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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특별기여자와 난민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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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머무는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 주민들이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번 아프간 특별기여자 입국에 대해 과거보다 달라진 여론을 엿볼 수 있다.           [연합뉴스]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머무는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 주민들이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번 아프간 특별기여자 입국에 대해 과거보다 달라진 여론을 엿볼 수 있다. [연합뉴스]

좀처럼 잊히질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의 높은 철조망 위로 엄마들이 갓난아기들을 던졌다. “제발 제 아기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어떤 아기는 철조망 너머 영국 군인의 품에 안겼지만, 어떤 아기는 철조망 위로 떨어졌다. 아프간 사태의 비극성을 웅변하는, 가슴 아픈 장면이다.
아프간 ‘특별기여자’ 390명이 무사히 한국에 들어왔다. 공항 입국장에서는 동물 봉제 인형을 품에 안은 아이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젊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입국자의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이다. 언제 다시 만날까 기약 없이 이들을 떠나보냈을, 아프간에 남겨진 가족들의 심경도 똑같았을 것이다. 부디 젊고 어린 너희들만은 살아남기를, 잘 살기를.
 그들이 떠나온 아프간에서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 탈레반을 풍자하던 유명 코미디언, 민속악기를 연주하는 가수 등이 총살당했다. 거리 광고판에서 여성의 얼굴이 지워지고, 대학에서도 남녀가 따로 수업을 받으라는 탈레반의 지침이 내려졌다. 목숨을 건 탈출기들이 연일 외신을 탄다.
 알려진 대로 정부는 이번 입국자들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란 호칭을 부여했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에서 우리를 도왔던 공로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장기 체류를 허용하고 취업도 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이들을 보는 사회적 시선도 호의적이다. 온라인에는 흉흉한 ‘난민 반대’ 여론이 여전하지만, 며칠 전 여론조사(YTN)에서는 ‘특별기여자의 장기 체류 허용’에 대한 공감도가 70%에 육박했다. 두 달여 머물 곳을 내준 충북 진천군을 응원하는 움직임도 있다. "국격을 높였다" "돈쭐(돈으로 혼쭐) 맞으시라"며 진천군 온라인 쇼핑몰(진천몰)에 주문이 폭주했다.
 이들에게 굳이 ‘특별기여자’란 지위를 부여한 데는 우리 사회 일각에 여전한 ‘난민 혐오’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아프간인들이 계속 등장하고, 난민 수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는 구출 작전이 불가능하지만, 아직도 한국을 도왔던 1000여 명이 도움을 기다린다는 보도가 있다. 국내 아프간인들은 비자 만료 후에도 자신들을 되돌려 보내지 말고 장기 체류가 가능하게 해달라는 공개 탄원서를 냈다. 국내 미군 기지에 난민을 수용하려던 미국 측 계획은 철회됐지만, 언제든 난민 이슈는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난민 혐오 정서는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거센 ‘난민 불허’ 여론 속에 신청자 500명 중 2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범죄ㆍ테러 위험, 국민 부담 등이 반대 이유다. 강한 순혈주의 전통이 타자에 대한 반감과 공포, ‘난민=잠재적 범죄자’란 낙인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파리에서 극단주의 무슬림 이민자들에 의해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2015년) 등의 학습 효과로, 이슬람 포비아도 강해졌다. 폭력과 극단주의를 피해 난민이 됐지만, 한통속으로 보는 셈이다. 한국인은 미국에선 아시아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면서도 비백인ㆍ유색인을 낮춰 보는 자기모순도 있다. 1992년 아시아 최초로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2012년 난민법이 제정됐지만, 94년 이후 지금까지 난민 인정률이 3%도 못 되는 이유다.
 이번 특별기여자들의 입국은 다행스럽고, 시민사회의 의식도 성숙해졌다. 그러나 자칫 공을 세운 이들만 골라 받아들이고 일반 난민은 안된다는 식의 시혜적 조치로 결론 나서는 곤란하다. 난민은 세계 시민사회의 이슈고,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말처럼 "진정한 선진국의 기준 중 하나는 세계시민주의"다. 한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격상됐다며 박수 친 지 얼마 안 됐다. 난민 이슈에 대한 보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 난민 정책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도주의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요구, 국내 불안감 해소(사회적 동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아프간 조력자 품에 안은 한국 사회 #"진짜 선진국 기준은 세계시민주의" #난민에 대한 새로운 생각 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