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버려지는 꽁초 1200만개비“ 담배회사에 3가지 따진 ‘닦장’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5:00

업데이트 2021.08.31 14:52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노들섬부터 신용산역 일대까지. 지난 29일 일요일 오전, 십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산책을 나섰다. 가벼운 조깅이라도 할 듯 운동화에 편안한 복장이지만 이들의 목적은 운동보다 쓰레기다.

와이퍼스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와이퍼스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플로깅(plogging). 생소한 이 단어는 스웨덴에서 확산한 단어다.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upp’과 영어 단어 ‘jogging(조깅)’의 합성어로,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말한다.

언뜻 보면 깨끗한 서울 도심이지만, 막상 다녀보니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가 길가에 널려있었다. 관리가 잘 되는 대로변은 그나마 낫지만, 상업 시설이나 주택가 안쪽 골목 후미진 곳엔 어김없이 담배꽁초와 플라스틱 음료 컵이 나뒹굴고 있었다. 약 3km 남짓한 거리를 지났지만 비닐봉지 하나가 쓰레기로 꽉 들어찼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2인씩 짝을 지어 플로깅을 했고, 팀별로 주운 쓰레기봉투의 무게를 재보니 최종 10kg. 이들이 오늘 지구를 ‘닦은’ 양이다.

플로깅이 끝나면 수거한 쓰레기의 무게를 잰다. 쓰레기 수거용 비닐은 생분해 비닐을 사용했다. 유지연 기자

플로깅이 끝나면 수거한 쓰레기의 무게를 잰다. 쓰레기 수거용 비닐은 생분해 비닐을 사용했다. 유지연 기자

‘와이퍼스(wiper.th)’는 이렇게 지구를 닦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닦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와이퍼(wiper)와 지구(earth)를 조합해 황승용(35)씨가 2019년 만들었다. 황승용씨는와이퍼스의 ‘닦장’으로 불린다.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라이언 힉맨의 이야기를 알게 됐어요. 8살의 나이에 이미 ‘라이언 리사이클링’이라는 쓰레기 회사 대표였죠. 세 살 때부터 해변의 쓰레기를 주워온 아이더라고요. 세 살짜리 아기도 한 일이니 나도 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와이퍼스 황승용 닦장. 지구를 닦는 사람들을 이끈다는 의미로 '닦장'으로 호칭한다. 김경록 기자

와이퍼스 황승용 닦장. 지구를 닦는 사람들을 이끈다는 의미로 '닦장'으로 호칭한다. 김경록 기자

건강을 위해 마라톤을 즐겼던 황 씨는 10km 마라톤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혼자서 약 1년 동안 플로깅을 하면서 틈틈이 SNS도 했다. 쓰레기 사진만 올리면 너무 심각해 보여서 일부러 유쾌해 보이도록 운동 모습을 함께 올렸다. 댓글로 조금씩 반응이 왔다고 한다. ‘저도같이 할 수 있을까요?’라고.

지금은 와이퍼스 단체 채팅방에 507명이 들어와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2500명의 팔로워가 모였다. 채팅방에 플로깅 모임 공지를 띄우면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쓰레기를 줍는다. 요즘은 코로나19로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모여 쓰레기를 줍는다. 회사나 단체의 후원 문의도 많다. 29일 있었던 노들섬과 용산 근처 플로깅도 코오롱FnC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래코드’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쓰레기를 줍다 보니 웃지 못할 일화도 많다. 황승용 닦장은 “한 번은 해변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하는데 냉장고가 버려져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해변 플로깅은 참담할 정도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 마대자루를 들고 플로깅을 하는데, 보통 한 사람당 20kg의 쓰레기가 나온다.

지난 8월 북한산에서 플로깅을 하면서 만난 쓰레기. 약 20분 동안 한 장소에서 이만큼의 쓰레기를 발굴했다. 사진 와이퍼스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 8월 북한산에서 플로깅을 하면서 만난 쓰레기. 약 20분 동안 한 장소에서 이만큼의 쓰레기를 발굴했다. 사진 와이퍼스 공식 인스타그램

도심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쓰레기는 다름 아닌 담배꽁초다. 황 씨는 “담배꽁초 필터 부분이 플라스틱인데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며 “버리는 곳이 따로 없다 보니 전국적으로 하루에 1200만 개비의 담배꽁초가 버려진다고 한다”고 했다.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강이나 바다로 흘러갈 수 있고, 미세 플라스틱으로 떠돌 수도 있다. 플로깅을 할 때마다 담배꽁초가 너무 많이 나와 와이퍼스의 이름으로 ‘꽁초 어택’ 캠페인을 한 적도 있다. 지난해 9월 담배 제조 업체인 ‘KT&G’에 항의하는 취지로 7000개비의 버려진 담배꽁초를 모아서 보냈다. 올해 4월에는 2만5000개비를 보냈다.

와이퍼스의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담배꽁초가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알릴 것. 둘째, 생산자책임 재활용 제도에 따라 담배꽁초를 버릴 수 있는 곳을 마련하든지 꽁초 투기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것. 셋째, 담배꽁초를 모아오면 보상을 해줄 것 등이다. 아직 KT&G로부터 답변은 없다. 황승용 닦장은 “매년 KT&G에서 500억 정도의 폐기물 부담금을 내는데 어떻게 쓰이는지 책임을 갖고 조사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9월 항의의 목적으로 진행한 '꽁초어택' 캠페인. 7000여 개비의 버려진 담배꽁초를 모아 KT&G에 보냈다. 사진 와이퍼스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해 9월 항의의 목적으로 진행한 '꽁초어택' 캠페인. 7000여 개비의 버려진 담배꽁초를 모아 KT&G에 보냈다. 사진 와이퍼스 공식 인스타그램

황 씨에게 닦장은 ‘부캐(부수적 캐릭터)’다. 본업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퇴근 후와 주말에는 와이퍼스의 닦장으로 시간을 보낸다. 와이퍼스가 커지면서 올해는 비영리 사단 법인으로 만들 계획도 있다. 이런저런 챙겨야 할 일도 많아 부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앞으로도 계속 부캐 전략을 고수할 작정이다. 황 씨는 “평범한 사람들도 지구를 닦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보통 환경 운동이라고 하면 급진적으로 모든 걸 버리고 뛰어들어 거창하게 해야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환경에 대해 지나치게 위기의식을 조장하거나 당위성을 강조하기보다 편한 접근법을 쓴다. 플로깅 등 환경 운동을 하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니 돈을 아낄 수 있고, 자연스레 운동하면서 건강이 좋아지고, 사람들과 만나니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야 환경 운동도 지속해서 할 수 있다는 게 황승용 닦장의 생각이다.

황승용 닦장은 "환경 운동이라고 하면 거창한 걸 해야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 와이퍼스 공식 인스타그램

황승용 닦장은 "환경 운동이라고 하면 거창한 걸 해야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 와이퍼스 공식 인스타그램

“쓰레기를 줍다 보면 애초에 안 버리고, 플라스틱을 덜 써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점수로 환산한다면 60점짜리 사람들이 많은 게 한두 명의 100점짜리보다 효과적일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이 가볍게라도 환경을 지키는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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