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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녀’서 악바리 매력…“축구가 애인, 경기 지면 차인 느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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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예능 축구로 뜬 후지모토 사오리 

일본인 후지모토 사오리는 ‘수어(手語) 아티스트’다. 한국이 좋아 한국어 수어를 배운 그는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POP 공연 장면을 수어로 재해석 해 표현한다. 그가 올린 영상은 전 세계 BTS 팬들, 특히 데프 아미(deaf amy)로 불리는 농인(聾人)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한국인도 따기 힘들다는 한국어 수어 통역사에 도전하고 있다. 2020년 7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필기 시험에 합격했고, 실기에 한 번 떨어진 뒤 재도전 중이다.

사오리는 최근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에서 반전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6개 팀 선수 중 최단신(1m53㎝)인데다 축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외국인으로 구성된 FC 월드 클라쓰의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찼다. 사오리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악착같은 플레이로 월드 클라쓰의 3위 입상에 큰 역할을 했다. 모델 팀인 구척장신과의 3-4위전에서는 2-0으로 달아나는 ‘원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6일 사오리를 중앙UCN 스튜디오에 초청했다.

각본 없는 진솔한 드라마에 공감

후지모토 사오리가 아리랑의 첫 서양식 악보와 가사를 새긴 옷을 입고 방탄소년단 노래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후지모토 사오리가 아리랑의 첫 서양식 악보와 가사를 새긴 옷을 입고 방탄소년단 노래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공을 향해 악착같이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준결승에서 아비가일 언니가 길게 차 준 볼을 전력질주해서 잡으려 했는데 넘어져서 못 잡았어요. 그 장면에서 포기하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잡으면 우리 팀 모두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는 열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3-4위전 막판에 상대 선수가 부상으로 나가자 최진철 감독이 사오리 선수를 뺐는데요.
“감독님이 부르셔서 무슨 지시가 있나 보다 하고 갔는데 조용히 ‘여기 있자’ 하셔서 어리둥절했어요. 곧바로 ‘아 (선수 숫자를) 4대4로 만들어 주시는구나 깨달았죠. 이게 스포츠의 마인드구나 느끼고 감동했어요.”
최진철 감독은 어떤 분인가요?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표현도 잘 안 하셨는데 같이 훈련하면서 되게 밝아지시고 정도 많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혼을 많이 내고 칭찬을 거의 안 하셨는데 가끔씩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사오리가 제일 예쁘다’ 이런 칭찬을 훅 던져주시는 거예요. 거기서 힘을 얻고 더 열심히 하게 됐죠.”
구척장신의 최용수 감독이 중앙UCN과 인터뷰에서 “FC 서울 선수들이 구척장신만도 못하다”고 해 화제가 됐는데요. 구척장신은 어떤 팀이던가요?
“파일럿 방송 때는 꼴찌였잖아요. 시즌 들어와서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3-4위전 끝나고 이현이 언니가 제게 ‘사오리를 보면서 자극 많이 받았어. 우리가 실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거야’라고 하셨어요.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팀이니까 더 강해질 겁니다.”
시청자들이 골때녀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요?
“골때녀는 다큐이자 각본 없는 드라마, 살아있는 예능이잖아요. 출연자 모두가 땀을 흘리고 다쳐 가면서 진심으로 이기려고 하는 진솔한 자세에 공감하시는 것 같아요. 한 골 넣어도 우승한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울고 하는 모습, 다들 ‘축구에 진심이다’고 할 만하죠.”

BTS 농인 팬 ‘데프 아미’ 큰 반향

사오리가 ‘골 때리는 그녀들’ 3-4위전에서 모델 팀 구척장신을 맞아 분전하고 있다. 사오리는 2-0으로 달아나는 골을 넣었다. [사진 SBS 화면 캡처]

사오리가 ‘골 때리는 그녀들’ 3-4위전에서 모델 팀 구척장신을 맞아 분전하고 있다. 사오리는 2-0으로 달아나는 골을 넣었다. [사진 SBS 화면 캡처]

