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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승환이 저격한다

‘박성민 소방수’ 방화범 됐다…‘무적논리’에 되레 당한 이철희

중앙일보

입력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오른쪽)과 박성민 비서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오른쪽)과 박성민 비서관.

얼마 전 국회 보좌관 생활 10년의 종지부를 찍었다. 정치권에서 청년기를 다 보냈다는 감흥과 함께 경력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한창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국회 보좌관 출신 선배 중 정치경력을 잘 발전해온 좋은 예를 찾자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을 꼽을 수 있다. 비록 나와 진영은 다르지만 보좌관에서 정치연구소 소장으로, 그리고 다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이어온 그의 이력은 소위‘국회 밥’을 먹어 본 사람들에겐 경력의 정석과도 같다. 경력 관리도 그렇지만 평소 밝혀온 자신의 소신이나 지난 총선에서“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불출마한 그의 모습 등은 당시 ‘국회 밥’ 먹는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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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으로나 평판으로나 그렇게 잘나가던 이철희 수석이 지난 7월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국보협)는 물론 그의 친정인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로부터 비난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발단은 청와대 박성민 청년 비서관이었다. 대학교 3학년, 25세의 이렇다 할 경력도 없는 청년을 1급 공무원에 앉힌 지난 6월의 청와대 인사에 대해 국보협은 “이런 인사는 청년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분노만 살 뿐”이라는 입장을 냈다.
논란의 당사자인 박성민 비서관은 침묵하고, 담당자인 청와대 인사수석도 잠잠했건만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이철희 정무수석이‘갑툭튀’ 해서는“니들 뭐냐 도대체, 그럼 니들은 시험으로 뽑았냐”며 평소 그 답지도, 더더욱이 정무수석답지도 않은 반응을 보였다. 민보협 까지 합세해 “보좌진을 낙하산 집단으로 호도하지 말라”며 공세를 펼친 배경이다. 소방수를 자처해 사태 진화에 나선 이철희 수석이 불길만 키운 방화범이 된 것이었다.

소방수를 자처한 방화범 

박성민 비서관의 임명은 불법으로 자녀 학력 만들기에 나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와 부동산 분노가 들끓던 와중에 벌어진 LH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불공정과 내로남불로 2030 청년들의 표심이 떠나가자 단행한 인사다. 안희정에서 오거돈, 그리고 박원순으로 이어진 진보세력 지사들의 권력형 성범죄로 핵심 지지층인 젊은 여성들 민심마저 멀어지고 있다는 여권의 진단 후 꺼낸 카드였다. 이미 지난 4·7 재보궐 선거는 서울·부산 모두 참패했고,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의 젊은 대표 이준석 돌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청와대가 야심 차게 꺼내놓은 대안이 박성민 카드였고, 그 막중함에 대한 적절성과 청년들의 박탈감을 묻는 후배들의 질문에 이철희 수석은“니들은 뭐냐?”로 응수했다. 임명은 부적절했고, 대응은 최악이었다. 남은 것이 있다면 이철희 수석을 필두로 한 586 세력이 청년세대를 어떻게 이용하려 하는지 이번 사태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지난 2019년 11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청년인재영입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당장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페이스북 캡처]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지난 2019년 11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청년인재영입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당장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페이스북 캡처]

조국 전 장관의 위선, LH의 불신, 집권당의 권력형 성범죄, 재보궐 참패 등 그 어느 것에도 2030 청년들의 잘못은 없다. 그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앞세워 권력을 장악한 586 운동권의 잘못이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IMF(국제통화기금) 국가부도위기를 통해 앞선 세대를 밀어냈고,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확보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21대 국회 전체 중 무려 60%의 의석수, 그리고 100대 기업 이사진 수 72%를 장악한 것 역시 모두 그들이다. 정치와 경제뿐만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그리고 교육계와 문화계까지, 586 운동권 세력은 앞선 세대를 밀어내고 뒷세대를 착취하며 권력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위선과 정치적 과오들에 대해 그들은 반성하거나 책임질 생각이 없다. 오직 전 정권을 탓하며 청년세대를 총알받이로 내몰 뿐이었다.

황산벌의 희생양인가 

어찌 됐건 이 모든 과정의 최대 피해자는 박성민 비서관이다. 박 비서관을 보면서 영화 '황산벌'의 화랑이 떠올랐다. 계백과 맞서 싸웠다던 신라의 화랑 관창은 이기기 위해 결투를 신청한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등 떠밀려 나선 것이었다. 장군의 아들이자 15세의 소년이었던 그의 처참한 죽음은 아군이 사기를 넘어 독기와 비장함을 품게 하는 최적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지난 8월 26일 '제4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뉴스1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지난 8월 26일 '제4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뉴스1

청년정치학교를 기획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정치하려는 청년들과 함께해온 입장에서 박성민 비서관이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정권을 장악한 586 세력의 화랑이 되어선 안 된다. 그들이 백마에 태워주고 또 비단옷을 입혀줄지는 몰라도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장렬한 죽음뿐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대항해 싸워야 한다. 청와대 청년 비서관이란 자리로 586의 화랑이 될 것이 아니라, MZ 세대의 짱돌이 되어야 한다. 박성민이라는 이름이 2030의 박탈감이 아니라 586의 위협감이 되어야 한다.
이철희 수석과 586세대가 20대 시절에 느꼈던 분노를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그 분노와 저항감, 상실감과 박탈감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직시하길 바란다. 박성민 비서관에 대한 이철희 수석의 궁색한 방어는 역설적으로 권력의 끝자락에서 휘청거리는 586세대의 절박함만을 보여줬다.
이철희 수석이 한창 정치평론으로 방송가에서 이름을 날릴 때 그에게는‘무적논리’ 화법이 있었다. 자기 진영의 문제점이 지적되면 우선 공감하는 척하면서 원인을 전 정권에서 찾거나, 일반화시키려는 토론, 혹은 개인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치환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대입하는 논리 등이 그의‘무적논리’였다.
이철희 수석이 그 논리를 자신에게 적용해 보기를 바란다. 박성민 비서관의 문제를 청년 전체의 입장으로 대입해 보면 박탈감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를 옹호한 자신의 모습에서는 586 운동권 세력의 위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꽃가마’로 위장한‘상여’에 청년 정치인들 태우는 일은 그만두시길 바란다. 권력의 순장조는 586 운동권으로 충분하다.

이승환 전 국회의원 보좌관, 작가

이승환 전 국회의원 보좌관, 작가

이승환(전 국회의원 보좌관/ 작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독학사 고시로 대학 공부를 마쳤다. 2011년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다 국회에 들어가 무급 인턴부터 시작해 정병국 의원의 최연소 보좌관(4급)이 되었다. 『고 어라운드』『시민의 상식』두 권의 책을 썼다. 2021년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수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