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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공산당의 불통·비협조 교정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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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바이든·시진핑 충돌

지난 3월 미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 양제츠 중국 정치국 위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중앙포토]

지난 3월 미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 양제츠 중국 정치국 위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중앙포토]

미국은 지난달 말 아프간에서의 철군 완료로 2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일각에선 미군이 쫓기듯이 빠져나갔다며 비웃는다. 그러나 중국은 웃을 수 없다. 미국이 ‘아프간 망신’을 감내한 배경엔 앞으로 ‘중국 때리기’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만남도 아직은 요원하다. 오는 10월 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미·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시진핑이 화상 참여에 그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며 불투명한 상태다. 두 정상의 회동 시점이 미뤄지는 가운데 미·중은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에게 호흡을 길게 갖고 미·중 격돌의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 신호탄은 지난 1월 27일에 있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인권탄압을 ‘대학살(genocide)’이라고 정의하면서다. 이어 지난 7월 미 국무부 등 6개 부처는 신장의 강제노동 및 인권유린과 관련된 기업에 대해 투자와 교역 금지령을 내렸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 강경정책 중심엔 인권문제가 자리한다. 홍콩과 신장·티베트 등에서의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는 민주당인 바이든 정부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다. 바이든은 이를 기존의 양국 갈등 현안과 연계시켜 제재의 명분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충돌의 장기화 대비 나선 미·중
시진핑 집권기간 내내 갈등할 듯
미·중 격돌의 풍랑 헤쳐 나가려면
한국도 국익 중심 내부 단합 이뤄야

눈여겨볼 건 바이든 정부와 전임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정책엔 하나의 공통된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행위를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은 초지일관 ‘포용(engagement)’ 정책을 견지했다. 교역과 교류가 중국의 민주화를 이끌 것이란 확신에서였다. 미국이 83년 이래 대중 무역에서의 만성적인 적자를 감내해온 이유다. 그러나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꿈에서 깨어났다. 중국이 이제까지 미국의 개방된 사회와 시장을 역으로 이용만 했다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첨단과학기술을 훔쳐갔다는 비난과 함께다. 트럼프는 이를 2017년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으로 이용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행동 교정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2012년에 나온 ‘신형대국관계’ 구축 전략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대국이 서로 충돌과 대항을 하지 않고 협력하는 걸 전제로 한다. 전체적으로 안정 국면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호 존중하면서 윈-윈 할 수 있는 협력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주장한다.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NSS)로 본 미국의 대중인식과 중국의 대응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NSS)로 본 미국의 대중인식과 중국의 대응

시진핑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관제(管制, 관리 및 통제)’를 들었다. 2011년 6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다. 시진핑에 따르면 미·중 양국은 갈등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이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니 대신 관리 및 통제의 방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제’는 아무리 민감하고 입장 차이가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서로 윈-윈 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다. 시진핑은 이에 대한 당위성을 미·중 양국이 처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현실에서 찾았다.

우선 미·중 양국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아 전략적 대립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 서로를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전략적 오판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영토분쟁과 해양질서 문제로 미국이 동맹 강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확대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적 방안에 대해 시진핑은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9차 당 대회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권력 구도에 균형이 이뤄졌다’고 기술한 것이나 시진핑 스스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한 것 등이 그런 예다.

한편 미국의 대중 강경책은 2017년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 바탕을 둔다. 여기서 미국의 번영과 안보, 자유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중국이 암시됐다. 그리고 지난 3월의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과 국가정보국장실의 4월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에선 중국이 명기됐다. 이들 보고서의 공통된 결론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출간된 밥 우드워드의 『격노(Rage)』는 대중 강경정책의 목표가 설정된 경위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 태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중국의 불통과 무성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절실하게 경험한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교정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는 대중 제재의 명분으로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을 선택했다.

물론 이에 대해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있다. 중국 정부와 학계가 역할을 나눠 미국에 반격을 취하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王毅) 외교부장, 외교부 부부장인 러위청(樂玉成)과 셰펑(謝鋒)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미·중 갈등의 원인이 미국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잘못 설정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미·중 전략적 경쟁 관계를 협력·경쟁·갈등 등 세 분야로 나눠 접근하는 방식부터 비판한다. 갈등과 경쟁의 해결은 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건강한 협력관계의 발전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 인권은 내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협력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상호 존중의 원칙에 따라 각자도생의 결정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가치와 주장의 보편성은 부인한다.

반면 왕지스(王緝思)와 옌쉐퉁(閻學通) 등 중국 학계의 대미 공격 포인트는 정부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이들은 중국과의 국력 격차가 좁혀지며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미국이 두려워하고(fear) 질투하기에(envy)미·중 갈등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 이익의 논리에 따라 협력의 당위성을 부각한다. 특히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지난 여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더 강해지는’이란 기고문에서 첨단기술 부문에서 미·중 간의 수준 격차가 현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또 왕지스 베이징대 교수는 같은 학술지에 기고한 ‘중국에 대한 음모?’란 글에서 미·중 양국에 어떻게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가 생겼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중국 내정 관련 발언이 불순한 의도와 목적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중국 공산당이 1950~60년대 폴란드·헝가리·체코 사태의 배후 세력으로 미국을 단정한 사례를 역사적인 예로 들었다. 이런 미국의 불순한 행위를 그는 ‘보이지 않는 손(a hidden hand)’에 비유했다.

바이든 취임 이후 8개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미·중 충돌의 방향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두 나라 모두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선 이를 최소한 시진핑의 집권 기간으로 정의해도 무난하다. 아마도 이 기간 우리는 두 나라의 힘의 균형이 교차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경제 분야에선 미·중 간 1, 2위 자리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자연히 우리 외교도 분기점에 놓이게 된다. 우리가 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하는 압박을 받느냐, 아니면 우리가 이들에게 우리 국익에 유리한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우리가 먼저 내부적으로 우리 국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미·중 충돌이 일으키는 거센 풍랑을 헤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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