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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영업 시간제한 근거조차 제시 못하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8월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은경질병관리청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김강립 식품안전처장이 대화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방역 지침이 비과학적이라고 성토한다. 김경록 기자

8월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은경질병관리청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김강립 식품안전처장이 대화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방역 지침이 비과학적이라고 성토한다. 김경록 기자

확진자와 접촉 시간대별 통계도 없으면서

9·10시, 2·4명 고무줄 지침으로 고통 키워

정부가 수도권 기준으로 기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난 6일부터 4주간 연장하자 700만 자영업자가 또다시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식당·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에서 10시로 연장했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밝히라고 촉구하며 또다시 거리 시위에 나설 태세다.

자영업자들은 정부가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영업제한 조치를 조였다 풀었다 할 거라고 짐작했을 텐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국무조정실에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 시간대별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제한할 경우 시간대별로 언제 감염이 많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통계자료도 없이 방역 지침을 정했다니 충격적이다.

국민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정부가 강제하니 출입 명부 작성과 QR카드 체크에 성실히 응했고, 얼굴 영상 촬영에도 순순히 따랐다. 그때마다 이런 정보를 모아 과학적인 통계를 축적하고 분석해 정교하게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정부엔 그런 데이터가 없다고 실토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제한하다가 갑자기 선심 쓰듯 오후 10시로 늦췄는지, 오후 6시 이후에 2명까지는 모임이 가능하고 3명부터는 불가능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업시간이 1시간 단축될 때마다 호프집 같은 자영업자들은 생업에 직격탄을 맞는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특정 시간 이후에 코로나바이러스 양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영업시간을 제한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비과학적인 방역 지침을 고수하니 가장 높은 4단계(수도권) 거리두기를 지난 7월 12일부터 지금껏 유지했지만, 확진자가 네 자릿수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이나 모임 숫자 제한의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지금의 코로나 방역 지침은 자영업자를 희생양 삼는 규제 만능주의이자 국민에게 확산 책임을 떠넘기는 행정편의주의나 다름없다. 오죽했으면 분노한 자영업자들이 8일 차량 시위와 온라인 촛불집회를 추진할까.

어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코로나 유행을 통제하고 방역 지침을 완화하는 ‘위드 코로나’ 전환 시점을 10월 말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추석만 잘 넘기면 10월부터 일상에 가까운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는 말이 또다시 희망 고문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방역 조치의 과학적 근거부터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