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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부동산 부채 GDP의 18%, 헝다 사태로 버블 위험 노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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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09면

[SPECIAL REPORT]
중국경제 긴급 진단
비관론 - ‘문어발식 확장’ 후폭풍

코로나19와 미국의 대(對)중 제재 속에서도 중국경제는 견고한 모습을 보였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코로나19로 한풀 겪었던 성장세는 올해 들어 가파르게 회복 중이다. 상반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2.7%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도 있지만 선진국 수요를 기반으로 대외교역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성장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회복세를 보이던 중국경제에 최근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중국정부의 자국 내 기업 규제로 이들 기업의 주가가 급락하고,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이던 대규모 부동산개발회사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가 파산하면 부동산시장에 대한 수요가 위축되면서 경제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사업비를 빌려 준 은행 등 금융권으로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벌어지면서 글로벌 기업의 공장이 수시로 멈춰서고 있다. 정전사태는 특히 장쑤·저장·광둥성이 심각한데, 이 3개 성은 글로벌 기업의 공장이 몰려 있는 제조업의 전초기지다. 정전사태가 이어지면 글로벌 산업생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지 언론은 정전사태가 내년 3월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진짜 위기는 헝다가 아니라 전력난”이라고 평가했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도 정전사태가 이어지면 3·4분기 성장률이 각각 0.1∼0.15%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는 정전에 따른 생산 감축이 연말까지 이어지면 올해 중국의 성장률을 1%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노무라증권은 이미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8.2%에서 7.7%로 내렸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면서 세계의 공장이다. 코로나19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경제가 휘청이면 한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경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헝다그룹이 디폴트 위기에 처하면서 중국 장쑤성 수저우에 짓고 있는 ‘헝다 문화관광 도시’도 공사가 중단됐다. [AFP=연합뉴스]

헝다그룹이 디폴트 위기에 처하면서 중국 장쑤성 수저우에 짓고 있는 ‘헝다 문화관광 도시’도 공사가 중단됐다. [AFP=연합뉴스]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드디어 꺼지는가. 중국 2위의 부동산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당장의 급한 유동성 위기는 간신히 넘겼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내년에 만기 도래하는 채무가 약 77억 달러(약 9조550억원), 2023년에는 108억 달러(약 12조7000억원)에 이른다. 헝다의 총 부채는 350조원대로 중국 GDP의 2%에 달한다. 이런 헝다의 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 온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중국판이 되지 않을까 시장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세계 증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헝다 사태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지방소도시에 소규모 주택을 싼값에 대량 공급하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급성장한 헝다의 성장은, 최근 30년 중국경제의 급속한 팽창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뒤덮은 부동산 열풍 속에 헝다는 2013~2018년 연평균 38.8%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했다. 부동산으로의 ‘몸집 불리기’는 헝다에 더 큰 야심을 꾸게 만들었다. 여행, 금융, 전기차 분야로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했다.

주택 선(先)분양으로 받은 계약금을 투자금으로 이용하고, 회사채 발행과 은행 대출에 자금 조달을 기대는 방식은 부동산 호황이 계속돼야만 지속가능하다. 그 부동산 호황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심각한 ‘부의 불평등’이 체제 안정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가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 철퇴를 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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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는 불량기업으로 분류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 끝없이 팽창해 오던 헝다의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6월 무디스를 시작으로 전세계 신용평가사가 헝다의 신용등급을 내리고 있다. S&P는 지난 7월 이후 두 달 간 헝다의 신용등급을 6등급이나 하향 조정해 현재 CC(신용상태 최악)까지 낮췄다. 무디스(Ca)와 피치(CC)도 모두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헝다는 자산매각으로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갚아야 하는 거대한 빚의 규모를 생각하면 자신의 힘으로만 파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같은 헝다의 위기는 중국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234개 도시에서 798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헝다에 계약금을 선지급한 부동산만 150만 채에 이른다. 헝다가 파산하면 이 돈도 공중에서 사라지게 될 공산이 크다. 헝다의 채권을 보유한 중국 건설사와 중소형 은행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헝다의 위기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 게 사실이다. 헝다의 은행 관련 차입금 규모는 중국 기업 전체 은행 대출의 0.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위기의 확산을 막을 수도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러나 중국 부동산 산업의 부채는 중국 GDP의 18%를 차지한다는 것이 모건스탠리의 분석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중국 경제성장률에서 0.5~1%포인트가 차감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중국의 경제 성장 잠재력이 4~5% 수준임을 감안할 때, 부동산 거품의 붕괴가 얼마나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올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계속 거품을 키울 수도 없다. 중국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 기조가 중국의 저출산, 고령화라는 예정된 미래와 만날 때 과거와 같은 부동산 호황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헝다가 이처럼 위기에 몰린 이유는 뭘까. 헝다가 위기에 빠진 건 중국경제 운영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다. 중국은 체제 유지를 위해 경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1978년 자본주의의 시장을 도입하는 이른바 ‘개혁’과 ‘개방’으로 전환했다. 중국은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정부와 국영기업은 뒤를 받쳐주는 ‘민진국퇴(民進國退)’를 기조로 성장해 왔다. 4차 산업혁명시대 중국경제를 견인하는 것은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라 불리우는 민간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중국 정부의 고답적(高踏的)인 경제 운영에 불만이다. 덩치가 커진 이들의 비판적인 목소리에 공산당은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앙·지방정부 부채·부실 폭발 위기

악화하는 분배상황을 개선한다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명분으로 빅테크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당이 경제 주도권을 쥐고 경제판을 새로 만들겠다고 나섰다는 얘기다. 중국을 여기까지 오게 한 민진국퇴가 아니라 이제는 ‘국진민퇴(國進民退)’의 시대로 반전된 것이다. 민간기업은 당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한다. 빈부 격차 해소를 목표로 시진핑 정권이 내건 공동부유가 성장 활력을 떨어지게 만들고, 투자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국진민퇴가 자칫하면 ‘황금알을 낳은 거위’를 죽이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중국 내에서도 고심이 깊어간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대(對)중 경제 압박도 높아지고 있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세계 최대의 빈곤국가에서 20세기 후반 대대적인 빈곤 탈출의 기적을 실현한 게 중국이다. 그 비결은 서구가 구축한 글로벌 무역체제에 참가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서구가 중국에 시장, 기술, 연구 분야 문을 열어 준 건 중국경제의 성장이 중국 체제의 민주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낙관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비견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체제는 서구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미국의 대중 전략도 변화했다.

올해 초 집권한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첨단기술 통제, 연구교류 제한, 중국 기술기업 규제 등으로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고 있다. 극단적인 정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도 중국견제에 관해서는 초당적인 합의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합해 글로벌 공급망(Global Value Chain)에서 중국 퇴출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내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 변화와 외부의 압박은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경제를 리스크 가득한 곳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의 중앙·지방정부에 누적된 엄청난 부채(지난해 말 중국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270.1%로, 빚의 액수는 약 50경원에 달했다. 매년 이자만 2경~3경원이다)와 부실이 드러나고 폭발해 큰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물론, 중앙과 지방정부에 누적된 부채와 부실이 폭발할 수 있다. 헝다그룹 사태는 그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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