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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례없는 길…인도를 자전거·킥보드 겸용인도 만든 한국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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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갑생 교통전문기자의 촉: 보행자ㆍ자전거겸용도로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 인도에 설치된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 표지판. [강갑생 기자]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 인도에 설치된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 표지판. [강갑생 기자]

 서울역과 남대문을 잇는 인도에는 평소에도 보행자의 통행이 잦습니다. 서울역이 가까이 있고 버스 정류장이 여럿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나 출퇴근 시간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립니다.

 이 지역의 도로 폭을 좁히고 인도를 늘리는 공사를 한 것까지는 좋은 데 언뜻 이해하기 힘든 표지판이 생겼습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보행자 표지와 자전거도로 표지가 나란히 있는 이른바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 입니다.

 아마도 자전거도로를 별도로 설치하기 어려워서 이런 방식을 적용한 듯싶은데요. 그러나 이런 겸용도로는 문제점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보행자가 많은 인도 위 어디든 자전거가 맘대로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해 충돌 사고 등의 위험이 큽니다.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는 전동킥보드도 주행이 가능하다. [중앙일보]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는 전동킥보드도 주행이 가능하다. [중앙일보]

 게다가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전동킥보드 같은 개인형이동수단(PM, Personal Mobility)도 자전거도로로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전동킥보드도 보행자·자전거 겸용 도로에서 합법적으로 주행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서울 성동구의 지하철 5호선 마장역 출입구 주변에서도 이 같은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지역은 지하철 출입구 주변인 데다 주위에 도매상점들까지 자리해 있는 곳입니다.

 해당 지자체가 보행자와 자전거, 그리고 전동킥보드까지 한데 뒤섞여 다니도록 만든 셈인데요. 이러한 방식을 두고는 전문가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입니다.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는 주로 공원길 등에서 보행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적용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서울 마포의 경의선숲길이 대표적으로 자전거는 길 가장자리로 통행하거나 내려서 끌고 가야 합니다.

서울지하철 5호선 마장역 부근에 설치된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 [강갑생 기자]

서울지하철 5호선 마장역 부근에 설치된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 [강갑생 기자]

 하지만 원래 인도였던 곳을 겸용도로로 만든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데요.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샌프란시스코, 뉴욕주)과 영국, 일본, 독일 등에서는 자전거의 인도 주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전동킥보드 주행도 안 됩니다.

 그리고 최근엔 보행자와 자전거, 전동킥보드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가급적 동선을 분리하는 게 추세입니다. 이렇게 보면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는 그야말로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행정의 산물이 아닌가 싶은데요.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의 차두원 소장은 "해당 사례와 같은 겸용도로는 처음 본다"면서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지자체, 기초 지자체가 제각각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같은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에는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자전거도로가 있다. [강갑생 기자]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에는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자전거도로가 있다. [강갑생 기자]

 한 가지만 더 짚어보자면 이미 설치된 자전거도로에도 문제가 여럿입니다. 우선 도로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인데요. 자전거도로가 갑자기 끊기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상 환기구가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자전거도로도 있습니다.

 또 통근시간대 인파가 몰리는 버스 정류장을 통과하도록 설치된 자전거도로는 충돌사고의 위험이 큽니다. 버스 이용객과 자전거가 뒤엉키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도로를 확충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오히려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모두 불편하게 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행정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관련 정책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기능과 효율성에서 문제가 있는 자전거도로 역시 정비가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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