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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쟁' 끝내려다…美, 더 고달픈 '테러전 수렁' 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불공항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한 인파가 모여 있다. 뉴스1

카불공항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한 인파가 모여 있다. 뉴스1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시한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카불 국제공항을 노리는 "구체적이고 신뢰할만한 테러 위협"이 추가로 제기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미국의 '아프간 20년 전쟁' 종식이 테러와의 기나긴 전쟁의 서막을 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은 '영원한 전쟁'을 끝내려다 비용도 더 들고, 더 불명예스럽고, 더 긴 전쟁에 접어들게 됐다"고 보도했다. WSJ는 "10년 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했을 때 이미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라며 "'이라크의 교훈'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이라크 철수 후 IS 발호

이라크전은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고 독재정권을 서방식 민주주의 정부로 교체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2011년 12월 18일 미군이 철수하기까지 9년여간 17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라크에 주둔시켰지만 사담 후세인을 패퇴시키는 데 그쳤다.

문제는 이라크 철수 이후에도 계속됐다. 미군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뒤 후계 정권 구도를 탄탄하게 세우지 않고 철수하자 힘의 공백이 생긴 이라크 내에 종파간 대립, 부족 사이 알력 다툼이 재개됐다. 무려 3년간 권력 공백 상태가 이어지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스스로를 무함마드의 적통인 칼리프(이슬람 정치·종교 최고지도자)라 칭하며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설립해 광적인 테러를 이어갔다.

인질 납치와 참수, 노예 거래, 문화재 파괴, 자살테러 등 IS는 반인도적·반문명적 만행을 저지르는 사상 최악의 테러 집단으로 성장하며 지구촌을 충격에 빠트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결국 IS를 몰아내기 위해 이라크 철수 3년 뒤인 2014년 1500명을 재파병했고 2016년에는 5000명으로 파병 인력을 늘려야 했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 때 알바그다디가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미국이 IS를 완전히 격퇴하지는 못했다.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성급하게 철수하는 바람에 지구촌 골칫거리인 IS 출현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아프가니스탄, 제2의 이라크 되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아프가니스탄, 제2의 이라크 되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하디스트 1만명 아프간행

아프간전 양상도 이때와 비슷하다. 미국이 성급하게 발을 빼려다 전 세계 테러 위협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라크 때처럼 아프간 역시 민주정부 기반이 약해 미군 철수 직후 탈레반이 장악할 거란 사실은 모두 예상했다"며 "탈레반의 아프간 탈환은 알카에다, IS 등 급진 이슬람 세력의 부활로 이어질 거란 사실 역시 예견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 공개된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아프간 철수를 본격화하면서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중국 서부 신장에서 8000~1만명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아프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WSJ는 "IS와 탈레반이 적대관계라지만, 두 단체 모두 미국을 증오하고 미국인 사살을 영광스럽다고 믿는 자들"이라며 "아프간이 이들 중 누구의 수중으로 떨어지더라도 아프간은 반미 테러리스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이미 테러전 휘말려 

지난 26일 IS의 아프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카불 공항에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 미군 13명을 포함해 170여 명이 숨지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공언한 뒤 48시간이 채 안 돼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미군 철수가 완료되지 않은 카불 공항은 IS-K의 추가 테러 위협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미군 철수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카불 공항 주둔 인력도 줄고 있어 테러리스트의 공격은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이 이미 국소적인 테러전에 휘말린 양상이 됐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트위터 캡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트위터 캡처]

'제2의 9·11 테러' 경고음  

이라크전 철군 이후처럼 아프간에도 미군을 재파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공격한 IS-K에 대해 반드시 보복 공격을 이어갈 것이고, 지상군을 투입한 형태의 전면전이 아닌 드론을 활용한 정밀 타격이 가능한 요원들이 다시 아프간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구 세계에서는 제2의 9·11 테러에 대한 경고가 잇따른다. 영국 의회 국방특별위원회장인 토비아스 엘우드 하원의원은 "테러리스트 집단은 지난 20년이 얼마나 헛된 세월이었는지 보여주려 할 것"이라며 "9·11 테러와 같은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인남식 교수는 "과거 '제국의 무덤'으로 불렸던 아프간이 향후 '테러의 요람'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아프간전 종식은 옳은 판단일 수 있지만, 출구전략이 정교하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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