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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 두 얼굴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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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질 때면 곧잘 저울질한다는 말을 가져다 쓴다. 그런데 그 기울기를 수평으로 맞추어야 하는 저울질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저울질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은 법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정의의 여신(유스티티아)상이다. 법 정의실현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한 손에는 저울과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는데, 왼손 오른손을 바꾸어 칼과 저울을 든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여신의 손에 들려있는 저울은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데, 동서양 어디서나 이 여신은 두 눈을 덮개로 가리고 있거나, 부릅뜨고 있는 두 가지 형상으로 표현된다.

공정성 지키기 위해 가려진 눈
정의 실현을 위해 부릅뜬 눈
‘내겐 옳은 것, 네겐 그른 것’ 잣대

이 두 형상이 표현하고자 하는 각각의 의미는 확실하다. 공정성과 공평성을 위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고, 오로지 법에 의한 잣대만 적용하도록 두 눈이 가려져 있는 모습과,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과 사실을 왜곡시키는 일이 없도록 정의의 올곧은 시선으로 사태를 직시하고 판단하라는 의미를 담은 모습이다. 법 앞에서 공정과 정의, 평등을 외치는 여신의 두 눈은 가려져 있어야 할까? 부릅뜨고 있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신의 두 눈이 당연히 가려져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이 공정과 공평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듯하다. 하지만 눈을 가리면 법을 마주하고도 맹목(盲目)이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여신의 두 눈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바로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덮는 가리개가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사건들은 사건 한 가지의 양상만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의 틀 속에서 수많은 맥락들을 배경으로 조목조목 얽혀있는 복잡한 속내를 가진 경우들이 많다. 이때 여신은 오롯이 법에 의한 판단만을 할 수 있도록 두 눈을 가려야 할까? 아니면 정의의 올곧은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도록 부릅뜨고 있어야 할까?

법의 공정과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의 저울질에서 수평의 유지는 죄와 그에 해당하는 처벌이 같은 (죗)값으로 매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저울의 한쪽에는 단죄를 위한 정의구현의 법 실행이라는 무게가 실리게 된다. 여신의 다른 한 손에 들려있는 법전이나 칼은 그 죗값에 대한 근거가 되거나, 법이 가지는 근엄한 위력이 칼로 상징되어 단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울질을 한다는 것은 한쪽의 기울기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수평을 이루던 저울은 미미한 자극에도 기울기를 달리 하게 되고, 이는 다시 수평의 상태로 되돌려져야 함을 말한다. 공정성이 담보된 정의와 평등을 주장하는 외침 속에서, 기울기를 맞추기 위해 그 한쪽에 어떤 것을 두어야 할까? 여신의 손에 들려있는 법전에 근거하여 그 해답을 찾아보려 하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려고 하면 투명한 물체처럼 잡히는 것 없이 경우의 수(case by case)로 남는다. 더구나 여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까지 더하여지면, 저울의 한편은 법 실행이 아닌 ‘쩐’의 무게가 자리 잡고 있어 수평을 맞추기 위한 추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우리가 체감하는 법 정의실현은 여신의 두 눈이 가려지지도, 부릅뜬 것도 아닌, 마치 솔로몬의 지혜처럼 한 눈 가리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그때의 편리대로 감긴 눈으로 공정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태의 여러 정황도 직시하고 있다는 부릅뜬 눈으로 정의실현을 외칠 수 있으니. ‘모든 것은 법대로!’라는 여신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는 그 절절한 의미는 누구를 향한 정당성과 정의로운 공정성이 될 수 있을까?

두 눈을 가려야 할지, 부릅떠야 할지 가늠해야 하는 상황에서, 뜬 눈이나 다름없는 한 눈 가리기라는 묘수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에 내게 불리한 것은 감긴 눈으로 외면하고, 유리한 것은 부릅뜬 눈으로 탐욕스럽게 챙겨갈 수 있는 편리한 선택지이다. 뜬 눈과 감긴 눈을 번갈아 들이대며 ‘내게는 옳은 것이고, 네게는 그른 것이다’와 같은 잣대는 그래서 늘 유효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진실(truth)은 변하지 않지만, 사실(fact)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라면, 법 정의실현은 진실과 사실 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법원의 로고는 성 평등을 의식한 듯 남성 (혹은 여성)으로 보이는 실루엣에 치맛자락 같은 법복을 휘날리며 저울을 치켜들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더구나 얼굴 반쪽만 드러내는 이 옆모습에서 뜬 눈일 수도, 가려진 눈일 수도 있다는 기막힌 이중성이 절묘하게 그려진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