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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무풍지대 전세자금 대출까지 죄나…정부 “제한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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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 당국이 대출 규제의 무풍지대였던 전세자금 대출에 규제 강화를 검토 중이다. 급증하는 가계 부채 증가세를 막기 위해서다. NH농협은행 등 일부 은행이 전세대출을 중단한 데 이어 대출 규제마저 강화될 경우 실수요자의 어려움도 커질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주택 구입용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그동안 전세대출만은 예외로 했다. 전세대출은 실수요자가 받는 대출인 데다 주거 안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규제의 파급력이 만만치 않아서다. 2018년 9·13 대책 이후 다주택자 등에 대한 전세대출만 규제를 강화했을 뿐 무주택자의 전세대출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가계대출 증가액 절반 차지한 전세대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계대출 증가액 절반 차지한 전세대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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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 규제 강화까지 검토하는 건 전세대출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이끌고 있어서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28조6610억원)의 절반 이상을 전세대출(14조7543억원)이 차지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7일 “전세대출 증가세가 지나치게 빨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대출 관리 방안은 추석 이후 나올 가계부채 추가 대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도 이날 한국금융연구원의 토론회에서 “올해는 실수요 성격의 정책 모기지와 집단대출 등이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하고 있다”며 “주택 구입용 주담대와 신용대출이 증가세를 주도한 지난해와 사뭇 다른 측면이라 이 부분에 대한 관리도 일정 부분 섬세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전세대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중은행 전세대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하는 방안에 대해 “금융위원장과 상의해 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답하며 전세대출에 대한 규제가 현실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세대출 급증에 대한 금융권과 금융 당국의 시각은 엇갈린다. 금융권에서는 전세대출 증가를 전셋값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년 전보다 17.8% 올라 평균 전셋값은 5억1011만원에서 6억4345만원이 됐다.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기 위해 대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 당국과 정부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전셋값 상승 외에 다른 요인도 전세대출 증가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전셋값을 치를 여유자금이 있어도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내고, 남은 자금을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 투자 용도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세대출을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없게 하면서 규제를 강화할 묘수를 찾기가 어렵다. 이동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도 이날 금융연구원 토론회에서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세대출, 정책 모기지, 집단대출 모두 실수요와 관련된 대출이라 정책적으로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전세대출 때 자금조달계획서를 받아 대출 심사를 강화하거나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자금조달계획서에 대해 금융위는 “검토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한 생활안정자금 대출에 대한 규제 등도 거론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유주택자라고 하더라도 교육 등의 목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전세를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이런 이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의 전세대출 규제 검토와 별개로 신규 전세 계약을 하거나 전세 보증금을 올려줘야 하는 세입자는 ‘금융 당국발 대출 절벽’에 직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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