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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국가주의’ 모델 세계에 통할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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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국식 정치체제모델의 형성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성장을 추진하는 국가주의 체제의 성공을 통해 중국몽을 실현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성장을 추진하는 국가주의 체제의 성공을 통해 중국몽을 실현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부상을 ‘중국식’ 문명형성 및 세계질서의 재구성과 연결해 사고한다. 이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미국에 “서로 다른 제도와 문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함께 찾자”고 주장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2차대전 이후 보편가치로 간주해온 자유, 인권, 민주, 시장경제 등과 같은 서구적 가치 및 제도의 중심축과는 다른 ‘중국식’ 제도와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문명형성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의 서구 가치와 달라
국가 우선의 ‘국가지상론’ 강조
개인 창의성 제한의 근본 한계로
새로운 국제질서 이끌 매력 없어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이른바 ‘4개 자신’을 강조하고 공산당 영도를 핵심으로 한 ‘중국식’의 제도와 이론, 그리고 문화에 기초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갈 것을 분명히 하면서 2035년까지의 중기 목표와 신중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의 장기 목표를 제시한다. 이는 중국의 정치개혁 방향에 대한 패러다임적 인식의 전환을 뜻한다.

신중국 건설 100주년 장기 목표 세워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선 당 주도의 경제발전이 일정 수준 이뤄지고 시민사회가 성장하면 민주화의 길로 갈 것이란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로 서구식 민주화의 길이 아닌 중국식 정치체제 형성의 길로 가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따라서 현재 중국 학계의 논쟁도 현 정치체제의 ‘(민주적) 전환’이 아닌 현 체제를 어떻게 ‘보완’해 보다 완비된 중국식 정치체제를 형성할 것인가로 전환되고 있다. 서구와 견줄 중국식 문명의 기초가 될 중국식 통치제도와 정치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구상하는 중국식 정치체제모델의 특징은 무언가? 이에 대한 답은 시진핑 정부가 제시하는 중국식 통치(治理)제도와 정치체제모델에 대한 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진핑 시대 진입 후 중공은 중국식 발전경로와 제도건설을 강조하고, 공산당만이 이런 중국식 발전경로를 이끌어갈 핵심 세력임을 분명히 했다. 중공은 중국의 ‘일체(東西南北中, 勞農學兵)’를 영도하면서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이끌 주도적 권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진행한 일련의 통치방식 제도화는 ‘국가주의 체제’의 형성을 가져왔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4개의 자신감

중국 특색 사회주의 4개의 자신감

국가주의(statism)란 국가와 그 구성원 사이의 수직적, 유기체적, 권위주의적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국가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 집단, (시민)사회보다 우월하며 그 구성 요소를 초월하는 가치를 갖는다는 반개인주의적이고 국가지상론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런 국가주의는 20세기 초 중국 지식인들이 반(半)식민화와 국가분열이란 민족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독일로부터 도입해 논의한 적이 있다. 아편전쟁 이래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히면서 반식민지와 분열에 처한 상태에서 통일국가 건설과 민족부상에 대한 민족적 열정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는 기초가 된 것이다.

시진핑 시대에 등장한 국가주의 체제도 ‘천추의 위업’인 중화 민족의 부상이란 중국몽 실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시진핑의 통치목표인 중국몽 달성과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배치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자유와 민주, 인권 등의 보편가치는 주변화되고 국가의 통합과 안정(이른바 大一統)이 최고의 가치로 강조된다. 그리고 이를 해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막기 위해 사회 모든 영역에서 국가권력의 통제가 강화됐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시민사회에 대한 전방위 통제 시도

공산당 ‘중앙’과 당의 ‘핵심’인 시진핑 주석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다. 또 중앙집권적 통치에 기초해 사회 모든 영역으로 당 조직망 건설의 확대를 통해 통제가 강화된다. 사이버 영역에 대한 통제 강화, 엘리트와 대중에 대한 사상교육 등 시민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통제에 기초해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끌어낸다. 동시에 빈곤퇴치 운동, 반부패 운동 등을 통해 ‘인민 중심의 발전 사상’을 강조한다.

시대별 중국식 정치체제모델 비교

시대별 중국식 정치체제모델 비교

즉 대중의 지지에 기반을 둔 ‘민본적 권위주의 통치(賢能統治)’를 실행해 통치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보장하며 인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런 국가주의 체제는 권력이 ‘당 중앙’과 최고 지도자에게 고도로 집중된 당국가체제의 사회에 대한 전면적 통제라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수용해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강제적 통제만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에 기초하고자 한다는 점, 그리고 전통사상과 사회주의 이념, 그리고 민족주의적 목표를 결합한 통치이념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전체주의와는 구분된다. 또 민주화라는 장기적 방향성을 전제로, 시장경제체제에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결합해 안정 속 성장을 꾀하고자 한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신권위주의 체제와도 다르다.

국가주의 체제의 지속과 발전은 공산당의 공고한 통치 지위와 함께 시진핑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국가주의 체제의 등장이 시진핑의 통치 목표인 중국몽 달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기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지도자가 시진핑의 통치 목표와 방식을 계승할 경우에도 이 체제가 지속할 수 있겠지만, 최고 지도자의 교체는 불가피하게 정치발전 노선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국가주의 체제의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산당이 대미 패권전쟁의 핵심 세력

현시점에서 볼 때 시진핑 정권이 장기 집권으로 갈 가능성은 크다. 중단기적으로 국가주의 체제가 불안정한 형태를 띠겠지만, 결정적으로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중공 내 이른바 “백 년 미증유의 (국가 간 세력 구도의) 대변화 국면” 속에서 중국의 부상을 이끌며 미·중 간 패권 경쟁을 승리로 이끌 핵심적 역량이 공산당이라는 데는 일종의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또 시민사회의 역량이 미약한 데 반해 시진핑의 당·정·군에 대한 지지기반은 공고하고 시진핑을 대체할 수 있는 엘리트 내부 세력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을 강국으로 부상시키고 인민의 삶의 질을 역사상 전례 없이 제고시켰다는 공산당의 업적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지도 높아 경제적 상황이 급작스럽게 쇠퇴 국면으로 접어들지 않는 한 결정적인 위기 국면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공은 서구와 다른 ‘중국적’ 특징을 지닌 매력적인 제도와 가치에 기초한 정치체제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련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주의 체제가 정치사회적인 불안 요인을 통제하고 중국몽 실현을 위한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보장하는 정치체제모델로 자리함과 동시에 국제사회로부터 수용 가능한 ‘매력적’인 ‘중국식 정치체제모델’로 발전하는 건 결코 녹록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국력 증강을 통해 중국몽 실현을 위한 대일통을 보장하는 통치형식이라는 국가주의 체제의 순기능적 역할 부각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국가주의 체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정치체제(이른바 중국적 특징을 지닌 민주주의 체제 등)로의 전환에 대한 압박을 상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주의 체제가 사회와 개인의 창의성과 다양성, 자발성의 성장을 제한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공 100주년의 시점에서 시진핑 정권이 강조하는 중국식 정치체제모델은 중국몽 실현이라는 중화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정 역사적 단계에서의 ‘과도적’ 정치체제 모델은 될 수 있으나,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 보편적이고 매력적인 정치체제 모델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주의(Statism)
국가주의’란 국가가 개인, 집단,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반개인주의적이고 국가지상론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사고를 지칭한다.

중국의 국가주의는 중국의 독립, 통일, 사회 진보라는 가치가 개인의 자유, 민주, 계몽주의적 가치를 압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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