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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안된다더니 車는 실었다…카불 탈출 英수송기 논란

중앙일보

입력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을 피해 탈출하려는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시민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에서 사람·동물·화물의 이송 우선순위를 놓고 때 아닌 논란이 벌어졌다.

영국 스카이뉴스가 공개한 지난 24일 영국 군 수송기 내부. 영국군은 공석으로 이륙할 수 없어 대사관 소속 차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스카이뉴스 영상 캡처]

영국 스카이뉴스가 공개한 지난 24일 영국 군 수송기 내부. 영국군은 공석으로 이륙할 수 없어 대사관 소속 차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스카이뉴스 영상 캡처]

24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아프간에서 동물구조단체 ‘나우자드’를 운영하는 폴 파딩(52)이 민간 전세기로 직원 69명에다 동물 200여 마리까지 실어나르려던 데서 비롯됐다.

파딩 주장은 이렇다. “군 수송기 탑승을 보장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전세기를 마련했는데 이 전세기의 이·착륙을 군이 불허했다고 한다. 그는 군의 이송 우선순위에 동물은 없다며 “(동물을 동반했다는 이유로) 적군의 영토에 남겨졌다”고 토로했다.

이에 벤 월러스 국방부 장관은 즉각 반박했다. 월러스 장관은 “파딩과 그 직원들은 영국 여권 소지자로 (군 허가증 없이도)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다”며 “영국 국방부가 파딩을 버렸다는 주장은 ‘헛소리’”라고 주장했다. 다만 “사람보다 애완동물을 우선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그는 “동물 구출에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다. 탈레반의 표적은 동물이 아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구조 1순위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프간에서 동물구호단체 '나우자드'를 운영하는 폴 파딩. [트위터 캡처]

아프간에서 동물구호단체 '나우자드'를 운영하는 폴 파딩. [트위터 캡처]

하지만 장관의 해명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스카이뉴스가 자동차가 실린 군 수송기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영상에서 사람들은 차를 둘러싸고 앉았다. 당장 소셜미디어(SNS)에서 “군의 주장대로라면 동물보다 차가 우선한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동물복지 활동가로 알려진 배우 피터 에건도 “차는 괜찮고, 동물은 안 된다는 군의 결정이 옳은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거센 비판과 항의가 이어지자 국방부 측은 “이 차량은 (영국 대사관에서 사용하는) 민간 장갑차”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당시 134명의 탑승자를 태우고, 더 많은 승객을 실으려고 이륙 직전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자리가 남았고, 철수 기한 내 화물과 장비까지 옮겨야 하는 상황에 차를 실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명한 건 언제나 탑승 1순위는 무제한의 승객이고, 이후 빈 곳은 화물로 채워진다. 현재로선 어떤 비행기도 빈 상태로 카불을 떠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탈레반 점령한 카불서 공항 가려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탈레반 점령한 카불서 공항 가려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월러스 장관도 현재 탈레반 위협으로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고, 항공기 이륙 시간은 정해져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철수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그는 “일부 활동가들은 민간 전세기가 마치 모든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마법 지팡이’가 될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법 지팡이는 3000여명이 탈레반 검문소를 뚫고 공항까지 오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그는 이날 트윗을 통해 “파딩과 동물들이 공항에 도착한다면 민간 전세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단 여전히 군 수송기에 동물은 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카불에서 출국한 파딩의 아내 카이사(30)가 탑승한 군수송기. 당시 상당수 아프간인이 밤늦은 시각 탈레반의 위협으로 제때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수송기가 빈 채로 이륙한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캡처]

지난 19일 카불에서 출국한 파딩의 아내 카이사(30)가 탑승한 군수송기. 당시 상당수 아프간인이 밤늦은 시각 탈레반의 위협으로 제때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수송기가 빈 채로 이륙한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캡처]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군의 철수 작전은 이틀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이 오는 31일로 철군 시한을 못 박으면서 영국도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영국군은 지난 13일 이후 영국 정부를 도왔던 아프간 현지인 9200여명을 이송했다. 전날에만 9편의 비행기가 1800명 이상을 태우고 떠났다. 현재 아프간에 남아있는 정부 인력만 1000명 이상으로 영국을 지원했던 아프간인까지 이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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