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뉴스룸

돌연 부도난 회사…프리랜서 임금 6억 사라졌어요, 어쩌죠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입력 2021.09.16 05:00

똑똑, 뉴스룸’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이 기사는 독자 이경석(가명)님의 문의로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지난달 31일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이경석씨는 동료 작가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하얘졌다. “오늘 회사 대표가 직원들을 불러놓고 ‘부도가 났으니 뒤처리에 신경 써달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일한 회사는 주로 공공기관 등의 정책 홍보 자료를 제작해온 광고·출판 대행업체였다. 이씨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프리랜서로 지난 1월부터 이 회사와 일해왔다. 그런데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밀려있던 6개월 치 임금 2250만 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씨와 같은 처지의 프리랜서 작가·감독 등 70여 명은 대책 논의를 위해 메신저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회사로부터 받지 못한 임금이 총 6억 3000만원에 이른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회사에 대한 믿음은 물론, 개인의 재정 상태도 한순간에 무너진 상황에서 프리랜서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월급 봉투. [사진 flickr]

월급 봉투. [사진 flickr]

노동청도 공공기관도 속수무책

프리랜서들이 먼저 향한 곳은 노동청이었다. 부도난 회사에 돈을 받는 건 어렵다 해도 최소한의 피해 구제책이라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노동청 직원은 이들이 프리랜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법적인 근로자가 아니라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프리랜서 계약근로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좌절한 프리랜서들은 회사가 수주했던 사업의 원청인 공공기관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앞서 회사는 부도나기 전 서울시·경기도 등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홍보 대행 사업을 여러 건 따낸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답변 역시 “사정은 안타깝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경기도는) 업체와 계약을 한 것이지 직원들과 한 게 아니다. 대행업체 선정 당시 재정·회사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업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파산 관련 이미지. [사진 셔터스톡]

파산 관련 이미지. [사진 셔터스톡]

핵심 쟁점은 ‘근로자성’

임금체불의 피해자인 프리랜서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실은 이들이 현행법상 근로자로 취급받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사용자에게서 임금을 받고 지시에 따라 일했는지가 입증돼야 한다는 의미다. 프리랜서는 임금을 대가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지만, 업무 시간과 장소, 내용 등이 자율적인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따졌을 때 프리랜서를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최근 법원 판례 등을 종합하면 사법 당국은 근로자성을 유연하게 인정하는 추세다. 근로자가 기본급이나 고정급을 받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라 해도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면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개별 상황에 따라 근로자성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효신 노무사(소나무 노동법률사무소)는 “집단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노동청 등이 프리랜서를 방치할 게 아니라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더 세밀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로자 인정되면 사업주 처벌, 국가 배상

임금체불 관련 노동청 상담을 받고 있는 시민들. 프리랜서 공정식

임금체불 관련 노동청 상담을 받고 있는 시민들. 프리랜서 공정식

프리랜서가 근로기준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면 뭐가 달라질까. 우선 밀린 임금을 주지 않는 회사의 대표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행법상 근로자는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경우 노동청과 수사기관 등에 사용자를 진정 혹은 고소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을 체불한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회사의 부도로 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일 때는 일부분이나마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다.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체당금 제도가 그것이다. 근로자가 회사의 도산 등 사유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퇴직할 경우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최종 3개월 치 임금과 3년간의 퇴직금 등을 먼저 지급해주는 식이다. 국가는 나중에 사업주에게 이 금액을 청구한다.

전문가 “제도 사각지대 좁혀야”

프리랜서의 어려움은 장기화하는 ‘코로나 불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특수고용직·프리랜서들의 월 소득은 코로나19 전보다 69.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랜서는 전체 근로자 중 12%(2019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가 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 12개 직종 종사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등 제도의 사각지대를 좁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로자 보호에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김효신 노무사는 “프리랜서들이 법 제도 밖에 있다 보니 갑작스러운 실업에 대처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일반적인 근로자와 유사한 조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부가 이들을 위한 보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택배사 물류센터에서 분류 및 상차 작업을 하는 택배노동자들. 뉴시스

택배사 물류센터에서 분류 및 상차 작업을 하는 택배노동자들. 뉴시스

궁금한 내용, 관심 있는 이슈를 스마트폰 중앙일보 앱과 PC 중앙일보 홈페이지 독자 제보 코너로 취재 요청해주세요. ‘똑똑 뉴스룸’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