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당나귀와 걷는 이야기입니다. 글과 영상과 사진은 임택 여행가가 보냅니다. 임택씨는 폐차 직전의 종로 12번 마을버스 ‘은수’를 타고 세계일주를 했습니다. 2014년에 떠나 677일 만인 2016년 9월 27일 서울에 입성했습니다. 남미~중미~북미~유럽·아프리카~중앙아시아~시베리아~일본~부산~서울 여정입니다. 5개 대륙의 48개국 147개 도시를 지나며 모두 7만㎞를 달렸습니다. 21세기 한국판 돈키호테라 할만합니다. 이번 산티아고 길에는 당나귀 '동키호택'과 열아홉살 동훈이가 길동무입니다. 당나귀 이름은 돈키호테와 임택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영어로 당나귀를 동키(donkey)라고 부르니 그럴듯합니다.
팬데믹으로 고단한 날들, 여행기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여정은 현지 사정을 몰라 넉넉히 80일로 잡았습니다. 더 일찍 마칠 수도 있습니다. 첫 회는 어린이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체로 썼습니다.]
왜 당나귀와의 여행을 생각했느냐고? 사실 나도 몰라. 그래도 물어본다면, 재미있어 보이잖아? 솔직히 당나귀는 나의 짐꾼이야. 산티아고 순례길은 장장 800킬로나 되는 길이로 빨리 걸어도 한 달이나 걸린다니 겁이 나더라고. 난 걷는 게 썩 내키지 않아. 게다가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간다는 것은 죽음이지. 당나귀에게 내 짐을 지게 한다면 나는 홀가분하게 걸을 수 있잖아. 당나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야. 이런 계획을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낸 것은 아니라고 말 하고 싶어. 당나귀와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은 3년 전부터 했으니까.
어느 날 우연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사진 한 장이 내 눈에 팍 들어오는 거야. 산티아고 순례길 어딘가에 세워져 있는 순례자들의 조각상 사진이었는데 거기서 당나귀를 발견했지. 말을 타고 가는 사람과 당나귀를 끌고 가는 사람. 그런데 당나귀는 사람 대신 짐을 잔뜩 싣고 가는 거야. 이때 갑자기 동화 속의 당나귀들이 생각났어. 당나귀들이 일꾼으로 나오잖아. 그래서 ‘당나귀에게 짐을 맡기고 나는 걷기만 하면 되겠네’하고 생각한 거지. 나쁜 생각인가?
사진을 보며 당나귀와 산티아고 순례길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한 거지. 또 한 가지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풀이 많다는 거야. 당나귀 먹이가 되는 풀들이 끝없이 있으니까 따로 먹이를 구해 주지 않아도 된대. 사실 당나귀 먹이가 제일 마음에 걸렸거든. 이제 나만 잘 챙겨 먹으면 되는 거야. 게다가 당나귀는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라서 나도 덩달아 관심을 받겠지? 난 아주 심각한 관심종자거든.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어. 제일 어려웠던 것은 당나귀를 구하는 일이었어. 스페인은 너무 먼 나라여서 한국에서 당나귀를 데리고 갈 수는 없지. 처음에는 당나귀를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사려고 했어. 당나귀 한 마리가 50만원도 안 되더라고. 사는 일은 아주 쉬워 보였지만 사실은 더 복잡한 일들이 있더군. 외국인이 사는 것도 까다롭지만, 무엇보다도 먼 길을 떠나려면 교육을 받은 당나귀라야 한다잖아. 당나귀도 공부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지.
당나귀와 걷는 산티아고 순례 여행은 자꾸만 멀어져 갔어. 그렇다고 포기할 택이가 아니지 폐차 6개월을 남긴 마을버스로 세계 일주를 한 나 아니겠어? 먼저 스페인의 당나귀 트레킹 업체를 수소문했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 그런데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한 업체에서 연락이 온 거야. 뷰로 트랙이라는 당나귀 농장이었어. 그런데 어휴!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거야. 무려 왕복 2300km라니. 당나귀는 살아있는 생명이라서 트레일러에 오래 타지 못하거든. 당나귀를 싣고 오가는 데만 3일이 걸리고 비용이 무려 3백만 원이나 든다는 거야. 결국 또 벽에 부딪힌 거지.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한걸음 씩 나아갔어. 냇가에 징검다리를 놓듯이 말이야.
뷰로 트랙의 사장인 데니스가 너무 안타까워하는 거야. 이 여행이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는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와우! 데니스로부터 ‘Happy News’라며 연락이 왔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새로운 농장이 나타났다는 거야. 그 농장은 우리가 길을 떠나는 바로 그 시작점 근처에 있다는 거지. 게다가 무려 800만원이 넘는 당나귀 렌트비를 지원하겠다는 거였어.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고 하잖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도 전인데 이미 기적이 일어난 거야.
이 농장 이름은 바로 아스토트랙이었어. 아스토는 바스크어로 당나귀라는 뜻이래. 스페인어와 달라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자기네는 스페인이 아니고 바스크라고 하더라고. 이유는 모르겠고 말을 따로 쓰더군. 3년 전에 결정을 한 뒤 좌절과 희망이 요동치더니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된 거지. 두 번째 징검다리 돌이 놓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게다가 그 많은 렌트 비용을 모두 지원하겠다는 거야.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돼.
나와 여행을 할 당나귀 이름이 ‘동키호택’이야. 스페인의 동화인 ‘돈키호테’와 내 이름을 합친 건데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 모든 사람이 우리 호택이를 사랑해 줄 거라고 믿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아주 중요한 계기가 있었어. 언젠가 우리 동네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간 적이 있어. 그런데 많고 많은 동화책 중에 여행가가 어린이를 위해 쓴 책이 없는 거야. 괴짜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대.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앗! 괴테인가 보다. 암튼. 그러니까 여행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많이 해야 하는 데 갈 수가 없잖아. 그래서 동화로 된 여행 이야기를 써 보자고 생각한 거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여행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런 의미야. 어때 대충 이해가 가지?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특별한 동행이 한 명 더 있어. 바로 스무살의 이동훈이라는 청년이야. 실제로는 19세라는 것을 어제 알았어.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났지. 나보고 '아부지'라고 불러. 여행이 낳은 아들인 셈이지. 그런데 말이 안 통하기는 당나귀나 동훈이는 다를 바가 없지. 40년이라는 세대 차이가 나니 그럴 만도 하지. 동훈이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어. 장래 꿈이 바로 여행모험가라는 거야. 대학을 가지 않을 거래.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고. 함께 여행을 준비하며 동훈이의 굉장한 능력을 발견했어. 어마 무시한 친화력. 당나귀와 빼박이야. 놀라운 건 영어를 굉장히 잘해. 외국인만 만나면 쏼라쏴라 뚜르르 기관총이 입에 달려있는지 알았다니까.
우리 여행은 이렇게 당나귀, 19세의 멋진 청년, 그리고 ‘아는 척 대장 임택’ 이렇게 세 명이 떠나는 여행이야.
앞날이 궁금하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어떤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아무도 몰라. 자, 그럼 함께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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