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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야당에 김연경이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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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차세현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늦여름 8월에 된서리를 맞은 사람이 있다. ‘0선의 당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이 대표는 공식 사과와 정홍원 선관위원장 임명으로 수습했지만, 당내 대선 주자와의 갈등, 국민의당과의 통합 실패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8월 넷째 주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 대표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힘 지지층(36% vs 59%), 보수층(36% vs 58%), 60대 이상(34% vs 53%)의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20%포인트가량 압도했다. 불과 두 달 전 20·30세대와 중도로 외연을 넓혀야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는 일편단심에 이 대표를 밀었던 지지층이 옐로카드를 내민 것이다.

취임 두 달 옐로카드 받은 이준석
야당에 김연경 같은 후보 없으면
문 정부 실정에 강하게 맞서고
대선후보들 원팀으로 만들어야

서소문 포럼 8/31

서소문 포럼 8/31

그나마 위안은 여전히 국민의힘이 약세인 20·30세대(46%), 중도(41%), 광주·전라(46%) 등에서 평균(37%)보다 높은 긍정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 야권 원로는 이런 결과를 두고 모자가 무거워 목이 꺾일 뻔했다고, 앞으로 잘 해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행보를 놓고 당 안팎에서 ‘유승민 후보 만들기’라는 말이 무성하지만 사람 속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따릉이 출근’과 ‘나는 국대다’ 토론 배틀로 상한가를 친 이 대표가 자기중심의 대선판을 짜려 했다는 점이다. 선발 투수가 되겠다고, 4번 타자가 되겠다고 나섰다는 말이다.

상당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내년 대선은 좀 특이한 대선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요지는 지난해 미국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투표였다면 이번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투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총선과 지방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평가, 대선은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미래 지도자를 뽑는 선거라는 여의도의 불문율이 이번엔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단 얘기다.

근거는 이렇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 임기 5년 차 중 가장 높은 수준(갤럽 8월 넷째 주 조사에서 38%)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도(31%)보다 높고, 2007년 정권을 뺏겼던 노무현 정부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특히 진중권씨가 최근 아프간 사태를 빗대 ‘달레반’이라고 비꼬았을 만큼 문 대통령 지지층은 견고하다. 역대 최다 득표인 7400만표를 얻고도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여당 후보들이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기보단 오히려 자신들이 문재인정부 시즌2의 적임자라면서 ‘달레반’의 낙점을 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다.

야당 주요 후보들이 문 대통령과 맞짱을 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이란 점도 그렇다. 국민은 평생 검사, 평생 판사였던 두 후보가 능수능란하게 국가경영을 할 거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압박에도 문 대통령에 맞섰던 이력 때문에 지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이들의 지지율이 정체된 것이 당내 주자들의 ‘초보’ ‘아마추어’라는 주장이 먹혀서가 아니다. 입당 후 곧바로 내홍에 휘말리면서 문재인 정부의 독주에 맞서는 일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언론재갈법’ 침묵, OECD 꼴찌인 백신 접종 완료율과 자영업자의 눈물, 부동산 가격 폭등 등 현 정부의 실정이 쏟아지는데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짠 맛을 잃으면 소금은 쓸모가 없어진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선수였던 적이 없다. 어릴 적 한 배구 코치의 열정에 매료돼 코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초점을 둔 건 성공하겠다는 의지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선수들과 따로 대화하면서 매 순간 목표를 설명하고, 팀워크를 믿고 따르고 있는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의 성공은 두말할 것 없이 정권 교체다. 이 대표의 역할은 라바리니 감독의 말처럼 후보들이 경선 승리만을 위해 정권 교체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게 하고, 매 순간 원팀으로 달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버거운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다.

이 대표가 8월 한 달 악전고투하는 와중에 이런 말을 했다. “내년 대선은 구도만 놓고 보면 우리가 5% 지는 선거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 인기보다 나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확 뒤집기는 쉽지 않다” 일리 있는 말이다. 지금 국민의힘 후보 중에 한국 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과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있나. 그렇다면 답은 라바리니 감독이 말한 원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