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韓·中·日 불교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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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29일 일본 교토(京都)에는 평화의 물결이 일렁였다. 한.중.일 3국의 불자 5백여명이 모여 격변의 지구촌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40여분간 교토 시내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명찰 기요미즈데라(淸水寺)부터 일본 최대의 재가 불교단체인 리쇼코세이카이(立正成會) 교토 지부까지 3㎞를 걸어가며 총성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 불교의 생명 사상을 알렸다.

행렬은 1백m 가량 이어졌다. 대형 소라로 만든 일본의 전통 악기인 호라가이(ホラ角) 연주자가 선두에 섰고, 그 뒤를 각국 불자들이 따랐다. 호라가이의 묵직한 저음이 교토의 골목 골목에 울려퍼졌으며, 길가 시민들은 이런 행진을 처음 본 듯 신기해했다. 불자들은 점심도 삼각김밥 두 개로 해결하고 남은 돈을 지구촌 어린이를 돌보자며 유니세프에 기증했다.

행진 전 기요미즈데라에선 합동 법회도 열렸다. 한.중.일 3국이 20분씩, 총 한시간에 걸쳐 진행된 법회에서 세 나라 불자들은 전 세계 분쟁의 종식을 호소했다. 언어도 다르고, 가사(袈裟) 색깔도 다르고, 예법도 달랐으나 평화를 향한 염원에선 다름이 없었다. 한국 불교계를 대표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부처님은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평화를 가르쳤고 중재에 나섰다. 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6회 한.중.일 불교 우호교류회의가 28~29일 교토에서 열렸다. 세 나라 불교 지도자는 국가.종단.종파를 초월해 불교의 자비.평등 이념으로 세계 평화를 구현하자고 다짐했다. 회의 직후 채택된 공동 선언문에서 3국 불자들은 "인류 공통의 소원인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타자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의식의 결과"라며 "민족과 종교의 이름으로 격화되는 대립.항쟁 관계를 끝내도록 정진하자"고 결의했다.

이날 회의는 한.중.일 불교 정상회담 같았다. 한국에선 불교 12개 종단의 수장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 천태종 총무원장 운덕 스님, 진각종 통리원장 효암 정사 등이 참여했다. 일본측에선 한.중.일 국제불교교류협의회 이사장과 의장인 고바야시 류쇼(小林隆彰) 스님과 나카무라 고류(中村康隆) 스님 등 각 종파 수장이 합류했고, 중국 측에선 이청(一誠) 중국불교협회장, 성후이(聖輝)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3국 불자들은 또 '불교와 평화-일상생활과 계(戒)'를 주제로 한 학술강연회에서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 핏빛 분쟁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을 걱정했다. 한국의 홍파(관음종 총무원장) 스님은 내년 행사를 주최하는 중국 측에 북한 불교인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성후이 스님은 "남북한 동질성 회복을 지지하는 뜻에서 북한 불교인을 초청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교토=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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