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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전처럼 반전”…‘2700조 아프간 피박’ 미국의 믿는 구석

중앙일보

입력

3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 군사 주둔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지난 20년간 지속해온 아프간전의 공식 종결을 알렸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 후 17일의 짧은 기간 12만명 이상이 긴급 대피하는 혼란, 이로 인해 “동맹국들의 뺨을 때린 셈”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 바이든 대통령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미국 시민 2명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버니지아주 알링턴에 있는 국립묘지에서 묘비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하고 있다. 이곳에는 베트남 전쟁 전사자 등 22만명 이상이 잠들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시민 2명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버니지아주 알링턴에 있는 국립묘지에서 묘비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하고 있다. 이곳에는 베트남 전쟁 전사자 등 22만명 이상이 잠들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위상을 향상시킬 아프간 탈출”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이 오히려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을 굳건히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中에 맞서는 동맹 전선 더 강해질 수 있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의 우리 군대 주둔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UPI=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의 우리 군대 주둔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UPI=연합뉴스]

WP는 “지난 1975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했을 당시에도 미국이 국제사회의 신용을 회복할 수 없이 잃었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철수 결정은 오히려 소련 등 당시의 경쟁국들과 대치 속 동맹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며 “(이를 통해)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 등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WP는 “단기적으론 탈레반의 빠른 진격으로 발생한 혼란이 바이든 행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주고 있지만, 카불의 붕괴도 (사이공 함락과) 비슷한 궤적을 따를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효율적 자원 재배치가 오히려 기존 동맹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WP는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 외에도 이라크‧리비아‧시리아 등에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조용히 기뻐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에서의 전쟁 및 재건 비용으로 2조2610억달러(약 2700조원)를 투입했다.

독박 외교는 안 된다는 메시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통제소에서 26일(현지시간) 철조망을 치고 경비 중인 미군이 공항 입구 폐쇄를 알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통제소에서 26일(현지시간) 철조망을 치고 경비 중인 미군이 공항 입구 폐쇄를 알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더 순조로운 철수를 바랐지만, 그런 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아프간에서의 철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더 큰 목표에 다가가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떠난 빈자리가 단순한 권력의 공백으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게 월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젠 미국에 모든 짐을 지우는 것이 이기적인 요구로 보여야 한다”며 “아프간이라는 문제의 무게를 다른 나라들이 같이 들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철군 강행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긴장 속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고, 이들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놓고 다투는 인도도 탈레반을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다. 인도 정부는 그간 앙숙인 파키스탄과 밀접하다는 이유로 탈레반을 멀리하며 아프간 정부와만 대화를 해왔다. 그러나 지난 6월 인도 정부 관리들은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비밀회동을 가진 상황이다.

러시아도 자미르 카불로프 러시아 아프간 특사가 “서양 국가들이 아프간 국민을 진짜 걱정한다면 아프간 자금 동결을 빨리 해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탈레반에 손을 내밀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지난달 28일 탈레반 서열 2위이자, 정치 분야에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톈진에서 회담을 갖고 상호 내정간섭을 하지 않으며, 경제협력을 하기로 합의했다.

'중산층을 위한 나라'가 핵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친환경 차 관련 행사에 참석해 지프 랭글러 4xe 루비콘을 몰아본 후 운전석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부터 미국 내 판매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 차로 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친환경 차 관련 행사에 참석해 지프 랭글러 4xe 루비콘을 몰아본 후 운전석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부터 미국 내 판매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 차로 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월트 교수는 또 “(아프간에 돈을 투입하는 것 보다) 미국이 자국 내의 경제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큰 핵심 이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국내 투자를 통해 기술 우위를 회복해 중국과의 차세대 신기술 전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을 선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대외 전략을 위한 자본 투입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 3월 바이든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 잠정 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y Guidance)을 통해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긴밀한 관련될 경우로 집중한다는 ‘중산층의 이익을 위한 외교’를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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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철군 결정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미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유권자 1만5623명을 대상으로 지난 27~29일 시행해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 평가 48%, 부정정 평가가 49%로 취임 후 처음으로 ‘데드 크로스’(부정 여론이 긍정 여론을 앞서는 현상)를 기록했다. 한때 60% 가까이 올랐던 그의 지지율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2주간 하락세를 거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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