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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아베의 시나리오였다"…스가는 끝까지 '마이너스의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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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결정!"

29일 열린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이틀 앞둔 27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중의원 회관에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사무실에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이 찾아왔다. 아베는 자신의 보수 노선을 이어받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을, 아마리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총재 선거가 결선 투표로 갈 경우, 기시다로 표를 몰아주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이날 두 사람의 회동 현장을 묘사하면서 "총재 선거 결과는 사실상 이날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총리관저에서 신종 코로나 대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3월 총리관저에서 신종 코로나 대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기시다가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은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담당상을 누르고 차기 총리가 된 것은 "아베의 시나리오대로"였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아베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숙적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과 손을 잡은 고노 담당상을 떨어뜨리기 위해 내심 기시다를 지지하면서도 다카이치를 적극적으로 밀었다고 한다.

당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고노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걸 막기 위해 다카이치의 세를 최대한 불려 표를 분산한 뒤, 국회의원 표 비중이 훨씬 큰 결선 투표에서 승부를 내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아베는 선거 직전까지 자신이 속한 파벌인 '호소다(細田)파' 의원들에게 전화를 일일이 돌려 지지를 호소했고, 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초반에는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 20명의 서명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던 다카이치는 1차 투표에서 유효표의 24.7%인 188표를 얻었다. 3위라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국회의원 표에서는 114표를 확보해 2위인 고노(86표)을 앞지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일본 새 총리 기시다 후미오 그래픽 이미지.

일본 새 총리 기시다 후미오 그래픽 이미지.

'아베 천하'는 계속된다

이번 선거로 아베의 정치적 저력이 다시 확인되면서 '아베 천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0일 요미우리·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기시다는 새 자민당 간사장으로 자신의 당선을 적극 도왔던 아마리 세제조사회장을, 내각 관방장관에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을 등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리는 아베 전 총리,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함께 '3A'로 불리며 제2차 아베 내각을 좌지우지한 인물이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도 '호소다파' 소속으로 역시 아베의 최측근이다. 아베의 '손발 역할'을 해 온 두 사람이 기시다 정권의 핵심을 차지하는 모양새다.

새 자민당 간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세제조사회장. [사진=지지통신 제공]

새 자민당 간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세제조사회장. [사진=지지통신 제공]

아소 부총리 역시 새 내각에서 부총리직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TV아사히는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 본인 역시 내년 호소다파 수장으로 복귀를 노리고 있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으로 돌아오며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 '제3차 아베 내각'도 가능성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스가가 지지한 후보는 이번에도…

한편 이번 선거의 'X맨'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였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 초반 '개혁'을 내세운 고노를 지지했던 국회의원들이 대거 기시다 지지로 돌아선 것은, 스가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자마자 자민당 지지율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스가를 '얼굴'로 내세워서는 중의원 선거가 어렵다 판단했던 국회의원들이 당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스가만 아니라면 고노든 기시다든 괜찮을 것'이라고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29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왼쪽)가 기시다 후미오 새 자민당 총재의 당선을 축하하며 함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9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왼쪽)가 기시다 후미오 새 자민당 총재의 당선을 축하하며 함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가 총리는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7월 도쿄도의회 선거, 8월의 요코하마(横浜) 시장 선거 등 재임 도중 자신이 이끈 3번의 선거에서 연이어 패했다. 특히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는 자신의 최측근을 출마시켜 공개적으로 지원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번에도 자신이 지지한 고노 담당상이 낙선하면서 '마이너스의 손'임을 인증한 셈이 됐다.

고노 진영에서도 스가 총리의 지지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고노에 표를 던진 한 의원은 가나가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코하마 시장 선거의 실패가 반복될 것'이라는 다른 진영의 예측과 야유를 뒤집을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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