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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선수들 정신 차려야…여자 모델팀보다 멘탈 약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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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해설·예능 ‘독수리’ 변신 최용수

‘독수리’ 최용수(50)는 성공한 축구인이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에서 빠지지 않는 그는 A매치 69경기에서 27골을 넣었다. 프로축구 LG 치타스(현 FC 서울) 입단 첫 해 K리그 신인왕에 올랐고, 이 팀에서만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요즘 축구 해설과 예능에서도 훨훨 날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막걸리 해설’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SBS의 축구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서는 최약체였던 구척장신(모델 팀)을 조련해 첫 승과 조별예선 통과라는 수확을 얻었다. 가족이 모두 나와 좌충우돌 하는 프로는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되겠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최 감독을 중앙UCN 스튜디오에 모셨다. 인터뷰는 시종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FC 서울 얘기 할 때만 빼고.

선수 인성 고치려 말고 실력만 갖다 써야

축구인·해설가·예능인으로 성공한 최용수 감독을 표현하려고 세 번의 순간조명으로 촬영하는 ‘후막동조 기법’으로 찍었다. 신인섭 기자

축구인·해설가·예능인으로 성공한 최용수 감독을 표현하려고 세 번의 순간조명으로 촬영하는 ‘후막동조 기법’으로 찍었다. 신인섭 기자

요즘 예능인이 다 된 것 같은데요.
“방송을 해 보니 축구랑 비슷해요. 스태프진과 출연진이 혼연일체가 돼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결국 팀워크가 맞아야 합니다. 저는 뭘 해도 뿌리를 뽑는 스타일이라 책임감을 갖고 하는데 축구만큼 쉬운 건 없는 것 같아요.”
함께 출연하는 가족들 반응은?
“가족이나 집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제안을 받고는 커 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뭘까 생각해 봤어요. 조심스럽게 의사를 물었더니 의외로 아이들이 ‘재밌겠다’며 흔쾌히 허락했죠. 집사람만 반대했는데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요즘은 출연 분량에 은근히 욕심을 내고 있어요. 하하.”
중1 따님이 ‘아빠 해설은 전문적인 분석이 부족하다’며 똑 부러지게 말하던데요.
“딸 얘기가 100% 맞습니다. 제가 뜨끔뜨끔할 정도로 팩트 폭격을 하니 대역을 쓸까도 생각 중입니다(웃음). ‘막걸리 해설이지만 짚어줄 건 짚어준다’는 분들도 있지만 언제 어떤 멘트를 해야 할지 타이밍 맞추기가 어려워요. 제 목소리도 해설하기 썩 좋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사투리 고칠 수 있는 학원이 있으면 당연히 갔을 겁니다.”
구척장신은 어떤 팀인가요.
“예전 경기를 보니 형편없는 팀이었어요. 전부 키만 크니 다양한 선수 조합이 안 되고, 힘들게 노력해서 그 분야 톱이 된 분들이라 쉽게 말하면 개인종목 선수들이었죠. 저도 ‘왜 저런 약체 팀을 맡아야 하나. 현장(지도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칫 잘못되면 내 이미지나 커리어에 상처가 되는데’ 싶어서 제작진과 갈등도 있었어요. 제가 좀 민감했죠.”
축구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선전한 모델 팀 구척장신 선수단(흰색 유니폼). [SBS 화면 캡쳐]

축구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선전한 모델 팀 구척장신 선수단(흰색 유니폼). [SBS 화면 캡쳐]

어떻게 팀을 바꿔놨나요.
“공을 어떻게 차고 위치를 어떻게 잡는지 기본부터 가르쳤죠. 협동심·희생· 헌신을 강조했고요. 훈련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지하게 임하고, 개인훈련도 열심히 했어요. 최약체로 평가받던 선수들이 호흡을 맞춰 골을 넣고 첫 승을 하고 예선을 통과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는 걸 보면서 저도 뿌듯했죠.”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는?
“주장 한혜진이죠. 왜 자신의 분야에서도 톱을 유지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근성과 끈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훈련과 자기관리, 팀을 이끄는 리더십이 남달랐어요. 토너먼트(준결승) 앞두고 한혜진이 코로나 확진 판정 받는 바람에 선수들이 격리돼 연습을 제대로 못한 게 좀 아쉽죠.”
축구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도 많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 어머니들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전혀 해보지 않은 분야에서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는 열정과 에너지가 옆에서 보면 안쓰러울 정도였죠. 그게 시청자에게 희열과 감동으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우리 K리그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런 간절함과 절박함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지 묻고 싶었어요.”

