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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은 닭을 잡아 달걀을 얻으려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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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IT(정보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거대 민영기업들에 ‘천사의 날개’가 돋기 시작한 모양이다. 너도나도 앞다퉈 거액 기부에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핀둬둬는 지난 24일 100억 위안(약 1조 8000억원)을 농촌 발전을 위해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2분기에 약 24억 위안의 순이익이 났다며 중국 농촌지역이 당면한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100억 위안을 들여 농업과학기술전담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핀둬둬의 이번 흑자는 창사 이래 두 번째에 불과한데 순익이 생기자마자 바로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핀둬둬는 지난 24일 농촌 발전을 위해 100억 위안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핀둬둬는 지난 24일 농촌 발전을 위해 100억 위안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앞선 지난 18일엔 중국의 대표적 IT 기업인 텐센트가 500억 위안의 기부 의사를 밝혔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트댄스, 핀둬둬, 메이퇀, 샤오미 등 중국의 6대 빅테크 기업들은 지난 1년간 이미 약 30조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냈다. 한데 최근 또다시 기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왜 그런가. 텐센트가 기부 의사를 밝힌 날에 답이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18일, 전날 있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주재의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 소식을 전했다. 회의 주제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촉진이다.

중국의 대표적 IT 업체인 텐센트는 지난 18일 500억 위안의 기부 의사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대표적 IT 업체인 텐센트는 지난 18일 500억 위안의 기부 의사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공동부유는지난해로 이미 먹고사는 데 걱정 없고 약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소강(小康)사회를 달성한 중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목표로 시 주석이 제시한 것이다. 시 주석은 21세기 중엽엔 중국의 공동부유를 실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도 같은 저장(浙江)성을 ‘공동부유 시범구’로 지정하고 저장성은 2035년까지 공동부유를 달성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한 상태다. 그렇다면 모두가 잘사는공동부유는 어떻게 이룰 수 있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7일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동부유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를 활성화하는 ‘3차 분배’를 강조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7일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동부유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를 활성화하는 ‘3차 분배’를 강조했다. [AP=연합뉴스]

시 주석은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3차 분배’를 강조했다. 3차 분배가 뭔가. 중국 언론은 분배 제도와 관련해 중국의 저명 경제학자인 리이닝(厲以寧) 박사의 설명을 든다. 1차 분배는 시장에서 효율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보통 임금이나 상여금을 통해 이뤄지고, 2차 분배는 정부가 세수나 사회보장 등 지출을 통해 하는 재분배를 말한다. 3차 분배는 도덕의 힘으로 이뤄진다. 개인이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회에 내놓는 기부 행위가 그 예다. 문제는 서방의 기부가 자발적인 데 비해 중국의 기부는 정부 강요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저장성을 공동부유의 시범구로 지정했다. 사진은 저장성 자산시의 풍경.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저장성을 공동부유의 시범구로 지정했다. 사진은 저장성 자산시의 풍경. [중국 신화망 캡처]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선 이를 통해 저소득층의 수입을 늘리고 중간 계층의 비중은 확대하며 고소득자의 수입은 합리적으로 조절해 중간이 크고 양 끝은 작은 올리브 모양의 분배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촉진하며 전체 인민을 공동부유의 목표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뜻은 좋은데 이면엔 중국 당국의 불안감이 읽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게 뭘까.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소강사회 달성에 이어 올해 초엔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탈빈(脫貧)을 선언했다. 한데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지난해 밝혔듯이 월 1000위안 이후 수입이 6억 명, 2000위안 이하는 9억 명에 이를 정도로 빈부격차는 과거보다 더 커졌다.

중국 당국의 민영 기업 손보기는 지난해 가을 알리바바의 마윈에 대한 단속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뉴시스]

중국 당국의 민영 기업 손보기는 지난해 가을 알리바바의 마윈에 대한 단속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뉴시스]

중국의 상위 1%가 가진 자산의 비중이 20년 전 20.9%에서 지난해 말에는 30.6%로 뛰었다. 중국의 14억 인민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며 팡파르를 울렸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니 분배 구조는 더욱 악화한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특히 아직도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코로나 19 사태를 거치며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19 전파를 막겠다고 인구 이동을 제한하다 보니 저소득층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는 데 반해 부자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고 있는 걸 발견했다. 특히 IT를 기반으로 한 부자와 기업은 코로나 19 기간 오히려 부를 더욱 발 빠르게 늘였다. 중국 당국이 IT 기업부터 손보기에 들어간 배경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공동부유를 달성해야 할 임무를 부여 받은 저장성의 둥양시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에서 가장 먼저 공동부유를 달성해야 할 임무를 부여 받은 저장성의 둥양시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주석이 내건 공동부유는 이제까지 이룬 부를 토대로 한발 더 나아가 모두가 부유해지자는 것으로 들리지만, 실제론 빈곤에서 벗어난 이가 다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예방하기 위한 위기 대응 차원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분석은 이래서 나온다.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저소득층은 빈곤 계층으로 추락해 사회 동란의 근원이 되는 걸 막자는 고육지책이 바로 3차 분배를 통한 공동부유 달성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민영 기업 때리기는 ‘닭을 잡아 달걀을 얻는(殺鷄取卵)’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강요된 기부와 민영 기업가 손보기로 인해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민영 기업가의 활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중국 IT 거대 민영 기업들 갑작스레 앞다퉈 기부 나서 #자발적 기부 아닌 정부 압력에 따른 강요된 성격 띠어 #‘공동부유’ 이루기 위한 ‘3차분배’ 행위라 일컬어지지만 #기업가 정신 위축으로 중국 경제에 부메랑 될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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