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임신 테스트기에 두줄 반응이 나왔을 때, 아니 그보다도 훨씬 이전.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고, 엄마라 불러야 할 모체의 자궁에 사뿐히 뿌리를 내려앉았을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태어나 살아온 날들을 손가락으로 꼽는 게 더 빠를 이 아이는 첫 번째 대수술을 받고 타인의 돌봄을 받고 있다. 병원 기록 아기의 성명란엔 ‘미상 아기’로 쓰여있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이 생명을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아기’로 기억한다. 아이는 분명히 이 땅에 태어나 숨을 쉬고 있지만, 대한민국 시스템상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갓 낳은 아이를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통에 유기했기 때문이다. 출생 신고가 없으니, 아기는 무명(無名)이다.
아기는 죽음의 고비에서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얼마 전 목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15㎝에 달하는 상처로 봉합 수술을 받았다. 통상의 환아라면 보호자의 동의를 거쳐야 했지만, 충북대병원은 이 아기를 수술대에 올렸다. 살리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근 사흘에 달하는 시간 동안 유기됐던 아기는 패혈증을 앓고 있다. 병원은 또 한 번의 수술을 진행해야 할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분유조차 삼키지 못하는 아기는 최근 병원에서 탯줄이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이 생명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높다. 병원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이마저도 아기 친척들과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법무부에서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 아기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씨앗을 ‘위기 출산’이라고 칭했다. 엄마가 임신을 한 단계부터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 틀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얘기다. 임신이 확인된 순간부터 나라가 제공하는 진료비와 출산 지원을 받을 수가 없으니, 출생 등록은 더 어려운 일이다. 우여곡절 끝, 아기가 영아살해미수 혐의로 구속된 엄마의 친자로 등록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이어진다. 친권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잠룡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인물들이 공약을 앞다퉈 발표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위기 출산과 그로 인해 제대로 양육 받지 못하고 벼랑 끝에 놓이는 무명 아이들을 위한 제도 정비는 내놓지 않는다. 악순환은 이렇게 되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