최 감독은 FC 서울 사령탑에 오른 첫 해인 2012년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16년 중국 팀으로 떠났던 그는 2018년 말 2부 강등 위기에 빠진 FC 서울에 복귀해 극적인 잔류를 이뤄낸다. 지난해 7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최 감독을 경질한 FC 서울은 28일 현재 K리그1 최하위(12위)로 떨어져 또다시 강등을 걱정하고 있다.

“지도자는 나를 관리하고 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감독은 자기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있지만 절대 티를 내면 안 됩니다. 선수들은 감독 표정·말투를 보고 어떤 심리 상태인지 꿰뚫어 보고 있어요. 많은 지식을 쌓고 내공을 단련해 면담할 때 답변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선수 인성 잡으려고 하지 마라”는 말도 하셨네요.
“착한 선수 11명 나가 봤자 경기가 재미없어요. 키 큰 선수, 빠른 선수, 느리되 판단 속도가 빠른 선수 등으로 조합을 이뤄야죠. ‘쟤는 버르장머리가 없어’ 소리 듣는 친구들도 저는 좋아했어요. 그 선수의 실력만 갖다 쓰면 되니까. 괜히 감정이 들어가면 선수도, 감독도, 팀도 버리게 될 수 있어요.”
한국이 도쿄 올림픽 8강에서 멕시코에 참패했는데요.
“주관적 판단입니다만, 선수 구성에서 실패했어요. 축구 대표팀은 결과만큼 흥행도 중요해요. 국민의 애정과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라도 와일드카드 손흥민이 필요했어요. 조별예선 2, 3차전 대승에 도취해 수비 조직력을 점검할 기회를 놓쳤고, 개인 능력이 좋은 멕시코를 상대로 맞불을 놓은 전략도 결과적으로 실패였죠.”

전문성 풍부한 사람이 구단 운영 필요

FC 서울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주변에서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저는 말을 아껴야죠. 시즌 전에 프런트와 현장이 한마음이 되어서 선수단을 구성했느냐? 100%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왜 결과가 안 좋으면 현장 지도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뒤에서 움직였던 프런트는 뒷짐을 지고 있나요. 서로 책임을 나눠야죠. 구단 운영도 노하우와 전문성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수들은 어떤가요.
“선수들도 정신 차려야 해요. 저 따위로 하면서 어떻게 FC 서울 엠블럼을 달고 뜁니까. 수많은 선배들이 키워왔고 K리그 선구자 역할을 해 왔는데, 아까 얘기한 구척장신보다 못한 멘탈을 가지고 경기장에 나가니…. ‘다음 경기가 있으니까’ ‘나는 국가대표 출신이니까’ 개소리는 하지 말라 그래요. 그런 멘탈 자체가 틀려먹은 거예요. 한 경기에 목숨을 걸어야죠.”

최 감독은 쉽게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설마 우리가 강등되겠어? 하는데 설마가 현실로 올 수도 있는 거예요. 다리가 끊어지더라도 죽기살기로 뛰어야죠. 그게 프로죠.”

중앙UC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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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볼’ 차 욕먹은 2002 월드컵 미국전 “영광이다”

황선홍

황선홍

최용수 감독과 인터뷰 말미에 ‘즉문즉답’을 했다. ‘나에게 2002 월드컵 미국전은 OO이다’라는 질문에 최 감독은 “영광이다”고 답했다. 의외였다. 후반 유상철과 교체 투입돼 막판 결정적인 찬스에서 ‘홈런볼’을 쏘아 두고두고 욕먹은 경기 아닌가. “‘미국전’ 치면 안정환처럼 골 넣은 선수도 나오지만 최용수란 이름도 회자되지요. 좋은 것만 가질 수는 없잖아요. 우리같이 광고판에 올라가다 넘어지고, 찬스에서 하늘로 뻥 쏘고….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임팩트가 있으니까. 저만 그랬나요? 선홍이 형은 저보다 몇 배 더 했죠.”

최 감독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황선홍을 끌어들였다. “다음 생에는 선홍이 형이랑 저랑 미국에서 만날 것 같아요. 미식축구 선수로. 거기서 득점랭킹 1, 2위를 다투고 있을 겁니다.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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