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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플루언서들은 왜 전부 여성일까.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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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매력적인 사람들이 참 많다. 올여름 푸른 하늘 아래, 또 지하철 안에서 발랄한 몸짓으로 춤추던 가상인간 ‘로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고도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인간들은 대부분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소설미디어(SNS)에서 수많은 팔로워(구독자)를 거느리며 말 그대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한국의 첫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본명은 '오직 단 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난 '오로지'로 순수 한글 이름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나이는 22세.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의 첫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본명은 '오직 단 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난 '오로지'로 순수 한글 이름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나이는 22세.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알고 보니 로지 같은 사람들(?)이 꽤 된다. 미국 LA에 사는 릴 미켈라, 일본계인 이마(Imma), 흑인 슈퍼모델 슈두(Shudu), 금발 뮤지션 버뮤다 등. 한국에서도 최근 래아·루이·루시 등 여러 가상인간들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다.

가상인간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9월18일 현재 약 305만명)를 거느린 릴 미켈라. 브라질-미국계로 19세다. 미국 LA에 거주하며 모델 겸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가상인간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9월18일 현재 약 305만명)를 거느린 릴 미켈라. 브라질-미국계로 19세다. 미국 LA에 거주하며 모델 겸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사실 블로코 같은 남성 가상인간도 있다. 로지를 개발한 싸이더스엑스도 연내 3인조 남성 가상인간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어쨌든 인지도가 높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가상인간은 모두 여성이다.

일본의 패션 인플루언서 이마. 이케아 일본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지난 5일 폐막한 '도쿄 패럴림픽 2020'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의 패션 인플루언서 이마. 이케아 일본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지난 5일 폐막한 '도쿄 패럴림픽 2020'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이유가 뭘까.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다소 싱거운 답을 내릴 수 있다. 패션·음식료·뷰티·리빙 등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산업 대부분이 여성에게 소구력이 높고, 이것들을 홍보하려면 여성 인플루언서나 모델의 활용도가 남성보다 높다. 실제 소매 분야에선 ‘진짜 사람’ 인플루언서도 대부분 여성이다.

세계 최초 가상 슈퍼모델 '슈두(Shudu)’.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캐머런 케임스 윌슨이 3D(입체)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세계 최초 가상 슈퍼모델 '슈두(Shudu)’.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캐머런 케임스 윌슨이 3D(입체)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이번엔 성격이나 캐릭터가 주는 ‘매력’ 측면이다. 여성 가상인간들은 이들과 주로 소통하는 10·20대들이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할 만한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음악을 좋아하고 패션과 화장 등을 통해 개성을 뽐낸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성 소수자 등 다양성을 지지한다. 밝고 자신감 넘치며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즐기는 그들. 딱 봐도 국적을 막론하고 Z세대가 지향하는 캐릭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상인간들은 대중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매력과 현재 유행하는 트렌드 등을 치밀하게 계산해 개발된다. 이 과정에서 호감도가 높은 연예인 등 유명인의 특징을 외모·성격·취미 등 부문별로 반영하기도 한다. 1998년 등장한 사이버 인간 아담도 당시 배우 원빈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1998년 1월 등장한 사이버가수 아담. 실제 인간 목소리에 캐릭터만 입힌 반쪽 사이버 가수였다. [중앙포토]

1998년 1월 등장한 사이버가수 아담. 실제 인간 목소리에 캐릭터만 입힌 반쪽 사이버 가수였다. [중앙포토]

결국 지금 인기를 얻는 가상인간들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정체성·페르소나가 반영됐고, 이 특징들을 표현하는 데 여성이란 성별이 더 적합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젠더 갈등이 첨예한 시국이라 조심스럽지만 그만큼 여성에 비해 현실에서 모델로 삼을 남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진짜냐 가상이냐에 집중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로 나고 자란 세대들은 가상이든 진짜든 나에게 어떤 즐거움과 활력, 변화의 계기와 위안을 주는 지가 중요하다. 이들에겐 매일 보고 이야기하는 가상인간이 몇 년 동안 본 적 없는 친척보다 훨씬 ‘실재’에 가깝다. 하물며 성별이야 무슨 상관일까.

SKT가 지난달 19일 국내 기업 최초로 메타버스 공간인 이프랜드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메타버스 대중화 시대를 열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 소년중앙

SKT가 지난달 19일 국내 기업 최초로 메타버스 공간인 이프랜드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메타버스 대중화 시대를 열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 소년중앙

일각에선 여성 가상인간들이 여성의 상품화와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문제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의미심장한 건 가상인간들을 바라보는 미래 세대의 인식과 심리, 그로 인한 메타버스 시대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과 가상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서로 통하는 시대, 이곳에서 상거래 등 경제활동은 물론 사회활동과 그 이상의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세상을 예고하는 것이다.

가상인간은 왜 모두 여성일까. 이들을 멋진 여성으로 봐도 좋다. 동시에 조만간 다가올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 등장한 ‘여성처럼 보이는’ 안내자로 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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