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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SMIC, 미 공급망 봉쇄 견디고 날아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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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10면

[SPECIAL REPORT]
중국경제 긴급 진단

2018년 8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통신 장비 기업 화웨이의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국방수권법안에 서명했다.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면 중국으로 정보가 흘러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듬해 5월에는 자국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제한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대(對)중 제재는 조 바이든 정부로 넘어와서도 이어지고 있다. 되레 더 심해졌다. 바이든은 취임 반년 만에 미국이 투자나 기술 수출을 금지하는 기업 목록(블랙리스트)에 중국 기업 28곳을 올렸다. 블랙리스트 담당부처도 국방부에서 재무부로 이관했다. 미국은 물론 동맹국의 안보와 민주적 가치를 위협할 수 있는 중국 기업을 더욱 꼼꼼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샤오미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

반도체·통신 등을 위시한 미국 정부의 대중 기업 제재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화웨이다. 통신 장비 수출 규제부터 시작해 2019년엔 블랙리스트에 오른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매출이 급락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이 3204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4%나 줄었다. 분기별로는 지난해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감소했다. 미국의 제재로 미국 반도체 업체로부터 고사양의 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AP)를 공급받지 못하면서 고사양 스마트폰시장을 다른 기업에 내 준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미국의 제재로 표면적으로는 매출이 쪼그라들고 있지만, 그 속을 보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는 여전히 전세계 통신장비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자국 내 5G(5세대 이동통신) 증설 수요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내수시장 덕에 여전히 전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승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통신 장비 분야에서는 화웨이가 기술적으로 앞서 있고 실적도 전체적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특히 미국 제재를 계기로 고사양 반도체가 필요 없는 클라우드 중심의 기업용(B2B) 소프트웨어 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카날리스에 따르면 화웨이의 클라우드 부문 매출은 지난해 168%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시장 점유율은 17.4%로 알리바바(40.3%)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에는 점유율이 20%에 달한 것으로 관련 업계는 추정한다. 비록 고사양 스마트폰 시장을 내줬지만, 화웨이는 미국 제재를 계기로 또 다른 거대기업으로 비상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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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국의 최대 반도체 기업인 SMIC도 지난해 말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되레 회사는 폭발적인 성장세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160억9000만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3% 증가했다. 순이익도 52억4100만 위안을 거둬 전년보다 278% 성장했다. 코로나19로 자국 내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데다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재를 받고 있어 삼성전자나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와의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버틸 만한 상황인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정부의 제재가 첨단 장비에 집중돼 있어 저사양 설비 등은 수급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올해 상반기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단가가 상승하면서 순이익도 크게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오른 차이나모바일·차이나유니콤·차이나텔레콤도 마찬가지다. 중국 1위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은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3.8% 증가한 4436억 위안이었다. 순이익도 같은 기간 6% 증가한 591억 위안이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해외산업실장은 “화웨이나 SMIC는 해외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다른 중국 기업들은 내수시장 덕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크지 않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미국 제재 대상 기업의 사업을 국가단위로 살펴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시장은 완전히 개방된 시장이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화웨이 실적은 반 토막 났지만, 그 빈자리는 중국 기업인 샤오미가 채우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샤오미의 올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17%로 애플(14%)을 밀어내고 2위에 올랐다. 화웨이가 빠진 자리를 샤오미가 완벽하게 꿰찬 것이다.

반도체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스마트폰 AP 등을 설계하는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은 미국 제재를 직격탄을 맞았지만, 하이실리콘의 빈자리는 유니SOC가 매우고 있다. 유니SOC의 올해 2분기 전세계 모바일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9%로 삼성전자(7%)보다 높다. 하이실리콘의 역할을 유니SOC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셈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중 제재에 맞서기 위해 중국 정부가 결속 다지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잇따른 자국 기업 규제 배경으로 미국의 대중 제재를 꼽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외부의 적과 싸우려면 내부 결속부터 다져야 하는데, 중국 정부의 기업 규제가 이 같은 내부 결속 다지기용이라는 해석이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은 “미국과 중국은 상호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인데 미국 정부가 동맹국과 함께 공급망의 탈(脫)중국화를 추구한다”며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주요 산업의 공급망 확보와 기술 자립을 위해 내부 통제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기업 규제는 결속 다지기용”

하지만 중국시장이 폐쇄적이고, 내수시장이 아무리 크고 견고하다고 해도 미국의 대중 제재가 계속되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특히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다. 이런 미국이 중국 기업에 수출을 금지하면 중국 기업은 고사양의 첨단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 중국 정부나 기업들도 이게 고민이다.

SMIC만 해도 아직은 저사양 수요가 많아 어려움이 없겠지만, 기술 발달에 따른 첨단 제품이 시장에 계속 유입되면 내수시장마저 안심할 수 없다.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특허가 사용된 장비 도입이 어려워진 SMIC는 미국 특허가 사용되지 않은 장비를 도쿄일렉트론으로부터 도입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하이엔드(고품질) 시장에서 삼성전자나 TSMC를 넘어서겠다는 전략을 포기하고 미드엔드(중간품질) 시장에 집중하는 식으로 방향을 튼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계가 뚜렷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차원의 미래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반도체나 통신산업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정부의 신실크로도 전략) 전략의 핵심인 ‘디지털 실크로드’의 주요 인프라다. 디지털 실크로드는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의 경제를 연결하는 것이 목표인데, 2015년부터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사업이다. 올해 초 기준 약 26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센터장은 “화웨이와 SMIC, 차이나텔레콤, 차이나모바일 등 블랙리스트 기업 대부분이 디지털 실크로드 구축에 핵심적인 곳”이라며 “미국 정부의 제재가 장기화되면 디지털 인프라를 바탕으로 디지털 위안화 패권을 키우려는 중국 정부 전략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출범 후 중국 압박 법·결의안만 230건, 무역전쟁 치달은 트럼프 시기에 필적

날카로운 공격(Sharp-Elbows). 블룸버그통신은 7월 취임 6개월을 맞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對)중 제재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만큼이나 강경하다며 이 같이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전만 하더라도 강경 일변도였던 트럼프 정부에 비해 대중 제재 수위가 낮아질 것이란 예상도 있었으나 빗나간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초부터 중국 정부가 신장 지역에서 ‘집단학살’을 벌인다는 비난을 내놓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트럼프 정부가 시행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와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정책 역시 그대로 이어받았다. 오히려 전 정부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6개월여 동안 중국 관련 법안 및 결의안만 230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중국 군산복합체에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28개 중국 기업이 블랙리스트(미국이 투자나 기술 거래를 금지하는 기업)에 추가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 4년 간 31개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추가된 것과 필적하는 규모다. 지난달엔 중국의 과도한 산업 보조금을 지목해 추가 제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무역법 301조를 적용해 중국의 산업보조금 문제를 조사할 것이란 이야기까지 흘러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백악관이 유럽연합, 아시아 동맹 등과 공동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중국의 보조금 문제를 다루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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