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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2.5년간 마시는 물, 면셔츠 한벌 만드는데 다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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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패션 업계서 거세게 불고 있는 친환경 바람이 이번엔 ‘염색’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의류를 생산할 때 필수과정으로 여겨지는 염색 가공 과정에서 많은 양의 물이 오염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의류 산업에서 염색 단계는 환경에 가장 해롭다. 화학 염료를 사용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많은 물이 사용되고, 폐수가 발생한다. 사진 랄프 로렌

의류 산업에서 염색 단계는 환경에 가장 해롭다. 화학 염료를 사용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많은 물이 사용되고, 폐수가 발생한다. 사진 랄프 로렌

면 셔츠 한 벌 만드는 데 2700L 물 필요

거의 모든 의류는 직물에 염색 가공 과정을 거친 후 만들어진다. 하지만 옷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통틀어 염색 단계는 환경에 가장 해롭다. 앨런 맥아더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수조 리터(L)의 물이 직물 염색에 사용되며 전 세계 폐수의 약 20%가 패션 산업에서 발생한다. 미국 CNN에 따르면 현대 염색 산업은 유황·비소·포름알데하이드 등 8000개 이상의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 의류의 상당 부분이 환경 규제가 약한 저개발 아시아 국가에서 만들어진다. 염색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곧바로 강이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의류 염색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매년 2백만개의 올림픽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양의 물이 사용되고 있다. 사진 parker-burchfield by Unsplash

의류 염색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매년 2백만개의 올림픽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양의 물이 사용되고 있다. 사진 parker-burchfield by Unsplash

폐수도 문제지만 너무 많은 양의 물이 사용되는 것도 문제다. 유엔 유럽 경제위원회(UNECE)는 2018년 보고서에서 전체 산업에서 소비되는 물의 약 20%를 패션 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산업 중 두 번째로 많은 양의 물 소비다.  예를들어 한 벌의 면 셔츠를 생산하는 데 약 2700L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한 사람이 2.5년 동안 마시는 양과 같다. 특히 직물을 염색하면서 많은 양의 물이 사용된다. CNN은 전 세계적으로 의류 염색 과정에서 매년 2백만 개의 올림픽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양의 물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요한 만큼만 염색할 수 있을까

보통 염색 과정은 직물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옷이 만들어지기 전, 직물을 먼저 염색한 후 이 직물을 가지고 옷을 짓는 것이다. 옷의 생산량에 맞춰 염색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이 수요에 맞춰 염색하는 ‘컬러 온 디맨드’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다. 의류 생산 과정 어느 시점에서나 염색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으로 주문된 수량에 맞춰 염색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직물 재고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또 염색 공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기존 염색 공정보다 물 사용률은 최대 40%, 화학 물질 사용률은 85%, 에너지 사용률은 90% 감소시켰다. 2025년까지 랄프 로렌은 면제품의 80% 이상에 ‘컬러 온 디맨드’ 시스템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 말 이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처음 출시할 예정이다.

옷을 만들기 전이 아니라, 옷을 만든 후 염색하는 '가먼트 다잉' 기법으로 물과 염료의 사용을 줄이기도 한다. 사진 나우

옷을 만들기 전이 아니라, 옷을 만든 후 염색하는 '가먼트 다잉' 기법으로 물과 염료의 사용을 줄이기도 한다. 사진 나우

비슷한 친환경 염색 기법으로 ‘가먼트 다잉(Garment Dyeing)’ 기법을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옷을 만들기 전이 아니라, 옷을 만든 후 염색하는 것이다. 물과 염료의 사용이 확연히 줄 뿐만 아니라 봉제 부분이 수축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구김과 색감이 빈티지 감성을 더해주기도 한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가 바로 이 기법을 활용해 지난 2월 ‘가먼트 다잉 재킷 시리즈’를 출시했다. 재킷의 원단도 비료와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한 면 원단을 썼다.

버린 오렌지로 염색하고, 물 없이 염색도

캐나다 운동복 브랜드 ‘룰루레몬’은 버려진 식물로 직물을 염색해 ‘얼스 다이 컬렉션’을 출시했다. 농업이나 약초 산업에서 사용하고 버려진 오렌지·비트·소팔메토 열매·야자수 등의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활용해 만든 옷이다. 기존 염색 방식보다 물은 물론 화학물질 사용량이 적어 환경 영향이 적다. 옷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무늬가 염색되고, 색상 역시 선명하기보다 자연스러워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식물 폐기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활용해 염색한 옷. 사진 룰루레몬

식물 폐기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활용해 염색한 옷. 사진 룰루레몬

‘K2’ ‘네파’ 등 국내 운동복 브랜드도 물을 사용하지 않는 염색 기법인 ‘드라이 다이’ 공법을 활용한 제품을 내놓았다. 물 대신 액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매개로 옷감에 색을 입히는 방식이다. 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박테리아에 색 입혀 염색한다

식물이나 동물의 색을 담당하는 유전 정보를 박테리아 세포에 삽입, 계속해서 복제하는 형식으로 바이오 염료를 만들기도 한다. 사진 컬러리픽스 공식 인스타그램

식물이나 동물의 색을 담당하는 유전 정보를 박테리아 세포에 삽입, 계속해서 복제하는 형식으로 바이오 염료를 만들기도 한다. 사진 컬러리픽스 공식 인스타그램

물 사용도 문제지만, 아예 화학적 염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영국 동부 노리치에 위치한 생명 공학 스타트업 ‘컬러리픽스(colorifix)’는 미생물의 색을 활용한 염색 기법을 만들어내는 혁신을 선보였다. 식물이나 동물에서 색소를 추출하지 않고, 유전 정보를 복제해 염료를 만든다. 식물이나 동물의 색상을 담당하는 유전 정보를 박테리아 세포에 삽입해 발효 기계에서 계속해서 복제하는 것이다. 이 미생물 염료를 직물에 뿌리고 직물에 열을 가하면 미생물의 막이 파열되어 색이 방출되며 섬유에 화학적으로 부착된다. 박테리아 세포의 잔여물을 씻어내면 색만 남아있게 되는 원리다. 공상 과학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신기한 방식이지만 지난 2018년 스웨덴 패션 기업 ‘H&M’이 이 회사에 투자했고, 지난 4월 15일에는 이 기법으로 만들어진 옷이 세상에 나왔다. 바로 ‘컬러 스토리 컬렉션’이다. 컬러리픽스의 바이오 염색 방식 외에도 식물 기반 염색 등 다양한 친환경 염색 기법을 사용해 만든 의류 컬렉션으로 주로 따뜻한 노란색, 부드러운 주황색으로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오 염색, 식물 기반 염색 등 각종 친환경 염색 기법을 사용해 의류 컬렉션을 출시한 H&M. 사진 H&M

바이오 염색, 식물 기반 염색 등 각종 친환경 염색 기법을 사용해 의류 컬렉션을 출시한 H&M. 사진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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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必환경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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