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진이형처럼…삼성전자 노조 "전직원 연봉 천만원 올려달라"

중앙일보

입력 2021.09.23 14:28

업데이트 2021.09.23 14:33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 [뉴시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 [뉴시스]

다음 달 삼성전자 노사가 사상 첫 임금 협상에 들어가는 가운데 노조 측이 전 직원 연봉 1000만원 일괄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주로 경기도 성남시 판교 일대에 입주해 있는 정보기술(IT) 업체들 사이에서 이뤄졌던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삼성전자에도 적용해 달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연봉 ‘일괄 인상’ 움직임에 대해 생산성 향상 기대 효과가 있지만, 되레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조 “2000명 설문으로 인상액 정해”

2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는 다음 달 5일 사측과 상견례를 하고, 첫 임금·복지 교섭에 나설 예정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조합원 5000여 명이 가입해 삼성전자 내 4개의 노조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삼성전자노조(이하 노조)는 이를 위해 지난 13일부터 임협 초안에 관한 조합원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다음 달 초 공개할 계획이다. 노조의 임금 협상안 초안은 ▶전 직원 계약 연봉 일괄 1000만원 인상 ▶코로나19 격려금 지급(인당 약 350만원)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지급 ▶자사주 지급(인당 약 107만원) ▶하위 고과 임금 삭감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여기서 눈에 띄는 항목이 연봉 1000만원 일괄 인상 주장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직원이 11만 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노조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전체 1조1000억원 규모다.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 11만 명의 평균 보수는 1억2700만원이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사내 자율기구인 노사협의회를 통해 기본 인상률 4.5%, 성과 인상률 3% 등 7.5%의 임금 인상률을 정했다.

최소 1조 이상 소요… “최종안 아니야”

진윤석 전국삼성노조 위원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인상률(퍼센티지)로 적용하면 기본급이 높은 상급자에게 후하고 하급자에게 박한 구조가 돼 정액제로 의견을 모았다”며 “조합원 포함 직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타사 인상률, 회사 실적을 분석해 1000만원이라는 액수를 정했다”며 “경영진의 임금 인상률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최종안이 아니라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조 측은 올해 초 게임업체 넥슨에서 시작된 연봉 ‘일괄 인상 릴레이’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넥슨은 지난 2월 인재 확보를 위해 전 직원의 연봉을 800만원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넷마블·엔씨소프트·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게임·IT 기업들로 확산했다. 엔씨소프트는 개발직군에 대해서는 ‘1300만원 플러스알파(+α·성과급)’ 인상, 비개발 직군은 ‘1000만원 +α’ 인상을 내놨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달 12일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달 12일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삼성전자]

과거 2014년 부영그룹이 “재계 순위 상승에 따라 ‘몸집’에 맞는 대우를 한다”며 전체 직원의 연봉을 일괄적으로 1000만원 올린 사례가 있지만, 그동안 재계에서 연봉 일괄 인상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연봉 일괄 인상은 新성과주의? 독배? 

전문가들은 최근 급격한 처우 개선 바람이 분 데는 단기적 형평성을 중요시하는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고려대 김동원(노사관계학) 교수는 “MZ세대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보지 않아 근무할 때 최대한 임금을 인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에 따르면 전국삼성전자노조에 가입한 20~30대의 비율은 50~60%에 이른다.

게다가 ‘귀하신 몸’이 된 개발인력 모시기 차원의 성격도 있다. IT 분야에서 우수 인재 공급난을 겪으면서 이들의 임금 협상력이 커진 것이다. 일부 기업은 개발인력에 대해 대졸 초봉 5000만·6000만원 지급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른바 ‘깜깜이’ 성과분배 시스템을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반영됐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거지자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합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노조도 이를 인식해 매년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넥슨 판교 사옥 전경. [사진 넥슨]

넥슨 판교 사옥 전경. [사진 넥슨]

사기 진작과 생산성 향상 기대   

이 같은 연봉 일괄 인상으로 기업은 직원의 사기 진작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김동원 교수는 “이것이 효율성 임금이론 효과”라며 “같은 조직 안에서 상·하급자 간 연봉 격차가 줄어드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넥슨에서 근무하는 A씨는 “처음 800만원 연봉 인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직원들이 무척 좋아했지만 업계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돼 이제 인상 사실을 체감하는 직원이 별로 없다”며 “외려 회사 안에서는 ‘왜 보직이나 연차와 관계없이 똑같은 금액을 올렸느냐’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원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내 익명게시판에서 (일괄 인상안에 대해) 구성원의 반응이 미지근하다”고 전했다.

‘원조’ 넥슨선 “체감도 낮아져” 목소리

성균관대 조준모(노동경제학) 교수는 “임금 체계의 변화 방향은 최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연봉 일괄 인상은 모두에게 획일적인 것을 탈피하려는 시대적 흐름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교수는 “인건비가 올라 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사회적으로 위화감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봉을 일괄 인상한 엔씨소프트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11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15% 늘어났다. 넥슨과 넷마블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반대로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 업체는 ‘인력 블랙홀’이 된 몇몇 유력 회사에 밀려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는 경영자협회에서 지나친 인건비 상향을 조정한다”며 “우리나라 역시 사용자 단체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성실히 교섭 임할 것”  

진윤석 위원장은 “기존의 인사평가 시스템을 노사가 함께 평가하고, 새로운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며 “이 같은 전제가 없다면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더 맞는 방향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매년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지급해달라는 요구안에 대해서는 “절대적 수치보다는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지표를 경제적 부가가치(EVA)에서 영업이익의 10%로 바꾼 것처럼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달라는 의미”라고 답했다.

노조는 협상 최종안을 확정하기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라이브 방송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삼성전자 사측은 “성실히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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