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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만들고 자영업자·중기 지원에 초점, 시장 살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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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호 14면

‘복지천국’ 스웨덴, 재난지원금 안 주는 이유

#1. 북유럽 항공사인 스칸디나비아에어라인(SAS)에서 근무하던 승무원 사나 앤더슨(34)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휴직에 들어갔다. 항공사 휴업으로 사실상 실업 상태였던 앤더슨은 3개월 동안 정부로부터 실업 급여와 동시에 재취업 교육을 받았다. 앤더슨은 지난해 말부터 거주지 인근에 위치한 한 의료기관에서 일한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간호 인력이 부족해진 병원에서 환자를 안내하고, 간단한 수납 업무를 담당한다. 앤더슨은 “승무원 동료들 대부분이 휴직과 동시에 재취업 교육을 통해 병원이나 관공서 등에 직장을 얻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다시 항공사로 돌아가 일할 계획이지만 현재 급여 수준과 생활에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2. 스웨덴 스톡홀름의 번화가 가운데 하나인 쇠데르말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에릭 요한슨(39)은 스웨덴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정점을 찍은 지난해 10월경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약국이나 슈퍼마켓 같은 필수업종 외에 봉쇄령을 내린 것과는 달리 스웨덴은 식당·미용실 등 모든 시설을 그대로 유지했다. 평년에 비해 손님이 절반 수준으로 줄긴 했지만 정부의 임대료 지원 덕분에 전체 수입은 크게 줄지 않았다. 요한슨은 “사태가 심각하던 올 초엔 영업시간 제한 등의 조치가 있었지만 봉쇄령이 내려진 인근 국가에 비하면 양호한 상황”이라며 “여름철 성수기 관광객이 많이 줄긴 했어도 외출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 매출도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1인당 25만원씩 받는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재난지원금) 지급 절차가 6일부터 시작된다. 국민지원금은 기본적으로 가구소득 하위 80% 이하인 가구의 구성원이 대상이나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에는 우대기준을 적용, 전 국민의 약 88%가 지급받게 된다. 사실상 전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나눠주는 현금 지원책인 셈이다. ‘복지천국’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방역 정책으로 집단면역을 내세운 몇 안 되는 나라다. 자율적인 방역에 의존하며 확진자 수가 하루 1만 명에 달하고, 요양시설에선 사망자가 속출했다. 현지에선 물론 해외 언론들도 팬데믹 위기에 무너진 복지 선진국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던 지난 7월 스웨덴 스톡홀름 시민들이 야외 레스토랑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던 지난 7월 스웨덴 스톡홀름 시민들이 야외 레스토랑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스웨덴에서 출간된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스웨덴 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20대 청년 실업자 역시 크게 늘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은 우리나라의 사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재난지원금 성격의 현금 지원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더라도 시장이 큰 충격 없이 작동될 수 있도록 재정지원 확대에 주력한다”며 “현금 지원과 같은 단기적인 구제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게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책”이라고 말했다.

무급휴직자나 실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국영직업소개소와 직업학교, 대학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타격이 큰 항공사와 여행사를 비롯해 외식·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재취업 교육을 지원해 원 직장에 복귀하기 전까지 다른 분야에 일시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동시에 지자체와 광역병원 등 방역 최전선에 대한 지원도 늘렸다. 지자체 재정을 확대해 공공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의사·간호사·복지사 등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업무가 몰린 이들이 자칫 과로로 인해 서비스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인력을 늘린 것이다. 단기적인 현금성 지원보다는 중장기적인 간접 지원 형태 위주인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정부의 방역 통제는 느슨했지만 경제위기 대응은 빨랐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여야는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될 때까지 ‘정치휴전’을 선언했고, 경제살리기에 합심이다. 스웨덴 노조는 매년 강도 높은 단체임금교섭으로 수개월간 협상을 벌이기 일쑤다. 올해 역시 전체 670개의 단체임금교섭 중 495개가 재협상에 들어가기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잠정적 보류 상태다. 전국 노총(LO)과 경영자총연맹(SN)은 11월 1일까지 현 임금체계를 연장하고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면 협상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

한때 ‘방역 실패’의 오명을 쓰긴 했지만 스웨덴 경제는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이다. 스웨덴 재정정책연구소가 지난 5월 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해 봄 이후 스웨덴 국민총생산(GNP)이 2.8% 감소했다. 전체 유로존 국가가 평균 6.8%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타격이 미미했다. 공공 저축 부분은 지난해 3.1%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4.5% 감소했다. 연구소는 “1990년대 이래 가장 높은 공공저축 감소율”이라며 “정부의 재정 상황이 매우 빈곤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연구소는 “그럼에도 9월까지 18세 이상 성인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경제회복과 재정 상황이 빠르게 호전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의 코로나19 재정 지원 정책은 정부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예술문화인 등에 한해 이뤄진다”며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선거철을 앞두고 활용하는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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