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은 실명 등장에 김대업 떠올리는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2021.09.13 05:00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1일 대구시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1일 대구시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제보자 조성은 씨(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초반과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조씨는 지난 1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내가 대검과 다른 수사기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사람이 맞다”며 익명의 베일을 스스로 벗었다. 그런 뒤 제보 직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향후 의혹의 초점이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조씨는 ‘배후설’ 차단에 집중했다. “(지난 8월) 박 원장은 윤 전 총장과 친분이 있어 상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지난 11일)라거나 “‘뒤에 누가 있다’고 (문제제기)하고 싶을 것인데 (중략) 나는 선거마다 책임과 결정이 있는 역할을 한 경험을 갖고 있다”(지난 12일)는 식이다. 그러나 사건 초기 수세에 몰렸던 야권은 “여권이 관권을 동원한 선거공작, 정치공작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12일 김기현 원내대표)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의 한 3선 의원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업 씨의 폭로로 시작된 ‘병풍(兵風)’ 사건과 유사한 구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2002년에도 대선 6개월 전 언론에서 먼저 띄워

야권이 19년 전 사건을 떠올리는 건 의혹 제기의 시점과 ‘언론보도→제보자 공개 등장→수사 착수’로 이어지고 있는 사건의 흐름 때문이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 면탈 의혹(‘병풍’ 사건)도 16대 대선(2002년 12월)을 6개월 남짓 남겼을 때 튀어나왔다.

고발 사주 의혹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10일 JTBC뉴스에 출연해 관련 사실을 밝히고 있다. JTBC뉴스 캡처

고발 사주 의혹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10일 JTBC뉴스에 출연해 관련 사실을 밝히고 있다. JTBC뉴스 캡처

의혹의 제보자는 전직 의무 부사관 출신 김대업 씨였다. 그의 제보를 토대로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와 시사 주간지 일요시사는 2002년 5~6월 “97년 대선 직전 정연씨의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한나라당 관계자와 병무청의) 대책회의가 열린 뒤 병적 기록이 파기됐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김씨는 한달 뒤 직접 서울지검을 찾아 이 후보를 고소했고 기자회견을 열어 “이 후보 부인도 관련돼 있다”며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고발 사주 의혹도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에 의해 제기됐고 이후 조씨가 폭로를 주도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병풍은 대선 후 사실무근으로 결론났지만 영향이 컸다. 김씨도 대선 땐 ‘비리의 고발자’로 여겨졌다”며 “고발 사주 의혹도 남은 6개월 동안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정치공방만 하다가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자’ 김대업과 ‘내부자’ 조성은

그러나 김씨와 조씨의 제보를 동일 선상에서 접근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정보 접근성과 제보 동기 등에선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2001년 3월 사기 혐의로 체포돼 의혹 제기 직전인 2002년 3월까지 서울구치소에서 복역했다. 수감자 신분이었던 그는 서울지검에서 병무 비리수사에 협조하던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을 사칭해 김길부 전 병무청장(당시 뇌물수수로 긴급체포)에게 관련 자백을 유도했고 이를 바탕으로 언론에 제보했다. 한나라당 내부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나 능력이 없었던 탓에 의혹 제기 초반부터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 당시 여권에서 일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장남 정연씨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을 주장한 김대업 씨가 그해 8월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장남 정연씨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을 주장한 김대업 씨가 그해 8월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반면 조씨는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고발자료를 직접 습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여권에서 “제보의 신빙성을 김씨와 비교하긴 어렵다”(민주당 당직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짧은 시간이지만 범여권과 범야권을 두루 섭렵한 조씨의 이력은 야권이 펴는 ‘정치공작설’을 근거가 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박 원장과 조씨의 만남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씨에 거리두자” 신중론 커진 與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2.33%포인트 차이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패배했다. 병풍 사건이 적잖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5년 대법원도 김씨 관련 손해배상 판결에서 “(병역 비리) 보도로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음이 명백했다”고 적시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 행사에 참여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왼쪽)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중앙포토

2002년 대선 당시 한 행사에 참여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왼쪽)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중앙포토

민주당 지도부는 김씨의 주장이 훗날 거짓으로 밝혀졌다는 점을 신경 쓰고 있다.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조씨를 김대업처럼 ‘의인’으로 추켜세웠다가 사실관계가 다르게 밝혀지면 당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일단은 지켜보며 거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4년 2월 공무원 자격 사칭, 명예훼손, 무고 등의 혐의 등으로 1년10개월 징역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그가 증거로 제출한 녹음테이프는 검찰에 의해 조작으로 밝혀졌다. 그를 “강직한 의인”이라고 추켜세웠던 민주당 진영은 그의 대법원 유죄 판결 이후엔 논평을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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