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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길러 왜 우리동네 와?" 경상도·전라도 곳곳 취수원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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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속사정 가득…곳곳 취수원 자리 갈등

전남 화순군 동복댐 인근에 광주광역시 상수도본부가 댐을 관리한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화순군 동복댐 인근에 광주광역시 상수도본부가 댐을 관리한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먹는 물(수돗물)을 길어오는 강·하천의 ‘취수원’ 자리를 놓고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취수원을 옮기거나 새로 만드는 문제로 찬반이 엇갈리거나 기존 취수원의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져서다.

취수원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대구시와 경북 구미시다. 두 지역은 낙동강 취수원 자리를 두고 10년 넘게 기싸움을 하고 있다. 대구시는 낙동강 상류 ‘구미 해평취수장’에 대구 취수원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구미시는 “취수원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펴면서다.

최근 구미시장이 “TK(대구·경북) 상생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대구 취수원 공동 활용에 대해 ‘조건부 동의’ 의사를 밝혀 해결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구 취수원 공동 활용을 거부하는 구미시민들이 상당수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건부 동의…갈등 불씨는 여전 

구미시장의 조건부 동의 의견은 지난 6월 환경부의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 의결 결정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말 환경부는 두 지자체 간 갈등이 이어지자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을 만들어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 산하 낙동강유역물관리위에 심의를 요청했었다. 당시 의결을 통해 구미 해평취수장(30만t)과 추가 고도정수처리(28만8000t)를 통해 대구에 57만t, 경북에 1만8000t의 물을 배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지난 7월 14일 경북 구미코에서 열린 통합물관리방안 설명회장에 취수원 이전을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14일 경북 구미코에서 열린 통합물관리방안 설명회장에 취수원 이전을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구미시 관계자는 “조건부 동의 형태로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잡았지만, 아직 대구 취수원 공동 활용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다. 국무총리실·환경부 등이 나서 반대 의견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실제 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와 구미시의 취수원 갈등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암 의심물질인 ‘1, 4-다이옥산’이 구미국가산업단지(이하 구미산단)에서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낙동강은 대구시민이 사용하는 수돗물의 67%인 53만t을 취수하는 곳이다.

대구 취수원은 구미산단으로부터 34㎞ 하류에 있다. 구미산단이 대구 취수원 상류에 있고, 폐수 유출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불안해진 대구시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구미 해평취수장을 새 취수원 이전 후보지로 꼽았다.

그러자 구미시가 반발했다. “대구에서 물을 빼가면 해평취수장의 수량이 줄고 수질도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취수원 보호구역 문제에 따른 재산권 침해도 거론됐다.

광주시 취수원인 동복댐, 관리권 두고 대립 

광주·전남에서도 지난해 취수원 관리권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갈등의 주제는 지난해 8월 집중호우 때 범람한 ‘동복댐’이다. 전남 화순군에 위치해 있지만, 동복댐은 광주시 56만 세대(저수 용량 9200만t)가 이용하는 취수원이다. 그래서 관리권은 광주시에 있다. 그런데 지난해 집중호우로 동복댐이 범람하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보자 취수원 관리권을 놓고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동복댐의 물을 끌어올려 광주광역시까지 보내는 취수탑. 멀리 뒤편으로 노루목적벽의 정상부인 옹성산이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동복댐의 물을 끌어올려 광주광역시까지 보내는 취수탑. 멀리 뒤편으로 노루목적벽의 정상부인 옹성산이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당시 화순군의회는 “광주시가 물을 미리 방류하지 않다가 댐이 범람하려 하자 물을 급히 내보내면서 화순지역에 피해를 줬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광주시의 취수원이 있는 동복댐의 관리권을 화순군으로 넘기라는 건의서를 보냈다. 화순군 동복면·사평면 등 동복댐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502명도 광주시에 동복댐 방류와 관련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광주시와 전남 화순군은 현재 수차례 실무회담을 벌이며 해결책을 찾고 있다.

취수원을 낙동강 본류에서 지류로 '갈등'

부산·경남도 취수원 자리를 두고 시끄럽다. 부산시의 취수원은 낙동강 본류에 있다. 이를 경남 합천·창녕 등 지역에 있는 낙동강 지류로 옮기려고 하자 다툼이 벌어졌다.

낙동강 상류(대구·경북) 취수원 이전 문제와 함께 하류(부산·경남) 취수원 문제도 함께 다루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이다. 당시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 산하 낙동강유역물관리위는 경남 합천 황강 복류수(45만t)와 창녕 강변여과수(45만t) 개발을 통해 하루 90만t의 물을 취수, 부산에 42만t, 창원·김해 등 경남 중·동부 지역에 48만t을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나머지 53만t은 부산시에서 자체적으로 확보한다.

먹는 물을 낙동강 본류가 아닌 지류에서 구하려는 것은 수질 오염에 대한 부산 지역민들의 불안감 탓이다. 부산 물금취수장 상류에 2002년 당시 공장이 102개였던 것이 지난해 232개로 늘었다. 특정수질유해물질 배출량도 하루 3만8000t에서 35만5000t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부산·경남 지역에 하루 필요한 식수량은 143만t이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2019년 기준으로 낙동강 본류에 위치한 부산 매리취수장과 물금취수장에서 각각 59만3000t, 37만7000t을, 경남에서 49만4000t을 취수했다.

새 취수원 자리로 지목된 경남 합천과 창녕 지역 주민들은 새 취수원이 생기면 각종 개발 사업이 금지되고 하류 지역 농·어업 피해, 지하수 고갈, 지가 하락 등이 뒤따를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합천댐 상류 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거창 지역에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는 점도 다툼의 배경이다.

지난해 5월 27일 부산맑은물범시민대책위원회들이 경남 창원시 의창구 낙동강유역환경청앞에서 지난 5월초 양산 물금취수장 원수에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이 검출된 사실을 알면서도 보름이 넘게 공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정부의 원인규명과 근본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해 5월 27일 부산맑은물범시민대책위원회들이 경남 창원시 의창구 낙동강유역환경청앞에서 지난 5월초 양산 물금취수장 원수에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이 검출된 사실을 알면서도 보름이 넘게 공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정부의 원인규명과 근본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영기 환경부 물관리정책실장은 1일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취수원 다변화 사업에서 환경부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낙동강 상류 쪽인 대구·경북 지역에는 19가지 경우, 하류 쪽인 부산·경남 지역에는 20가지 경우를 두고 사업을 고려했다. 이 중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취수원 갈등에 대해 김영훈 안동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취수원 이전 문제는 환경부가 ‘영향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피해도 없도록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주민들 역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아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부산·경남의 경우는 본류가 아닌 지류로 새롭게 취수원을 지정하는 만큼 보호구역 지정 등에 따른 주민 피해가 있으니 보다 민감하게 해당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보상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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