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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도 아프간 수렁에 빠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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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학생들’이란 뜻을 가졌다는 탈레반(Taliban)의 중국어 한자 표기는 ‘塔利班’이다. 음역한 것이다. 이 한자 석 자를 중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에 입력해 찾아보면 탈레반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소개가 나온다. 한데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설명 중 색깔을 넣고 고딕으로 강조해 표시한 부분이 있다. “파키스탄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양자를 헛갈려선 안 된다”는 문장이다. 탈레반은 아프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파키스탄에도 탈레반은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AP=연합뉴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AP=연합뉴스]

파키스탄 탈레반과 아프간 탈레반 구분하는 중국
아프간 재건 참여로 탈레반과 관계 개선 꾀하지만
탈레반과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자 모두 수니파로
아프간이 테러리즘 등 '3대 악' 온상 될까 전전긍긍

어떻게 다른가. 바이두의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파키스탄 탈레반은 원래 아프간 탈레반의 지방 분파 조직이었는데 세력이 커져 이제는 독립적인 다른 세력이 됐다고 한다. 2007년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과격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에 충성한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이미 여러 차례 중국인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은 지난 7월 14일로 파키스탄 서북부 지역에서 중국인 출근 버스를 공격해 9명의 중국인 엔지니어가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다. 당시 격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버스테러의 진상을 규명하라며 파키스탄에 수사팀 파견을 지시했다는 사건이다. 이처럼 탈레반은 중국인 머릿속에서 ‘테러’ 두 글자와 연결된다.

지난달 16일 아프간 카불의 잔바크 광장 인근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탈레반. [AFP=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아프간 카불의 잔바크 광장 인근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탈레반. [AFP=연합뉴스]

한데 바이두가 파키스탄 탈레반과 아프간 탈레반을 구분해야 한다고 고딕으로 표시한 게 7월께다. 미군 철수에 따라 아프간이 탈레반 수중에 넘어갈 것이고 그 탈레반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기에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덜기 위해 중국 당국이 사전에 손을 썼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니나다를까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아프간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톈진(天津)으로 초청해 협력을 다짐했다. 왕이는 이보다 앞선 지난 5월엔 시안(西安)에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외교장관과 ‘중국+중앙아시아 5국’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모두 아프간 주변국들이다.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에서 아프간 탈레반의 2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AFP=연합뉴스]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에서 아프간 탈레반의 2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AFP=연합뉴스]

아프간 사태에 발 빠르게 대응해온 중국의 외교 행보를 읽을 수 있다. 이는 역으로 미국의 철병 후 아프간이 혹여 테러의 온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중국의 걱정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까지 베이징과 탈레반이 크게 부딪친 적은 없다. 지난 2000년 11월 당시 파키스탄주재 중국대사 루수린(陸樹林)이 아프간의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우마르와 접촉한 적이 있다. 이때 우마르는 아프간이 중국을 공격하는 기지로 활용되게 하지는 않겠지만, 아프간으로 들어와 숨은 중국 신장(新疆) 분리주의자의 추방은 거절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지금 중국의 우려는 바로 이 점에서 시작된다.

아프간 카불에서 카타르로 이동하는 미 공군 수송기에 몰린 피난민들. [AFP=연합뉴스]

아프간 카불에서 카타르로 이동하는 미 공군 수송기에 몰린 피난민들. [AFP=연합뉴스]

탈레반은 이슬람 수니파다. 그리고 신장 위구르 지역을 중국에서 분리시켜 동투르키스탄 국가를 세우겠다며 투쟁하는 무장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 또한 수니파다. 탈레반은 이슬람 급진주의를 확산시키는 게 존재 이유다. 그런 탈레반이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 지역 무슬림 탄압에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집권 초기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잠시 취할 수는 있겠지만, 빵을 얻으려 종교적 동질감을 포기할 조직은 결코 아니다.

아프간 2대 도시 칸다하르 시내를 순찰하는 탈레반. [AP=연합뉴스]

아프간 2대 도시 칸다하르 시내를 순찰하는 탈레반. [AP=연합뉴스]

이 때문에 중국이 소련과 미국에 이어 ‘제국의 무덤’이라 불리는 아프간 수렁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쓰촨(四川)대학의 남아시아문제 전문가 장리(張力)는 “중국이 경제원조와 투자승낙 등을 당근으로 내세워 탈레반 등 아프간 각 세력의 정치적 화해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바람이 읽힌다. 아프간의 안정을 통해 신장 분리주의자를 지원할 테러조직이 활개 치지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도시 잘랄라바드의 시민들이 지난 18일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흔들며 탈레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도시 잘랄라바드의 시민들이 지난 18일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흔들며 탈레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과 아프간은 ‘와칸 회랑’을 통해 약 73Km에 달하는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 좁은 회랑을 중국군이 겹겹이 지키고 있어 새 한 마리 넘어오기 힘들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지는 향후 아프간 정국이 말해줄 것이다. 중국이 아프간 재건에 참여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 또는 아프간에까지 세력을 확장할 것 등의 전망은 아직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이야기다. 중국은 현재 미군 철수 후의 아프간이 ‘테러리즘, 분리주의, 종교적 극단주의’ 등 중국에서 일컫는 ‘3대 악(惡)’의 온상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국이 2001년 9.11 사건 이후 아프간의 탈레반을 공격한 이른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었나. 한데 이제 미국은 떠났다. 그리고 중국이 그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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