수어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수어와 축구의 공통점부터 물었다. “수어도 축구도 소통이라고 봅니다. 수어는 말없이 손짓과 표정으로 소통하는 것이고, 축구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팀 플레이가 중요하죠. 감독님과 팀원들이 필드에서 하나 되어 소통하는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수어 아티스트는 원래 있던 건가요?
“수어 아트나 수어 예술 같은 표현은 있었지만 수어 아티스트라는 명칭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저는 단순히 통역을 하는 게 아니라 원곡을 완전 다르게 해석해서 청인(聽人)과 농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 수어 아티스트를 하려면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야 하고 한국 농문화를 깊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수어 교육원을 다니면서 선생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죠.”
BTS 노래를 한국어 수어로 표현하면 외국인들도 이해하고 공감하나요?
“수어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보고 이해한다는 건 좀 어려울 수 있어요. 수어 가사를 통역하는 게 아니니까, 한국 농인들도 ‘이런 가사를 이렇게 표현했구나’ 하고 느끼는 거죠. 외국인이 뜻을 알고 싶으면 BTS의 안무와 가사를 보면 되겠죠.”
“왜 BTS의 작품을 마음대로 해석하나”라는 비난을 받은 적은 없나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처음에 가장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웠던 게 그 부분입니다. 그런데 공연하다 보니 정반대 반응이 뜨거웠어요. ‘BTS를 예술적 가치로 표현해 줘서 고맙다’ ‘사오리를 통해 수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데프 아미(deaf amy) 분들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십니다.”
사오리가 보는 BTS는?
“전 세계 사람들이 BTS를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철학과 메시지를 느낍니다. 개인의 아픔을 표현하고, 가난해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거기에 열광하고 위로 받고 힐링이 되는구나 싶었어요.”

사오리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만든 ‘한글 옷’을 입고 왔다. 아리랑의 첫 서양식 악보와 가사를 새긴 블라우스다. 처음 이 옷을 입고 나왔다는 사오리는 “한글을 전 세계에 알리자는 뜻에 동참하는 의미”라고 했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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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한글은 백성들이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쉽게 쓸 수 있도록 세종대왕이 발명한 글자잖아요. 그런 배경이 저한테는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또 한글은 누가 언제 만들고 반포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글자라고 알고 있어요. 이런 의미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어에도 종류가 있다면서요?
“문장식 수어는 국어책에 나오는 문장에 수어를 1대1로 대입한 거라고 보면 됩니다. 농식 수어는 국어와 어순·표현이 다르고, 사전에 없는 관용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아무래도 농식 수어가 더 어렵고, 특히 표정을 나타내는 게 가장 힘들어요. 농인들은 우리가 부사를 써서 강조하는 표현을 얼굴에 자연스럽게 드러내거든요. 아무리 의식하고 연습해도 ‘너무 약해요’라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취미나 사귀는 사람이 있나요?
“3년 동안 시간 나면 한국어 수어 공부만 했어요. 지금도 재수생이고요. 사귀는 사람이요? 시간이 있어야죠. 지금은 축구가 애인이죠. 축구를 하면서 위로를 받고, 게임에 지면 남자친구랑 헤어진 느낌, 차인 느낌입니다. 하하.” 

이영표, 사오리에게 ‘축구 원 포인트 레슨’

이영표

이영표

사오리는 진짜로 예전에 축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골때녀에서 외국인 연합팀 뽑는 테스트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니저와 함께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처음으로 공을 차 봤다고 한다.

“연습 이틀째에 마스크 쓴 남자분이 들어오셔서 ‘축구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제가 가르쳐 줄 게요’하면서 원 포인트 레슨을 해 주셨어요. 그분이 이영표(사진) 감독님이었는데 저는 몰랐어요.”

방송사에서 연출한 게 아니냐고 묻자 사오리는 절대 아니라고 두 팔을 휘저었다. “이영표 감독님은 골때녀를 하는 줄도 몰랐대요.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도 없어요. 나중에 FC 액셔니스타 감독이 되셔서 다시 만났는데 ‘사오리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됐어’라고 칭찬해 주셨어요.”

사오리는 벌써 골때녀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시즌1에서 사오리는 열심히 뛰고 달리기 잘했다면 시즌2에서는 ‘축구’를 하고 싶어요. FC 월드 클라쓰 목표요? 시즌2는 2등이고, 시즌3에서는 우승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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