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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시일야 ‘방송’ 대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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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나이 쉰이 되어도/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어머니, 아버지//아들을 기다리며/서성이는 깊은 밤//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부드러운 달빛의 손길/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아, 추석이구나”

졸시 ‘추석’입니다. 추석은 제 마음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뵙는 날입니다.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함께 절을 올리며 부모님의 모습이 이어져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선친은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고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친의 음성이 좋다고 했지요. 선친의 꿈과는 무관하지만 저는 방송기자를 했고 아들·며느리도 방송계에서 일하고 있으니 방송 가족이 된 셈입니다. 일곱 살짜리 손자는 유치원에서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PD’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방송이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방송은 정권의 소유물 아니다
방송의 공정성·중립성 지키고
주인인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국영방송 시절의 KBS는 정부 홍보 방송이었습니다. 6·25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발발 이틀 뒤인 27일 새벽 2시에 경무대를 빠져나와 대전으로 달아나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라는 방송을 내보내는 바람에 북한군이 이미 서울에 진입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말을 믿고 남아 있던 시민들은 28일 새벽 국군의 한강 인도교 폭파로 퇴로마저 차단당하고 말았습니다.

3개월 후 서울이 수복되자 많은 시민들은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정부로부터 ‘부역자’란 이름으로 처형당하거나 곤욕을 치렀습니다. 초대 대통령의 숱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도덕성과 신뢰는 이때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해, 그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을 다시 내주게 되자 시민들은 정부가 뭐라고 하든 말든 앞다퉈 피난길에 올라 적들은 텅 빈 수도에 입성했지요.

3·15 부정선거 때 이에 항거하는 마산 의거를 최초로 보도한 것은 민영 라디오 부산문화방송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통치 기간에도 민영 TBC와 DBS·CBS의 보도는 국영 KBS와 결이 달랐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단행된 언론 통폐합으로 방송은 KBS와 MBC 양대 공영 체제로 전환됐다가 노태우 정부 때 민영 SBS가 설립됩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케이블 종합 편성 채널들과 뉴스 채널들이 방송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다채널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한국 방송의 시스템은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집권 세력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였습니다. 방송의 공영성이 중요한 것은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를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국영 KBS의 일방적 보도가 이승만 대통령을, 박정희 대통령을 지킬 수 있었습니까?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던 방송사들은 5·18 때 광주 사옥이 불탔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설립을 허가한 종합편성채널들과 뉴스전문채널들이 그를 지켜줄 수 있었습니까? 유튜브 같은 1인 미디어들까지 등장한, 이미 변해버린 세상에서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는 부질없는 구시대적 행태일 뿐입니다. 만능도 아닌 방송을 장악해보겠다고 정권이 바뀌면 무리해서 공영방송의 사장과 임원진을 바꾸고 유관 기관의 장을 교체해봤자 민심 이반 외에 정권이 얻을 것은 거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강규형 전 KBS 이사가 불복 소송을 내 지난 9일 최종 승소한 것도 이의 반증입니다.

방송계가 반성해야 할 것은 검언유착이나 권언유착 시비 같은 것으로 정치 싸움판의 중심에 서거나, 터무니없는 광우병 선동 보도, 도쿄 올림픽 개막식 때 저지른 국제 망신 생중계, 편파 보도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고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어느 정당이건 방송의 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집권하면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황성신문 장지연 주필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날에 목놓아 운다’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데 빗대어 오늘 ‘시일야방송대곡(是日也放送大哭)’을 씁니다.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에 비겨볼 때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유독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민이 주인인 방송은 영원합니다. 오는 대통령 선거 때 저는 가식적인 선거용 구호가 아닌, 진심으로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줄 후보를 찾아 한 표를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