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비대면 추석’의 단상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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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가족이 모이지 않는, 정확히 말해 모이지 말라는 ‘비대면 추석’은 이제껏 우리 상상의 범주 안엔 없었던 일이다. 한데 그런 비대면 명절이 벌써 세 번째다. ‘불효자는 옵니다’ ‘올해 말고 오래 보자’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지난해 명절에 나왔던 경구들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그걸 보며 당황스러웠던 기억 때문일 거다. 실은 지난해까진 이런 분위기에 마음이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모이지 말란다고 안 모여도 되나?’ 하는 생각.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많은 장면 중에서도 가장 기념비적인 사안을 꼽으라면 명절 풍속도 바꾼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올해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있다. 경험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듯, 비대면 추석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미 대다수가 비대면 명절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 추석 전 일주일간 돈의 흐름을 코로나 이전과  비교 분석해보니 출금은 크게 줄고, 이체는 확 늘어난 게 수치로 확인된단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움직이는 거다. 실제로 선물은 택배로 보내고, 명절 인사는 문자로 한다. 지자체가 앞장서 벌초 대행 서비스와 온라인 성묘로 ‘슬기로운 성묘 생활’을 하라고 권하니 벌초 서비스가 끝난 산소를 영상으로 둘러보며 성묘를 대신해도 별로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달 제수로 상을 차리고 랜선 차례를 지내는 것도 거부감이 없다.

가족이 모이지 않는 비대면 추석
코로나가 명절 풍속 변화 계기로
세시풍속은 시대 따라 변하는 것
더 사람 친화적 풍속으로 바뀌길

풍속이란 이처럼 계기가 있으면 순식간에 평화롭게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한탄과 걱정의 목소리 역시 높다. 이러다간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애가 옅어질 거라는 걱정이 주된 내용. 하지만 실제로 비대면 명절로 가족이 해체될 거라는 건 기우가 아닐까. 오히려 가족 문제와 관련해선 긍정적 시그널이 나타난다. 일단 평소 ‘이혼 성수기’로 꼽혔던 추석 직후의 이혼 건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줄어든 게 통계청 자료로 확인된다. 2018년엔 9월 이혼 건수가 7826건이었지만 10월엔 1만548건으로 늘었다. 2019년도 9월(9010건)보다 추석 다음 달인 10월(9859건)에 확 늘었다. 지난해엔 추세가 달라졌다. 10월 초가 추석이었던 지난해 9월(9536건)부터 10월(9347건), 11월(8876건)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선데이 칼럼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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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인다고 가족애가 절로 싹트지도 않는다. 명절 기간 중 가장 바쁜 정부기관은 경찰과 여성가족부다. 올해도 경찰청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 22일까지 명절 치안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명절 치안의 포인트는 가족 간 폭력 사태에 대비하는 것. 실제로 명절이면 가족 간 폭력과 시비가 잇따르고, 살인과 방화로 얼룩지는 사례까지 빈번히 일어났다. 여성가족부는 명절 기간 중 여성긴급전화, 가족상담전화, 청소년상담전화를 24시간 풀가동한다. 명절 가족 모임에선 애정의 교감뿐 아니라 갈등과 폭력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여기에 주부들의 ‘명절증후군’도 빼놓을 수 없다. 명절만 되면 주부들은 심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고통이 지나쳐 이혼과 가족 해체로 치닫는 악순환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명절이 즐거운 이유는 어쨌든 그 명절이 지나갔다는 것뿐”이라는 말에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건 실제로 명절이 그렇게 즐겁고 보람찬 날만은 아니었던 기억도 많아서일 거다. ‘조상을 기리고, 가족 간 우애를 쌓는다’는 아름다운 명분 뒤에서 여성들은 노동으로 내몰리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 갈등이 증폭되는 명절의 역기능도 분명한 실재다. 흔히 세시풍속을 얘기할 때면 역사와 전통을 들먹이지만, 실제로 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에 한 지인에게서 옛 추석의 ‘반보기 풍속’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실은 처음 듣는 얘기였는데, 과거 조선 시대 추석은 여성들의 축제와 같은 기간이었다는 거다. 농번기가 끝나고 추석을 전후한 날에 친정어머니와 딸, 동향에서 시집온 여성들, 사돈 여성들끼리 각자 집의 중간지점쯤 되는 경치 좋은 곳에 모여서 싸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소풍과 유희를 즐기는 풍속이 있었다는 거다. 여성들의 축제였던 추석은 오히려 현대로 넘어오면서 여성들의 노동 주간으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세시풍속은 항구적이지 않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변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명절 풍속을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비대면 명절이 지금 같은 비상시에만 반짝했다가 사라질 것 같지 않아서다. 애프터 코로나 명절은 계속 달라질 것 같다. 제사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더 강하게 요구될지도 모른다. 변화를 ‘좋다’ ‘나쁘다’로 평할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슴을 열고 흐르는 것은 흘러가도록, 변하는 것은 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새로 시작될 명절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온 가족이 모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명절. 느슨한 연대를 통해 가족들의 개인 생활을 존중하는 방식, 가족 간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드는 일…. 새로운 명절 풍속은 누군가의 헌신에 기대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즐겁고 행복한 가족은 해체되지 않을 것이므로. 즐거운 추석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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