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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 왜 무기 남겼나 “부유한 美 셈법 우리와 달라”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05:00

업데이트 2021.09.0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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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이선주님의 질의를 받아 담당 기자가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미국산 군용차를 타고 퍼레이드 중인 탈레반 전사들. [트위터 캡처]

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미국산 군용차를 타고 퍼레이드 중인 탈레반 전사들. [트위터 캡처]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뒤, 탈레반은 연일 미국산 군용 장비로 세 과시 중이다. 지난 1일 아프간 제2 도시 칸다하르에선 미 군용차량 험비를 타고 승전 퍼레이드를 벌였다. 하늘에는 블랙호크가 날았다. 탈레반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자 매체 탈리브 타임스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는 탈레반군이 노획한 군 수송기, 장갑차, 전투기 등이 게시되기도 했다.

'20년 아프간 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미국이 아프간 정부에 지원했던 숱한 미국산 무기가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다. 엄청난 군수물자들이 왜 아프간에 남았을까. 독자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중동·군사 전문가 6명의 견해를 들었다.

1일(현지시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외곽 고속도로에서 탈레반의 퍼레이드 행렬 위로 헬기가 날아가고 있다. [트위터 캡처]

1일(현지시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외곽 고속도로에서 탈레반의 퍼레이드 행렬 위로 헬기가 날아가고 있다. [트위터 캡처]

①“아프간군에 넘긴 무기, 미군이 처분 못 해”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군 물자는) 미국이 남겼다기보다 대부분 아프간 정규군이 쓰던 것인데,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전에 미군이 미리 부수거나 처분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아프간 내 미군 조력자 대피 작전을 처음 발표한 건 지난 7월 14일. 당시만 해도 조 바이든 행정부는 탈레반이 한 달 만에 아프간을 점령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8월 15일 카불이 함락되자 미국의 대피 작전도 다급해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아프간군에 넘겼던 군용 물자까지 절차대로 처분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20년 전쟁을 끝내고 나오는데, 모든 물자를 처리하고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미군이 남긴 무기를 탈레반이 운용하려면 부품 조달 문제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도 미국 군복을 입고 험비를 몰고 다녔다"며 "한 나라의 군대가 들어와서 20년 있다가 나가는데 모든 무기를 다 가지고 나갈 수 없었을 것이고, 우선순위에 따라 철군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무기는 처리하고 나머지는 굳이 처리할 여건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레반 전사들이 1일(현지시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외곽 고속도로에서 승전을 자축하는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탈레반 전사들이 1일(현지시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외곽 고속도로에서 승전을 자축하는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②“최첨단 무기 안 남겼다…결국 무용지물”

양욱 한남대 군사전략대학원 교수는 “탈레반이 당장은 헬기를 조종하더라도 유지 보수 능력이 없기 때문에 향후 운영은 어렵다”고 하면서 미국이 아프간군에 넘긴 장비와 미군이 남기고 온 장비를 나눠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프간에 넘긴 무기 가운데 중요한 기밀이 들어간 통신 장비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양 교수는 “미군은 바그람 공군기지도 버리다시피 하고 나왔는데, 여기서 처분하지 못한 장비 역시 도태시키는 모델들”이라면서 “아프간군이 조종한 블랙호크의 경우도, 이미 중국이 카피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에 팔아도 미국에 큰 타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남겨둔 무기들은) 미국 입장에서 본토에 해가 되지 않는 무기들인데, 이걸 남아서 처리하는 비용보다 남겨두는 게 비용이 덜 드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1일(현지시간) 탈레반이 미국산 블랙호크 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탈레반이 미국산 블랙호크 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도 2001년경 미국이 제공한 무기는 이미 쓸 수 없게 됐고, 이후 아프간군에 제공된 무기는 최첨단 시설이 탑재돼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부 고급 무기는 카불 함락 직후 주변국으로 빠져나왔다고 한다. 남은 블랙호크 등 헬기는 탈레반이 유지, 보수하는 데 필요한 정비 인력을 갖추지 못해 향후에도 사실상 무용지물일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③“탈레반에 IS-K 궤멸 맡긴 셈” 

탈레반이 미국산 물자를 활용할 경우에 대한 계산도 어느 정도 깔렸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던 탈레반 전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던 탈레반 전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정은 2년 넘게 이뤄진 것"이라며 "그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면, 탈레반이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슬람국가의 아프간 분파) 등 아프간 내 테러세력을 궤멸하는 것이었을 테고, 이를 위해 남은 자원을 쓰기 바랄 것"이라고 예측했다.

