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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미국의 ‘대만’ 이름 바로 세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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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대만(台灣, Taiwan)의 별칭은 보배 같은 섬이라는 뜻의 보도(寶島)다. 물산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좋아서라고 한다. 16세기 이곳 해역에 진출한 포르투갈인은 대만을 ‘일하 포모사’라고 불렀다. 포모사는 ‘아름답다’, 일하는 ‘섬’이란 의미다. 1970년대 대만의 재야인사들이 반정부 활동의 구심점으로 만든 잡지의 이름 또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메이리다오(美麗島)’였다. 대만이란 이름은 옛날부터 대만 남부에 살던 소수민족 타이워완(台窝灣)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대만이란 이름은 옛날부터 대만 남부에 살던 소수민족 '타이워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대만이란 이름은 옛날부터 대만 남부에 살던 소수민족 '타이워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49년 마오쩌둥(毛澤東)에 패한 장제스(蔣介石)가 난징(南京)의 중화민국 정부를 대만으로 옮기면서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함께 양안(兩岸, cross-straits) 시대가 열렸다.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양쪽 언덕에서 체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하나의 성(省)으로 취급해 ‘대만성(台灣省)’이라 부른다. 반면 대만은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대륙(大陸, mainland)’이라는 호칭을 고집한다. 그러나 71년 대만이 유엔에서 축출되면서 무게 추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내 대만청에 걸린 대형 그림.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고 대만을 수복한 정청궁(鄭成功)의 위업을 묘사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내 대만청에 걸린 대형 그림.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고 대만을 수복한 정청궁(鄭成功)의 위업을 묘사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대륙의 중국 공산당 정부는 세계 각국과 수교하면서 전제 조건으로 ‘하나의 중국’을 내세웠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만 정부를 상대할 때 중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은 좀 더 유연한 의미를 갖는다. 대만과 대륙 모두 중국이긴 한데 누가 중국을 대표하는지에 대해선 각자 해석하자는 것이다(一個中國 各自表述). 어찌 됐든 유엔에서 쫓겨난 대만은 이후 국제무대에서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 中華台北)’로 불린다. 2020 도쿄 올림픽 때도 대만 선수들은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 대신 대만 올림픽위원회 깃발을 앞세워야 했다.

대만 올림픽 선수단은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 올림픽위원회 깃발을 앞세워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대만 올림픽 선수단은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 올림픽위원회 깃발을 앞세워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덩치가 커진 중국은 이제 대만을 중국 속의 대만이란 뜻에서 ‘중국 대만(China Taiwan)’ 또는 ‘중국 대만성(Taiwan Province of China)’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데 최근 중국과의 전면적인 경쟁에 돌입한 미국이 대만에 대한 호칭 문제에서 딴지를 걸고 나서는 모양새다. 미 워싱턴에 있는 대만 대표부의 명칭은 ‘타이베이 경제문화 대표부(Taipei Economic and Cultural Representative Office)’인데 이를 ‘대만 대표부(Taiwan Representative Office)’로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타이베이’에서 ‘대만’으로 이름이 고쳐지는 건 의미가 크다. 대만의 독립을 바라는 차이잉원(蔡英文)의 대만 민진당 정권은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대만공화국’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차이잉원(앞줄 가운데) 대만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국호를 ‘중화민국’에서 ‘대만공화국’으로 바꾸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는다. [AP=뉴시스]

차이잉원(앞줄 가운데) 대만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국호를 ‘중화민국’에서 ‘대만공화국’으로 바꾸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는다. [AP=뉴시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중국’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 두 나라가 되는 셈이다. 미국이 ‘대만 대표부’로 이름을 바꿔준다는 건 자칫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미국의 행동은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미 동맹국이나 중국에 반감을 가진 국가들이 앞다퉈 미국을 따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리투아니아는 지난 7월 유럽 국가 중에선 처음으로 ‘대만 대표부’를 개설했다.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건 불문가지다. 리투아니아에 파견했던 중국 대사를 불러들이고 리투아니아와의 화물열차 운행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미국은 대만 독립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AP=연합뉴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미국은 대만 독립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에도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대만의 분리독립주의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걸 중지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또 애국주의를 파는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에서 “만일 미국이 명칭을 변경하면 이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포기하는 ‘중대 사변’이다”라면서 중국의 주미 대사 소환 등 중국의 격렬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중국과 각을 세우기로 한 미국이 중국의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왜?

대만 소수민족의 주류인 고산족(高山族)의 행사 모습. [중국 바이두 캡처]

대만 소수민족의 주류인 고산족(高山族)의 행사 모습. [중국 바이두 캡처]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슨 일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했다. 공자는 이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화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君君, 臣臣, 父父, 子子)”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바로잡는 건 세상을 보는 눈부터 새로이 하겠다는 뜻이다. 이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言)이 서질 않고 말이 서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은 양안 문제에서 대만에 대한 이름부터 다시 세우고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79년 중국과 수교하며 중국의 대표성을 인정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긴 했지만, 지금은 “글쎄” 하는 자세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프레임의 전환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 민주당은 지난해 8월 당장에서 양안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삭제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 민주당은 지난해 8월 당장에서 양안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삭제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 민주당은 지난해 8월 당장(黨章)에서 양안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원칙’을 이미 삭제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은 이게 미국의 대만 독립 지지 의사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바짝 긴장한 적이 있는데 이제 미국이 그런 뜻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도 지난해 11월 “대만은 줄곧 중국의 일부분이 아니었다”고 말해 중국으로부터 ‘인간쓰레기(人渣)’라는 욕까지 얻어먹었다. 대만 문제는 미·중 간 가장 민감한 사안인데 그 폭발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만 사태는 한반도 정세와도 직결된다. 비상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미 워싱턴 주재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부’ 이름을 #‘대만 대표부’로 명칭 변경 고려하는 바이든 미 대통령 #‘하나의 중국’ 원칙 흔드는 것으로 도미노 효과 기대돼 # 중국은 대만 독립세력에 잘못된 신호 준다며 격렬히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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