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정호의 시시각각

아프간 위기의 진짜 피해자, 북한?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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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의 모습. 이날 테러로 아프간인 190여명과 함께 미군 13명도 숨졌다. [AP]

지난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의 모습. 이날 테러로 아프간인 190여명과 함께 미군 13명도 숨졌다. [AP]

미군 철수로 아프간에 생지옥이 펼쳐지면서 안팎에서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을 도왔던 아프간인과 가족들을 구한 영웅담이 넘친다. 반면에 해외에선 북한-탈레반 관계에 대한 괴담이 떠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지난 25일 "북한은 탈레반과 소통해 왔으며 특수훈련을 함께한 적도 있다"고 밝혔고, "미군이 아프간에 남긴 첨단무기를 북한이 사들일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테러 응징 때문에 미국 관심 줄어
북측 관심 끌기용 도발 가능성 커
유화책 아닌 북한 공격 대비해야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둘 대목은 따로 있다. 아프간 사태로 미국의 세계 전략과 대북 정책이 영향받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선 대북 문제에 시큰둥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방치할 공산이 더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 이래 미국의 세계 전략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강대국 간의 경쟁'으로 진화해 왔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가 이런 변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미군 13명이 숨진 자폭 테러는 바이든의 발목을 잡았다. 인기 만회를 위해 아프간에서 뭔가 보여줘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이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심각한 식량난 속의 북한은 제재 일부 해제를 위해서라도 대미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이런 판에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아프간 위기의 진짜 피해자, 북한'이란 기사를 실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북한을 이렇게 내팽개치는 건 능사가 아니다. 2026년이 되면 북한의 핵무기는 200개 이상이 된다고 한다. 30일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아프간 문제로 주한미군에 부정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미국-탈레반 간 협상에서 결정됐고, 아프간 정부는 논의에서 빠졌다. 비유하자면, 주한미군 철수를 한국은 빼고 북·미가 결정한 꼴이다. 물론 바이든이 강조했듯 한국과 아프간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다. 아울러 주한미군 운용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 사안이다. 해외에 주둔 중인 미군은 총 16만여 명. 이 중 주한미군은 2만6000여 명으로 일본(5만3000여 명), 독일(3만5000여 명)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독일은 제대로 된 자국 군대가 없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이란 군사적 자산을 한국 보호에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고려해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에 소극적인 현 정부의 태도가 주한미군의 전력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주한미군 내 전투 헬기 부대를 일본에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과의 합동훈련에 적극적인 일본과는 달리 어떻게든 축소 또는 연기하려는 한국 정부 탓에 헬기 조종사들이 연습 한 번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간 북·미 간 접촉을 실무선에 맡기는 바람에 실패한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의 재탕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 측 협상가들은 '최고 존엄'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트럼프가 썼던 하향식 협상 방식이 더 낫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김정은이 구사했던 '러브레터 외교'를 미국 측에 건의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두 사람 간에 오갔던 친서 27통을 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놀랐다고 한다. 예상보다 김정은의 편지가 구체적이고 내용이 있어서였다. 따라서 바이든이 친서를 보내면 김정은이 화답할 가능성이 적잖다.

어쨌거나 아프간 탓에 북한이 잊힐 위기에 처했다. 이럴 때면 북한은 도발로 관심을 끌려 했다. 지금은 이산가족 상봉, 교황 방문 같은 유화책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도리어 북한이 어떤 도발로 나올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순간이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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