측의 첫 해명이 “(지난 1일 5차 토론회) 전에는 없었다”였는데, 3·4·5차 토론회 때 모두 있었던 게 드러난 뒤 “(윤 전 총장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네 할머니들이 토론회 갈 때 몇 차례 힘 받으라고 손바닥에 적어준 것”(김병민 캠프 대변인)이라고 바뀌었기 때문이다.

尹, 손바닥 ‘왕(王)’ 논란에 “어릴 때부터 부적 안 갖고 다닌 사람”

윤 전 총장은 3일 기자들과 만나 “지지자의 토론 잘 하라는 응원 메시지”라며 “이걸 주술 운운하는 분들이 있는데, 세상에 부적을 손바닥에다가 펜으로 쓰는 것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저는 어릴 때부터 친척들이 부적 같은 걸 줘도 서랍에다 넣어 놓고 안 갖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라며 “(왕자가 주술적 의미라는 건) 국정을 다루겠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의원 사이에선 “지지자가 선거 이기라고 선물을 주거나 글씨를 써주거나 하면 있을 수 있는 일”(재선 의원)이란 반응도 있다.

하지만 무속 신앙이나 주술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토론 때 손바닥에 왕 글씨를 쓴 행위가 공개됐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지자가 써줬든 아니든 정치에서 중요한 건 국민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다”며 “이번 사안에 ‘최순실 프레임’이 씌어지도록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도 “왜 왕이란 글씨를 썼는지 이유를 떠나 국민 눈높이나 상식적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운 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강골 검사’ 이미지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 “‘최순실 프레임’ 자초”…“상식적이지 않아”

야권에선 앞으로 위기 상황이 추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 전 총장이 “정치 공작”으로 규정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지난달 30일 검찰이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관여 사실을 확인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고발장 작성자로 거론되는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달 16일 오전 대구고검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고발장 작성자로 거론되는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달 16일 오전 대구고검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사건, 윤 전 총장의 측근으로 통하는 윤대진 검사장(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친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연루된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 등도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치권에선 윤 전 총장이 대통령 후보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교수는 “윤석열 전 총장의 장점은 문재인 대통령과 맞서 싸웠다는 건데, 현재로서는 그것 말고는 다른 장점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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