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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8대 사회보험, 지난해만 19조원 세금으로 메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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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는 건강보험ㆍ고용보험 등 8대 사회보험에 대한 세금 지원이 문재인 정부 들어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이 수반되는 새로운 정책지원이 추가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고용한파 등이 겹치면서다.

8대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 총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8대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 총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 보고서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8대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은 지난해 18조9499억원으로 전년(15조6033억원)보다 21.4%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13조3972억원)과 비교하면 41.4% 늘어난 금액이다. 8대 사회보험은 국민ㆍ공무원ㆍ군인ㆍ사학연금 등 4대 연금에 고용ㆍ산재ㆍ건강ㆍ노인장기요양보험 등 4대 보험을 합한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사회보험에 대한 재정지원은 발생해선 안될 지출이다. 가입자 보험료 등 자체 수입으로 지출을 해결하는 ‘자기 부담’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출산ㆍ고령화 심화에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나갈 돈은 많아졌다. 반면 지출 구조조정이나 제도 개편은 계속 미뤄지면서 정부 재정에 손을 벌리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에 투입하는 국가지원금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 2011년부터 줄곧 흑자였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2018부터 3년 연속 내리 적자다. 이에 2017년 20조 7733억원까지 쌓여 있던 건보 적립금은 지난해 말 17조4181억원으로 줄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을 2017년 7조2209억원에서 지난해 9조7391억원으로 크게 늘렸음에도 이렇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흑자를 기록했던 고용보험 재정수지도 2018년부터 계속 적자다. 이에 실업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2017년 10조2544억원에서 지난해 1조9999억원으로 5분의 4 이상이 날아갔다.(공공자금관리기금 차입금 제외) 고용보험에 투입한 국가지원금은 2017년 1472억원에서 지난해 1조3569억원으로 급증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고용위기로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근로자가 워낙 많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재정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택배기사 등 12개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고용보험 대상으로 새롭게 집어넣는 등 대상을 확대하고 있고, 전 국민 고용보험 시행 시기도 앞당기고 있어서다.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올해 말 -3조2000억원으로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각각 1993년과 1973년부터 이미 적자를 국가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들 4개 사회보험은 지난해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17~2019년 연속 적자를 냈으나 지난해 국가지원금 덕분에 소폭 흑자로 돌아섰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은 2017년 5837억원에서 지난해 1조2436억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급속한 노령화로 노인인구가 늘고, 보험 적용 범위가 늘어나면서 지출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용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처럼 늘어난 사회보험 지원 규모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이 낸 혈세로 국가지원금을 메운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이날 고용보험료율을 기존 1.6%에서 1.8%로 올렸다. 앞서 정부는 2019년 보험료율을 1.3%에서 1.6%로 인상한 바 있다. 1995년 기금 설립 후 세 차례밖에 인상하지 않았던 보험료율을 현 정부 들어 두 번씩이나 올리는 기록을 세우게 되는 셈이다. 이미 내년 건강보험료율은 올해보다 1.89% 인상된 6.99%로 결정됐다. 5년 연속 인상이다. 건보 혜택 확대와 실업자 구제라는 ‘생색’은 정부가 내고, 국민은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청구서’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현재 재정수지가 흑자인 국민연금도 예상 고갈 시점이 2060년(보건복지부 2013년 예측)에서 2057년(보건복지부 2018년 예측), 다시 2055년(국회예산정책처 2020년 예측)으로 앞당겨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추세가 이어지면 재정 고갈 시기는 더 빨라진다. 연금이 고갈되면 그해 가입자들로부터 보험료를 걷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결국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자료: 보건복지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료: 보건복지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학연금은 2048년에 적립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산재보험은 적용 직종이 늘어나면서 재정이 적자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향후 사회보험 지출 소요를 충당하기 위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출 관리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간 돈을 푸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지출 구조조정이나 보장수준의 적정성, 부정수급자 퇴출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국가채무가 내년 1000조원을 돌파하고, 세금ㆍ사회보장기여금 등의 국민 부담을 나타내는 조세부담률ㆍ국민부담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나라 살림도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어 걱정을 키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설계자인 김광두(서강대 석좌교수)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경제ㆍ사회 구조가 달라진 만큼 보험료를 더 많이 걷거나, 아니면 혜택을 덜 주는 식으로 사회보험의 수입ㆍ지출 구조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두 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표’를 잃는 정책이라 이를 미루는 폭탄 돌리기를 해왔다”며 “확장 재정으로 국가 재정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만큼, 이젠 여야 정치권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도록 뜻을 모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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