IS-K와 탈레반은 태생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미국과 탈레반의 이해는 같다. IS-K는 탈레반의 기조보다 더 극단적 원리주의 사상을 가진 내부 불만 분자들이 탈레반에서 떨어져 나와 만든 조직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과 탈레반은 IS에게서 공통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탈레반은 최근 몇 년간은 미국보다 IS-K와의 전쟁이 더 큰 과제였다"며 "공동의 적이었던 미국이 아프간에서 나가면 남은 건 탈레반과 IS의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아프간 칸다하르에서 승전 자축 퍼레이드를 벌이는 탈레반.[AFP=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아프간 칸다하르에서 승전 자축 퍼레이드를 벌이는 탈레반.[AFP=연합뉴스]

실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1일 기자회견에서 IS-K에 맞서기 위해 탈레반과 협력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도 "아프간 내 테러조직 응징을 위해서 탈레반과도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무기를 처분하지 않은 데 의도가 깔렸을 수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소련이 아프간과 10년 전쟁을 했을 때 미국이 파키스탄을 통해 무자헤딘에 스팅어 미사일을 지원하지 않았나"라며 "이런 전력을 고려하면 남은 무기가 IS나 중국 견제에 이용되기를 다분히 의도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석했다. 양 교수도 "미국이 남긴 무기들을 탈레반이 이용해 IS를 제어하거나 중국을 견제하는 것 등을 '이면적으로' 바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④“부자나라 美, 계산법 우리와 달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팩트체크' 보도를 통해 탈레반이 습득한 무기 관련 숫자가 과장됐다고 꼬집었다. 특히 850억달러(약 99조원) 어치의 미국산 무기를 습득했다는 것은 '가짜 뉴스'라는 것이다. 850억달러라는 숫자는 미국이 그동안 아프간 군대와 경찰을 훈련하고, 장비를 제공하며 수용하는데 지출된 모든 돈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WP는 미국이 아프간에 제공한 장비는 240억달러(약 28조원)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LA타임스는 카불발 기사에서 탈레반 전사들이 전리품으로 얻은 험비와 군용 트럭은 약 2000대이고, 장갑차와 전투 차량은 50대 이상, 포병 및 박격포 수십 대, 12대 이상의 노후화된 헬리콥터와 공격용 항공기, 12대의 탱크, 보잉에서 제조한 드론 7기와 수백만발의 총알을 획득했다고 전했다.

240억 달러나 군용 차량 2000대 등도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미국은 탈레반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아프간에 남겨둔 이런 무기들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관측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전 한국국방연구원)는 "미국이 워낙 부강한 국가이기도 하고, 그들의 사고와 계산법은 우리와 굉장히 다르다"며 "탈레반은 기본적으로 무장단체라 미군 무기를 일부 활용하겠지만, 이것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하는 한 (미국 입장에선)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프간은 잊힐 것으로 전망했다. 박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 이전부터 미국은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과 아닌 지역으로 나눴는데, 아프간은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에서 빠졌다"면서 "탈레반이 IS를 제압해줄 가능성도 (미국이) 생각했을 수 있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프간은 국내외에서 잊히길 바란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도 "탈레반이야말로 이제 고민이 시작됐다. (해외 원조가 필요한) 탈레반이 오히려 우리나라를 향해서도, 미국을 향해서도 외교관 안 나가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고 말했다. 탈레반이 지금은 노획한 무기를 과시하며 기세등등하지만 결국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원조가 더 긴요해질 거란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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